[전시프리뷰]국립현대미술관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전 개최
[전시프리뷰]국립현대미술관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전 개최
  • 왕지수 기자
  • 승인 2020.11.25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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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이승택의 대규모 회고전
미술-비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고정관념에 도전한 60여 년 여정 조망
설치, 조각, 회화, 사진, 대지미술, 행위미술 등 장르를 넘나든 250여 점
11월 25일(수)부터 2021년 3월 28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울문화투데이 왕지수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승택-거꾸로, 비미술’ 展을 25일부터 내년 3월 28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지난 2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자리를 빛낸 이승택 작가
▲지난 2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자리를 빛낸 이승택 작가

이승택은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 설치, 조각, 회화, 사진, 대지미술, 행위미술을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은 독자적 예술세계로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을 이끈 이승택의 60여 년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망하고자 마련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명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은 모든 사물과 관념을 뒤집어 미술이라고 정의된 고정관념에 도전해온 그의 예술세계를 함축한다. 이러한 그의 예술관은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라고 하는 작가의 언명과 기성 조각의 문법에 도전한 그의 ‘비조각’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 24일에는 전시 개막에 앞서 전시를 언론에 공개하는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실내 프레젠테이션은 취소 되었으며 배명지 학예사의 전시장 관람 안내로만 진행됐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이승택 작가도 참석해 예술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과 작품에 대한 스토리를 들려줬다.  

▲옹기라는 평범한 재료를 사용한 조각 ‘성장’, 2020년 재제작(사진=국립현대미술관)
▲옹기라는 평범한 재료를 사용한 조각 ‘성장’, 2020년 재제작(사진=국립현대미술관)

먼저 6전시실에서는 비조각을 향한 이승택의 혁신적인 조형 실험을 ‘재료의 실험’, ‘줄-묶기와 해체’, ‘형체 없는 작품’ 등의 주제로 살펴본다. 이승택은 1960년대부터 전통 옹기를 비롯해 비닐, 유리, 각목, 연탄재 등 일상 사물들로 새로운 재료 실험에 몰두함으로써 당시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조각 개념과 결별하기 시작한다. 

이날 전시 설명을 맡은 배명지 학예사는 “6전시실은 조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재료의 실험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던 6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철이나 돌 등의 재료가 유행했던 시기, 이승택 작가는 미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옹기, 비닐, 각목 등 일상적인 재료를 가지고 작업을 하면서 기성 조각이라고 하는 범주화된 규정을 무화시키며 작가 스스로 ‘비조각’이라 정의한 새로운 조각을 선보인다. 또한 자대 위에 조각이 놓여지는 것이 아닌 천장으로부터 매달려서 비정형적으로 내려오는 조각, 바닥에서 솟아오르거나 벽에 붙이는 조각 등 독특한 설치방법 또한 기성 조각에서 탈피한 파격을 보여준다”라고 말하며 이승택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가치와 특성을 설명했다.

1970년 전후에는 바람, 불, 연기 등 비물질적인 요소들로 작품 제작을 시도하고, 상황 자체를 작품으로 삼는 소위 ‘형체 없는 작품’을 실험한다. 또한 돌, 여체 토르소, 도자기, 책, 고서, 지폐 등을 노끈으로 묶는 ‘묶기’ 연작을 선보이며 사물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았다. 기성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예술실험은 1980년 무렵 ‘비조각’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1950~80년대 ‘묶기’ 연작을 대거 선보인다.

▲이승택 작가의 60년대 작품이 주를 이루는 6전시실의 전경(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승택 작가의 60년대 작품이 주를 이루는 6전시실의 전경(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승택 작가에게 묶기란 사물이 갖고 있는 원래의 속성, 예를 들어 돌이 딱딱한데 이것을 묶음으로써 물렁하게 보이는, 사물의 원래 소성을 변화시키거나 오히려 사물의 본성을 더 잘 드러내거나, 아니면 숨겨진 본성을 드러내 숨어있어 보이지 않은 것들을 낯설게 드러내는 역설이며 작가가 말한 비미술의 개념이 담겨있다”라고 배명지 학예사는 설명했다. 

