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하류가 좋다 / 멀리 보고 오래 참고 끝까지 가는 거다.”
서정춘 시인의 신작시집 「하류」가 출간됐다. 전래 서정시 전통을 고도로 절제된 형식으로 구축해온 시인이 팔순을 맞이해 출간한 시집 안에는 31편의 알짜배기 시가 담겨있다.
혹독할 정도로 절제된 시어 안에 연륜 깊은 시인의 치열한 시 정신이 고스란히 포함돼 있다. 「하류」라는 시집 제목에서 느껴지듯, 높은 골짜기에서 한 방울로 시작하여 낮은 곳을 향해 굽이굽이 내를 이루고 강으로 흘러 이제 드넓은 바다로 나아가기 직전의 하류에 당도한 한 삶의 이력을 느낄 수 있다.
“매화걸음 했었지 // 살얼음걸음으로 // 가는 동안 녹아서 // 피는 꽃 보았지 // 드문드문 피어서 // 두근두근 보았지 // 아껴서 보았지”
시집을 여는 시는 서시격으로 수록된 「매화걸음」이다. 그 긴 여정을 시작하는 설렘이 듬뿍 담긴 발걸음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보기 드문 노시인의 무구하고 여지없는 사랑시다.
시집의 문을 닫는 마지막 시 「기념일」은 “한 여자 모셔와 서울 청계천 판자촌에 세 들어 살면서 나는 모과할 게 너는 능금해라 언약하며 니뇨 나뇨 살아온 지 오늘로 50년 오매 징한 사랑아!”라며, 결혼 50주년을 맞이하여 시인의 아내에게 헌정되는 시편이다. ‘하류’에 도달한 인생에서만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시편이다.
한편, 서정춘 시인은 194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죽편’, ‘봄, 파르티잔’, ‘귀’, ‘물방울은 즐겁다’, ‘캘린더 호수’, ‘이슬에 사무치다’ 등이 있다. 지난 2018년 등단 50주년 기념집 ‘서정춘이라는 시인’을 펴냈으며, 박용래문학상, 순천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유심작품상, 백자예술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