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하남과 김유정이야기Ⅰ
[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하남과 김유정이야기Ⅰ
  • 유승현 /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 승인 2020.12.1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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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유승현 /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하남시의 문화와 역사 하남과 관련된 인물 찾기로 기획된 문화포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앞서 지역문화의 정체성 확립과 발전의 취지를 갖고 ‘하남역사인물포럼 소설가김유정 출범식’이 개최되었는데 특이한 것은 민간기업(하남농협, 새마을금고)의 전액후원으로 이번 행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12월8일 하남문화재단과 하남문화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소설가 김유정’ 포럼이 하남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주최 측의 많은 연구와 기획임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생중계로 실시간 송출되었고 소설가김유정과 인연이 매우 깊은 필자는 현장에서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이번 호는 현장에서 겪은 포럼을 중심으로 기고를 하지만 외종손녀로 김유정을 할배라고 부르고 있는 필자 역시 ‘하남과 김유정이야기’의 개연성을 갖고 당분간 ‘하남과 김유정이야기’라는 주제로 이 지면을 통해 기고할 예정이다.

1908년에 태어나 1937년 젊은 나이로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은 한국문학의 산실로 오랜 기간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는 봄봄, 동백꽃, 아내, 만무방, 산골나그네 등이 있다. 주요작품을 포함하여 32개의 소설과 12개정도의 수필이 발표되었는데 힘든 시대상을 대변하면서도 해학적인 요소로 농촌의 궁핍한 현실을 특유의 해학과 향토적인 언어로 표현한, 한국을 대표하는 천재소설가라고 할 수 있다.

강원도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촌은 춘천하면 떠오르는 랜드 마크로 자리한지 오래며 2020년부터는 김유정문학촌 기념사업회의 위탁운영이 아닌 춘천시문화재단의 운영으로 세대가 교체된 것이 특징이다. 문화컨텐츠 제공자이며 스토리텔링의 주인공 김유정으로 인해 춘천은 김유정역, 김유정우체국, 덕만이 터널, 봄봄식당 등 지명과 상호마저 김유정의 숨결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중, 고교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었을 작품이 김유정의 봄봄과 동백꽃이며 누구나 한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곳이 춘천이다. 이런 춘천을 대표하는 인물이 김유정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무슨 연유로 하남시의 역사인물로 김유정을 선정했는지 그 이유가 발표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짧게나마 기록해본다.

김유정은 경기 광주 중부면 상산곡리 100번지. 지금의 하남에서 작고하였다. 필자의 친할머니, 유정의 다섯째 누이가 하남 유세준에게 시집을 오게 되면서 하남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윈 유정은, 예술적인 동생을 지지하기에 특히나 말이 통했던 다섯째 누님을 좋아하고 의지하였으며 또 매형과 재동 공립보통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중부면 누이집을 오가는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았으리라.

집필활동에 매진하는 몸이 아픈 유정 대신 자전거를 타고 원고를 출판사로 보내기 위해 매형이나 큰조카가 우체국까지 갔던 이야기는 당시 어린 조카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으며 이번 기회에 유족증언으로 이어졌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며 문단에 올랐던 유정은 비록 짧은 기간 집필활동을 했지만 그의 글속에 많은 모티브를 제공했을 누이에 대한 언급, 소설속 등장하는 동백꽃, 물레방아, 산골 등 하남시 일대에 대한 조명은 그동안 공식적인 발표가 없었던 하남과 김유정소설의 개연성으로 흥미가 한껏 유발되었다.

유정이 오가며 작고하기 전까지 작품의 모티브가 제공되었을지도 모르는 하남에 대해 큰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남시의 역사인물 첫 번째로 김유정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다. 하남문화재단의 서강석대표가 노련하게 진행하는 질의 응답순서는 관객들의 실시간 댓글만 보더라도 비단 하남시민뿐만 아니라 김유정문학에 관심이 있는 많은 이들의 기대가 엿보이는 랜선 포럼의 현장이었다. 언택트시대에 발을 맞추고 있는 시대의 흐름도 김유정컨텐츠를 보존하는데 한몫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유정문학촌 이순원촌장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가의 흔적을 찾는데 협력하고자 하남으로 달려와 토론자로 ‘김유정의 삶과 문학’이란 주제로 연구물 발제를 하였다. 하남시 역사의 흔적을 찾는 일에 적극 동참하는 마음 밭이 그의 작품 ‘오목눈이 사랑’처럼 순수하고 고귀하게 느껴졌다. 또한 김유정을 하남에서 가깝게 보았던 조카들을 2014년 5월27일경부터 인터뷰하고 모든 증언을 보존하고 있었던 하남문화원 이상범 사무국장의 숨은 노력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역사를 이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문헌의 기록이지만 기록을 받쳐주는 것은 기억의 편린들이다. 작가로 활동 중인 조카 유필근의 증언 중 유정이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산책을 한 이야기, 하모니카와 바이올린 연주를 즐기고 동네사람들을 모아두고 연주를 하거나 단성사에서 발표를 했다는 이야기, 받은 상금으로 어린 조카에게 원피스를 사 입힌 이야기, 사랑이 많았지만 강한 성품이었다는 이야기 등 짝사랑을 한 것이 흠이면 흠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상세하게 들었던 관객들은 비록 온라인이었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적극적인 참여로 2시간을 함께 달렸다.

‘옛이야기로 알아보는 김유정’이라는 주제는 토론자 유병상 향토사학자의 언어로 발표되었는데 소설 속 ‘산골’이 원주민에게 구전되고 있는 지명 ‘산골마을’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김유정소설 ‘산골나그네’의 모티브가 당시 산골마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뒷받침해주는 대목으로 모두가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학교현장에서 활용하기 좋은 김유정의 문학세계’에 대해 하남고등학교 오영주교사가 발제를 하였는데 문학교육에 쉬운 접근으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문학작품의 실제배경이 되는 곳을 체험하고 문학과 관련된 장소를 찾아간다는 것은 학습활동에 매우 좋은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였다.

김유정 문학의 흔적이 하남에도 일부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알고 직접 체험하는 교육적인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두 시간에 걸쳐 쉼 없이 진행되는 시간동안 하남시장은 객석 끝자락에서 귀를 기우리며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공공기관에서 발휘되는 문화행사는 겉만 번지르르 한 경우가 간혹 있는데 준비 기간동안 담당자가 김유정문학에 설레임을 갖고 발로 뛰는 모습을 엿보았다. 관이 주관하는데 민간기업의 후원으로 이어진다. 이미 춘천에 곱게 자리한 김유정문학촌마저 협조에 마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이 김유정이 출몰하고 타계한 하남이 그의 문학정신을 이어가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번 포럼에서 김유정의 숨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첫 시도를 유족들의 증언으로 흔적의 리얼리티를 생생하게 제공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었으나 어린 조카들의 나이도 이제 90세 전후가 되어간다. 김유정을 기억하는 유족들이 살아생전에 문헌으로 만드는 시도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후손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필자의 마음이 바뻐진다. 겨울이 지나 새봄이 되어 검단산에 오르면 김유정의 동백꽃이 샛노랗게 개화될 것이다. 

역사의 흔적을 찾아 연구하는 문화의 도시 하남. 이곳의 미래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처럼 알싸하기를 기대해본다.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