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남북 통일 만큼 어려운 국악진흥법 제정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남북 통일 만큼 어려운 국악진흥법 제정
  • 주재근/한양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20.12.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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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주재근/한양대학교 겸임교수

벌써 20년전 일이다. 영화인들이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서 ‘한국영화 의무 상영제(일명 스크린쿼터제) 사수를 위해 삭발을 하였다. 그 뒤로 5년 후인 2004년에는 정부의 한미투자협정으로 인해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따른 영화인 1000명이 강남역에 모여 스크린쿼터 사수 결의대회를 가졌다. 뉴스를 통해 그 시위들을 보면서 영화인들의 응집력에 놀라웠고 영화를 지키기 위한 처절함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1990년대 임권택 감독이 장군의 아들에 이어 1993년 서편제를 흥행시켰다. 서편제는 서울 9개 상영관에서 103만명의 관객을 넘기며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서울관객 100만 돌파라는 기적을 일구었다. 90년대 내내 한국영화는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쳤고, 10년간의 투자는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자양분이 되었다. 

한국영화의 놀라운 성장에는 영화인들의 공통된 집념 이외에 1995년 제정된 영화진흥법이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법을 통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영화진흥기본계획수립, 영상제작 관련 시설의 관리 운영, 영화진흥금고의 관리 운용, 한국 영화진흥 및 영화산업 육성을 위한 조사연구교육, 영화의 유통배급, 한국영화의 수출 및 국제교류, 한국영화 의무상영제도의 시행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더욱 부러운 것은 이 법을 통해  국산영화 수출 및 외국영화 수입의 알선지원, 영화인의 교육·해외연수, 국제영화제 참가, 청소년영화제 개최, 시나리오 공모를 통한 창작지원, 영화인에 대한 연금 및 위로금 지급, 영화전공 학생 및 영화인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영화진흥법을 통해 영화의 중장기 계획이 수립되고 각종 진흥사업을 통한 인프라구축, 콘텐츠 제작 지원, 영화인들의 복지 증진 등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각 문화 분야에서 진흥법이 제정되었다. 

2005년 국어기본법에 이어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2016년),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2018년),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2019년),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2018년), 출판문화산업진흥법(2019년), 문학진흥법(2020년) 등이 제정되었다.

1972년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의 문화예술 범주는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국악, 사진, 건축, 어문, 출판, 만화 등 13개 부문인데 그 중 국악을 비롯해 무용, 연극, 사진 분야를 제외하고는 진흥법 또는 산업발전법이 제정, 시행되고 있다.  

2007년 문화관광부 예술국 전통예술팀에서 근무할 당시 ‘전통공연예술진흥법 제정 TF’가 구성되어 직원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위원으로는 김영운(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성기숙(한국예술종합학교수), 이원태(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김창규(한국전톤문화학교 교수), 김진곤(전통예술팀장), 홍성운(전통예술팀 행정사무관) 등이 참여하였으며 정부 입법 추진은 너무나 아쉽게도 무산이 되었다.

이보다 앞서 2004년 고흥길 국회의원이 ‘전통문화진흥법안’을 발의하였지만 힘을 실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2007년 강혜숙 국회의원과 2009년 김을동 국회의원이 ‘전통공연예술진흥법안’을 대표 발의로 야심차게 추진되었지만 회기가 만료되면서 폐기되었다. 2013년 강동원 국회의원이 발의한 ‘전통국악진흥법안’, 2017년 김두관의원 외 35명의 국회의원이 공동발의한 ‘국악문화산업 진흥 법률안’ 또한 작년에 자동폐기되었다. 17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계속 법 추진이 되었지만 모두 무산되었고 이번 제21대 국회에서 다시 국악진흥법이 발의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국회의원이 ‘국악문화진흥법 제정안’을 2020년 9월 2일에 발의하였고, 약 1주일 후인 9월 8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국회의원이 ‘국악진흥법안’을 발의하였다. 국악관련 법의 제정 필요성과 내용을 담은 법 추진은 당연히 반갑지만 일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볼 때 제대로 될까 하는 우려가 된다. 같은 당에서 두 명의 의원이 거의 비슷한 법안을 발의하는 것도 그렇고, 국악계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논의와 협의체 등이 보이지 않기에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 민선 7기 지자체장들이 국립국악원 분원 유치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충청남도 지자체에서 국악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충남 공주시에서는 ‘국립충청국악원’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고 공주시장의 발의로 ‘공주시 국악진흥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2020년 9월2일 가결되었다. 또한 충남 서산시 이수의 시의원이 대표 발의한 ‘중고제 판소리 보존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2020년 9월 25일 가결 공표되었다. 공주시와 서산시의 국악에 관한 진흥 법안이 실제적인 지원과 기반조성으로 이어지고, 다른 224개 지자체로 들불처럼 번져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의 분단 상황이 70년을 뒤로 하고 있다. 그동안 대립과 평화의 파고를 수없이 넘고 있지만 통일에 대한 염원은 국민 모두가 뜻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통일을 이루어 내는 것이 참 어렵고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지켜보아 왔다. 국악진흥법 제정도 힘들고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나 국악인들이 한뜻으로 지혜를 모으고 정치인들과 힘을 합친다면 이루지 못할 것도 아니라 본다.

2024년 4월 10일에 있을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악진흥법 발의에 동의하고 제정에 찬성한 의원들 모두 재선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