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돈 드는 야간경관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돈 드는 야간경관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0.12.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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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도시의 경관은 보여 지는 도시의 모든 풍광, 산이나 강, 호수 등 자연경관과 건축물이나 다리, 광장, 공원, 도로와 같이 사람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인공경관 모두를 포함하며 경관계획이나 경관법을 통하여 관리하고자하는 것은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도시 고유의  이미지적 특성에 토지의 개발이나 인구의 변화로 야기되는 인공적 경관요소를 조화롭게 그리고 아름답게 들이도록 하고자하는 노력이다. 잘 관리된 도시의 경관은 시민에게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삶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나아가 도시의 고유의 정체성, 가치를 만들어 가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  

도시의 경관 중 일몰 후 보여지는 도시의 이미지를 야간경관이라고 하며 이것 역시 보여지는 모든 밤풍경을 포함한다. 환경부에서 빛공해 방지법에서 크게 거리나 공원 등 도시의 공간을 비추는 공간조명과 건축물이나 기타 조형요소, 미디어 파사드 등 상징적이고 장식적인 경관요소를 비추는 장식조명으로 구분하여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저런 자리에 야간경관 전문가로서 자문을 하다보면 야간경관을 구성하는 조명요소들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예를 들어 공원의 조명을 계획하면서 폴을 이용하여 산책로를 비추는 조명은 야간경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볼라드나 수목등을 이용하여 산책로를 낮게 비추는 조명은 야간경관으로 간주한다거나 아파트나 주상복합과 같은 공동주택에서 건축물의 상부 혹은 입면을 비추는 조명이나 문주를 위한 상징적인 조명에 대한 계획은 야간경관으로 간주하여 경관 심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안전을 위한 조명요소들 - 주출입구, 파라펫 하부등 지층부, 차량이나 보행자의 진출입로, 주보행로의 조명 -은 야간경관이 아니라는 판단으로 경관심의에서 누락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그것은 ‘일반적인 보행등 정도의 설계’여서 ‘경관’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다는 답변을 한다. 사람들이 야간경관은 ‘비용이 든다’라고 말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도시의 빛요소를 야간경관과 일반 조명으로 나누어 생각하게 된 이유는 필수적으로 설계되었던 기능에 기반한 조명계획이 야간경관의 시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경관이라는 개념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조명은 이미 안전한 밝기라는 기능과 동시에 도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도로의 가로등은 일몰 후 도로 위에 수평적인 밝기를 제공했지만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보는 전경에서는 도시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선적인 요소였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의 조명은 오가는 차량의 운전자가 안전하게 지날 수 있도록 바닥면 뿐 아니라 환경적 한계인 구조체를 비추었는데 이는 다리의 형태를 어설프게 나마 드러내며 흐르는 강물 위에 그 이미지를 투영하여 아름다운 한강의 야경을 만들었다. 

도시의 밤의 이미지를 ‘야간경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능에 의미를 더해 보다 특별한 가치가 되도록 한 것은 조명기술의 발달 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시각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가장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며 그 정보의 질은 사고나 행동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조명 환경의 질을 통해 심리적인 변화나 행동에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환경에 대해 정의하고 그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밝은 빛환경에서 도시의 범죄율은 줄어들게 되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보다 환경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다. 더 잘 보이는 정보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며 빛의 질에 의해 도시의 구조가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지면 사람들의 길 읽기가 편해진다. 반짝이는 빛에 흥미와 호감을 갖으며 적절한 빛의 대비와 조화가 도시를 아름답게 만든다.

야간경관은 단순히 일몰 후 더 잘 보이는 전통적인 조명의 기능을 넘어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서의 빛을 다루는 개념이다. 도시의 모든 빛요소는 한꺼번에 보여지고 또 서로의 질 - 광량이나 색, 조사각 등-이 간섭하여 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어떤 지역의 조명계획을 할 때 이웃하는 지역의 빛환경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공동주택의 출입구는 밤새도록 안전한 밝기를 유지해야 하는데 수목을 아름답게 비추어 그 밝기를 얻을 수도 있다. 문주를 상징적으로 비추어 길찾기의 도움을 주기 위한 조명으로 주변 보행로나 상징수에 적절한 밝기를 공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도시의 모든 빛요소는 통합적으로 야간경관범주에 포함되며 통합적으로 계획된 조명은 운용방식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이렇게 세심하게 계획된 빛들이 많아질수록 도시의 야경은 품위 있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돈 많이 드는 야간경관이라는 오명을 벗겨주자. 내가 사는데 필요한 모든 빛이 모여 야간경관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