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나의 불행은 불행이 아님을 말한다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나의 불행은 불행이 아님을 말한다
  • 윤영채
  • 승인 2020.12.0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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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올해로 삼수생인 나는 얼마 전 은사님 댁에 방문했다. ‘서울숲 트리마제’, 그녀가 사는 집이다. 이 자본주의의 매스(Mass) 그 거대한 건물 앞에서 나는 주눅 들어가고 있었다. 한참 작아진 상태로 내어주신 차를 마시며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건방진 말을 꺼내고 말았다. “선생님은 걱정이 없으실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집도 있으시고, 대학도 나오셨고.” 그러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이내 차 한 모금을 마시더니 내게 말했다. “나는 너의 젊음이 너무 부러워. 이 집, 대학 다 너의 젊음과 맞바꿀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 말을 곱씹어봤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가진 젊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나보다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부러워했다. 대학에 간 친구들, 좋은 집에 사는 선생님. 나는 이들을 마치 지상낙원에서 고민 없이 사는 그런 존재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처럼 그들도 불행에 허덕이는 인간임을 확인하였고, 이러한 사실은 내게 야릇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를 아는가. 이부형제(異父兄弟)인 아키라, 교코, 시게루 그리고 유키. 이들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돌아오겠다고 쪽지를 남겨두고 떠난 엄마를 기다린다. 먹을 것이 없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통해 유통기한이 막 지난 음식을 건네받고, 수도와 전기가 끊겨서 공원에서 길어온 물로 목을 축인다. 이들의 삶은 말 그대로 불행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상황적 불행’. 그리고 영화의 끝에 결국 끝내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계속 그 집에서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거대한 파도에서 배를 타는 일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거센 파도가 들이닥치면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도하면서 나름의 기지를 발휘하여 계속 중심을 잡는 일.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어닥친 파도와 폭풍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오지도 않은 위기를 상상하며 끊임없이 괴로워하거나, 더 근사하고 안전한 배를 타고 있는 옆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다 보면 우리의 인생은 결국 바다의 심연 끝으로 아래로 침몰하게 된다. 아키라와 남겨진 동생들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불어온 상황적 불행아이의 시선으로 천천히 받아들였다. 이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던 이유일 것이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속 장면 (출처:https://blog.naver.com)
▲영화 '아무도 모른다' 속 장면

  다시 나로 시선을 옮긴다. 지금 내 앞엔 맛있는 조각 케이크와 커피가 놓여있다. 당장 부엌으로 발을 옮기면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을 수도 있다. 화장실에는 따뜻하고 차가운 물이 모두 언제든지 콸콸 쏟아진다. 나는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며, 내 옆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펜과 종이도 있다. 그렇다. 나에겐 상황적 불행이 없다. 다만 나의 불안정한 20대를 부정하는 가 있을 뿐. 그리고 그 는 내가 먹이를 주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여유가, 풍족함이 내 안의 악마를 키웠다.

  니체는 이런 현상의 해결책을 영원 회귀로 설명한다. 모든 것은 태어나고 때가 되면 소멸한다. 그리고 이는 삶의 유효성을 상기시킨다. 또한, 지금 일어나는 일이 10만 년 뒤에도 반복된다는 그의 회귀론은 말한다. 지금을 불행하게 사는 이는 10만 년 뒤에도 불행하다고. 영원히 고정되어 있어서 바뀔 수 없다고 상정된 것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억압하고 있는 무언가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 무언가를 깨부수고 지금을 행복하게 살 것을 역설했다.

  ‘고정되어 있어 바뀔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대학을 가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 돈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이 모든 것들을 부수면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다. 어떻게 내 안의 울타리를 넓힐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나의 배를 잠시 멈추고 물에 몸을 담그면 조금 나아지려나. 파란 물결 위에서 흐드러지게 머리를 담그고 햇살을 온몸으로 느껴보자. 그리고 그 옆에 둥둥 떠서 내가 가진 배가 얼마나 근사한지 보라! 10만 년 뒤에 펼쳐질 오늘이 조금은 값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