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새로운 ‘햄릿’, 오는 17일 공개…“성별의 변화로 깊이 더해”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새로운 ‘햄릿’, 오는 17일 공개…“성별의 변화로 깊이 더해”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12.0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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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뼈대 위에 정교하고 치밀한 변주로 탄생한 2020년의 햄릿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지난해 국립극단이 실시한 ‘국립극단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 설문에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이어 2위를 차지한 <햄릿>이 올해 70주년 기념 라인업으로 전격 편성됐다. 

국립극단(예술감독 김광보)은 12월 17일부터 27일까지 셰익스피어 고전 <햄릿>을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2020년의 <햄릿>은 연출가 부새롬과 작가 정진새가 의기투합했다. 현재 연극계에서 가장 뜨거운 두 예술가의 첫 공동 작업으로,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 <햄릿>을 만들기 위해 1년 이상 아이디어를 정교하게 조율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국립극단 ‘햄릿’ 컨셉 이미지(제공=국립극단)
▲국립극단 ‘햄릿’ 컨셉 이미지(제공=국립극단)

70주년을 맞은 국립극단의 2020년 <햄릿>은 새로운 시대의 관객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원작의 뼈대 위에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420년 전의 원작 위에 2020년의 현실을 정교하게 반영한 각색은, ‘여기 연극이 있습니다.’라는 국립극단 70주년 표어에 걸맞게 <햄릿>을 관객이 있는 바로 ‘여기’, 현시대로 불러 온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햄릿의 성별이다. 원작이 쓰일 당시 ‘당연히’ 남성이었던 왕위계승자 햄릿은 여성으로 바뀌었다. 성별이 바뀌었지만 햄릿 공주는 여전히 ‘당연한’ 왕위계승자이자 검투에 능한 해군 장교 출신이다. 무대를 압도하는 이봉련 배우의 광기어린 연기는 성별 이분법적 세계관을 잊고 단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그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한다.

햄릿의 상대역인 오필리어는 남성으로 바꾸었고, 길덴스턴, 호레이쇼, 마셀러스 등 햄릿의 측근들에 적절히 여성을 배치하여 공연을 보는 관객이 성별을 의식하지 않고 각 인물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부새롬 연출은 여성 햄릿을 내세운 데 대해 “햄릿이 여성이어도 남성과 다를 바 없이 왕권을 갖고 싶고, 복수하고 싶고, 남성과 같은 이유들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성별을 넘어 단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에 집중하는 것이 작품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며 “나중에 이 각색본으로 누군가 다시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햄릿을 남자가 하든지 여자가 하든지 관계가 없다. 그것이 나와 각색가가 의도한 것이다.”라고 전했다. 

원작에 등장하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고대 서양의 원전을 출처로 하는 말들, 유럽적인 배경의 왕국에서 나올법한 예법과 시적인 대사들은 대거 수정되었다. 당시의 사회 통념에서 비롯된 여성 혐오적 요소도 현대의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드러냈다. 

기성 세대인 클로디어스, 거트루드와 젊은 세대인 햄릿, 오필리어 간의 대결 구도도 중요한 포인트다. “네가 가진 것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잘 따져 봐라.” “네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모르지?” 등 반복되는 대사는 개발도상국의 주역인 386 세대와 선진국의 주역인 지금의 젊은 세대가 서로의 가치관을 문제삼으며 대척하는 한국의 모습을 투영했다. 서로의 약점을 공략하면서, 혐오의 말을 내뱉는 모습에서 세대 간 차별과 혐오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재의 실상을 드러낸다.

정진새 작가의 각색으로 정형화된 서양 고전 연극의 말투와 어조를 벗어낸 <햄릿>은 섬세한 인물 묘사로 젊은 관객들의 지지를 받는 부새롬 연출 특유의 농밀한 시선을 통해 솔직하고 직설적인 <햄릿>으로 새로이 태어났다. 연출가 부새롬은 420년 전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파헤치며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여신동 미술감독은 텅 빈 무대에 흙, 바람, 비를 흩뿌리며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일깨운다.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햄릿’은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이봉련이 맡아 복수의 칼을 겨눈다. 135분에 달하는 공연시간 동안 은밀하고도 과감하게 광기를 드러내며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그의 연기는, 익숙하면서도 완벽하게 새로운 ‘햄릿’의 탄생을 알린다. ‘사느냐, 죽느냐’ 휘몰아치는 폭풍우가 지나가고 파국의 결말을 마주하는 순간, 관객은 긴 꿈에서 깨어난 듯 참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국립극단의 <햄릿> 프로덕션은 이번이 70년 역사상 세 번째로, 12년 만이다. 첫 번째 <햄릿>은 2001년 국립극단 출신 탤런트 김석훈이 ‘햄릿’ 역을 맡고, 극단 민중의 정진수 연출이 번역 및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렸다.    

두 번째 <햄릿>은 2007년이었다. 칼 대신 총을 든 파격적 햄릿으로, 독일 연출가 옌스-다니엘 헤르초크가 연출하고 서상원 배우가 ‘햄릿’ 역할을 맡아 <테러리스트 햄릿>이라는 제목으로 공연했다. 많은 화제를 몰고 와 이듬해 재공연을 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 최초의 햄릿은 국립극단의 모체가 된 민간 극단인 ‘신협’이 1951년 9월 한국전쟁 중 故이해랑의 연출로 무대에 올린 바 있다. 당시 ‘햄릿’ 역할을 맡았던 故김동원 배우는 지금도 ‘영원한 햄릿’으로 불린다.

각색을 맡은 정진새 작가는 “엘시노어성에 갇혀버린 고뇌자 ‘왕자 햄릿’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복수자 ‘공주 햄릿’을 그렸다. ‘착한 여자는 천당에 가지만, 악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라며 “시대를 견뎌내는 어리고 약한 자들이 권력자를 향해 내지르는 소리 없는 함성을, 우리 연극이 더욱 잘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리벤지(R)석에서 혹은 사일런트(S)석에서, 혹은 어딘가에서 저마다의 ‘극중 극’ 혹은 ‘꿈속의 꿈’을 완성해주시면 좋겠다”라고 각색 의도를 전했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거리두기 객석제’로 운영하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변동에 따라 좌석제가 변경될 수 있다. 12월 20일 공연 종료 후에는 객석에서 정진새 작가, 부새롬 연출, 여신동 무대미술가, 이봉련 배우가 함께하는 ‘예술가와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문의 1644-2003/ 2만원~5만원)

국립극단 <햄릿> 배역 캐스팅

오필리어役_ 유원준
햄릿役_ 이봉련
클로디어스役_ 이상홍
포틴브라스,레날도,배우役_ 강현우
호레이쇼役_ 김보나
길덴스턴役_ 김예림
폴로니어스役_ 김용준
로젠크란츠役_ 노기용
마셀러스,배우,무덤지기役_ 박소연
레어티즈役_ 박용우
거트루드役_ 성여진
버나도,배우,무덤지기,대변인役_ 송석근
오즈릭,배우役_ 신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