이날 이승택 작가는 “묶기 작업은 당시로선 획기적이고 새로운 작업이었는데 국선에 출품을 했지만 낙선을 했다. 그때만해도 우상조각, 여인상 등이 보편적이었는데 이런 작업은 너무 생소했기에 예술적 가치를 해친다는 이유로 낙선한 것이다”라며 묶기 작품에 얽힌 일화도 함께 소개했다.

이승택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 역사, 문화, 환경, 종교와 성, 무속과 같은 삶의 영역으로 관심의 지평을 확장하면서 퍼포먼스, 대형 설치, 사진 등으로 작업 영역을 넓혀나간다. 7전시실과 미디어랩에서는 이와 관련한 작품들을 ‘삶·사회·역사’‘행위·과정·회화’‘무속과 비조각의 만남’ 등의 주제로 살펴본다. 

▲지구의 환경 문제를 다룬 ‘지구 행위’ 연작
▲지구의 환경 문제를 다룬 ‘지구 행위’ 연작

동학농민혁명이나 남북분단을 주제로 한 ‘무제’(1994), ‘동족상쟁’(1994) 등에서는 전위미술가이자 역사가로서의 이승택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일본·중국·독일 등 여러 나라를 오가며 수행한 ‘지구 행위’(1991~2000년대) 연작은 훼손된 자연을 치유하고 지구를 되살리고자 하는 생태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화판을 불에 태우거나 물감이 흘러내리는 자연스러운 과정과 흔적을 작품으로 수용한 ‘녹의 수난’(1996), 물을 흘러내리게 해 그 변화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물그림’(1995/2020)처럼 작가의 행위와 과정을 강조하고, 생동감 있는 현장성을 중시한 회화작품도 살펴본다.

일찍이 이승택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생각으로 민속품, 고드렛돌, 석탑, 오지, 성황당, 항아리, 기와 등과 같은 전통적 모티브를 비조각의 근원으로 삼았다. 미디어랩에서는 작가의 1986년 개인전 ‘이승택 비조각전’을 원작을 중심으로 재연해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이어져 온 무속의 세계가 이승택의 작품세계 전반에 가지는 의미를 새롭게 살핀다.

야외 공간에서는 이승택의 대규모 설치 작품 4점이 재연된다. 전시마당에는 ‘기와 입은 대지’(1988/2020)와 ‘바람소리’(1970년대말/2020)가, 미술관마당과 종친부마당에는 1970년 홍익대학교 빌딩 사이에 100여 미터 길이의 푸른색 천을 매달아 바람에 휘날리게 한 기념비적 작품 ‘바람’을 포함한 1970~80년대 ‘바람’ 연작 2점이 재연된다.

▲이승택 작가의 작품 ‘바람’, 2020년 재제작(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승택 작가의 작품 ‘바람’, 2020년 재제작(사진=국립현대미술관)

배명지 학예사는 “작품 ‘바람’은 공기의 흐름을 시각화하고 바람의 이미지를 직접 보여주는 작품이다. 실제로 보지 않으면 경험을 할 수 없는데 작품이 흩날리는 것을 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포착할 수 있다. 또한 바람이 불 때 팔랑거리며 작품이 소리를 내는데 바람을 청각적으로 음으로 색으로 보여주는 섬세하지만 아름다우면서 한국적인 작품이다”라며 ‘바람’  소개를 끝으로 전시 설명회를 마무리했다.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전은 유튜브 채널(youtube.com/mmcakorea)을 통해 ‘학예사 전시투어’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다. 12월 31일(목) 오후 4시부터 30분간 전시를 기획한 배명지 학예연구사의 설명으로 전시를 소개한다. 중계 후에도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계속 볼 수 있다. 출간 예정인 전시 도록에는 김이순, 윤진섭, 이영철, 이인범, 조수진, 최봉림 등의 작가론을 비롯해,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서펜타인갤러리 관장의 인터뷰 등이 수록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은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이승택의 대규모 회고전”이라며, “지난 60여 년 동안 미술을 둘러싼 고정관념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이승택의 여정을 되짚어보고 미술사적 위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