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폭력적이고 잔인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하여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폭력적이고 잔인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하여
  • 윤영채
  • 승인 2020.12.03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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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선을 넘는 예술도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선을 넘어야 울타리가 부서지고 목장이 넓어지죠. 설령 넓어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울타리는 더 견고해질 것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잠시 빌려본다. 그의 영화는 남성 중심적이며 폭력성이 난무한다는 언론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쿠엔틴의 영화를 즐겨보는 나 역시도 ‘킬 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저수지의 개들’ 등의 작품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다. 머리 가죽을 벗기거나 못이 달린 방망이로 두개골을 으깨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영화가 우리의 시각 정보로 인식되면 뇌는 강한 자극을 받게 되는데 이때 우리 내면에 숨겨진 피의 본능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폭력성을 가진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한 지금, 법과 준칙이라는 명목하에 인류는 전쟁을 제외한 어떠한 폭력도 금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잘 숨겨져 온 ‘그 본능’이라는 것이 강력한 시각적 충격을 통해 자극을 받게 되면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는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효과를 준다.

또 다른 이유는, 폭력은 결국 현실이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70억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 모여 살고 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돌아가는 이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는 언제나 충돌은 발생하며, 이는 곧 폭력을 의미한다.

만약 당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잔인한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그건 당신이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기 때문일 것이고, 언제나 싸움의 회용돌이 속에 있었다면 당신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폭력 속에 희생양일 가능성이 크다.

쿠엔틴의 영화 속 인물들이 산타클로스나 팅커벨처럼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작가 자신이며 우리 자체이다.

영화 '저수지의 개들' 속 장면 (출처:https://blog.naver.com)
영화 '저수지의 개들' 속 장면 (출처:https://blog.naver.com)

  이런 부류의 작품을 비난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사견을 덧붙이자면, 아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보기에 불편하다고 말하는 이에 대해서도, 나 역시 그들의 영화를 보면서 가끔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화면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등의 행동을 취한 바 있으므로 일부 동의한다. 그러나 보기 불편하다는 것은 어쩌면 애써 우리가 외면하려 했던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부정하고 싶다는 마지막 발악이 아닐까. 우리가 어릴 적 꿈꿨던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세상에 대한 미련이 단순히 ‘불편하다’라는 표현으로 대체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