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양도세 과세안’ 논란 시비
‘미술품 양도세 과세안’ 논란 시비
  • 이의진 기자
  • 승인 2008.12.2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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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시기상조....탁상행정 비난

개인의 미술품에 양도세를 과세한다는 ‘미술품 양도세 과세안’이 확정됨에 따라 과세를 반대해온 미술계가 비상이 걸렸다.
국회 기획재정위는 지난 5일 ‘서화 골동품에 대한 양도차익 과세’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2011년 1월부터 6천만 원 이상인 작품 거래 시 양도차익의 20%를 자진 납부해야 한다. 과세 대상은 사망 작가의 회화, 드로잉, 조각, 비디오 영상설치 등 미술품과 제작된 지 100년이 넘는 골동품이 해당된다.

또한 조상에게 물려받은 애장품이나 취득가액이 불분명할 경우 제작된 지 10년이 안된 작품은 양도가액의 80%, 10년이 넘은 작품은 90%를 공제한 후 나머지 금액에 대해 20%의 양도세를 납부해야 한다.

정부와 미술계의 줄다리기 속에 10여년을 끌어오다 지난 2003년 완전 폐지됐던 ‘미술품 과세안’이 다시 불거진 것은 최근 몇 년간 미술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미술품이 재테크의 수단으로 각광받자 ‘조세평등의 원칙’이 미술품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 2002년 11월 13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의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에서 715만9500달러(당시 환율로 약 86억5000만원)에 낙찰받은 '행복한 눈물'. 작년 삼성비자금사건에 연루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지금은 3~4배 정도 값이 오른 것으로 미술계는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미술계는 국내 미술시장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 간의 거래에 양도세를 부과한다는 것은 미술시장을 ‘고사’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은 지난 88올림픽 때 잠시 반짝했다가 20년간 장기적인 침체를 거듭했다. 2005년부터 미술품이 부의 축적이 가능한 재산으로 인식되면서 한해에 100%가 넘는 외형적 성장을 해 시장규모가 4천5백억 원까지 이르게 됐다.

하지만 지난해 말 뜻하지 않게 발생한 삼성비자금사건의 유탄을 맞아 올해는 급속히 반으로 줄어 2천억 원대로 떨어졌다.

지금처럼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미술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든 시점에 양도세 적용은 미술시장 성장에 큰 저해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으며, 미술품 거래에 있어 세금의 부과는 미술 마켓의 축소와 국내 미술계의 발전에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더욱이 미술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부자(富者)당’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위해 투자 거래됐던 미술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으로 미술계가 본보기 타깃이 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화랑협회 정종효 사무국장은 “기간이 유예됐고 6천만 원으로 조정됐지만 액수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미술시장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액 작품까지 실명제가 될 경우 타격은 불을 보듯 뻔 한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술을 문화적인 측면이 아닌 경제부분으로 본 것이 잘못됐다. 이는 미술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고 앞으로 거래가 위축되고 작가들의 창작환경도 나빠질 것이다. 더구나 조세측면에서 미술 분야만 강수를 둔 것은 심한처사”라고 밝혔다.

특히 정 사무국장은 “아직까지 우리의 정서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들이 거래되고 큰 차익을 얻은 컬렉터들의 얘기를 언론매체에서 접할 때마다 미술시장은 부유한 자들이 그들만의 호사취미를 충족시키는 곳으로 인식돼, 미술품에 대한 긍정적 의식 평가가 미숙한 상태” 라고 강조했다.

결국 미술계는 미술품 수집을 ‘투기’로 보는 현재의 상황에서 컬렉터들이 자신들의 실명을 노출하면서까지 미술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외면하면 실제적인 세수 증대도 없이 미술시장만 죽게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경희대 최병식 교수는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과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과세를 하려면 환경구조도 함께 가줘야 하는데 거래구조 시스템이 미비하고 거래량이 고가의 작품에만 머물러 있는 상태여서 아직은 시기상조다”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미술시장이 거대해졌을 때 과세를 한다면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 미술시장이 바닥인데 과세를 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안일한 처사다. 충분한 연구와 심의가 있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특히 “1억짜리를 5천만에 팔았다면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작품은 부동산과는 다르다. 경제와 상관없이 실시해야 할 법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과세안은 현재 미술시장구조와 눈높이가 안 맞는다. 다양한 준비와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눠보고 의견을 들어보고 실시해도 늦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내 미술시장은 이제 막 일반인들의 관심을 얻기 시작하면서 관심의 대상이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양도세를 부과한다는 것은 그 관심마저도 사라지게 하는 요인이 돼 국내 미술시장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다.
양도세 부과는 구매자에게 부담을 주어 실질적으로 구매 작품 시 작품 가격 하락의 주요인이자 작품 가격의 상승에 저해를 준다. 투자목적을 가진 컬렉터들은 더 이상 미술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미술시장을 떠나게 될 것이다.

반면 미술품에 애정을 가진 컬렉터들의 경우, 거래 사실 자체를 숨기거나 영수증을 6천만 원 이하로 분할 처리해서 구매할 가능성도 있다. 또는 국내에서 거래를 하지 않거나 해외 작가의 작품을 산 후 일정 기간 후에 다시 해외에서 직거래를 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실제 작품을 팔아 생활을 해 나가야 하는 국내 작가들은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며 국내 미술시장 역시 더욱 불투명한 상황으로 빠져 들 것이다.

우림갤러리 임명석 대표는 “미술품을 살 때 주민등록을 보여주며 사는 사람은 없어 음성적으로 이루어져 오히려 범법행위자를 양산할 수 있다. 지금 미술시장경기가 악화인데 과세를 한다는 것은 혼란을 야기 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우리가 비싼 고가구를 살 때나 보석을 살 때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지 않는다. 유독 미술품에만 적용한 이유를 모르겠다. 미술품 구입 시 85%정도는 소장이고 재판매하는 것은 15%정도다. 이를 두고 ‘투기’라는 논리를 적용해 과세를 한다는 것은 정부가 미술시장 말살정책을 쓰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렇듯 미술계가 반대 입장을 하고 있는데 반해 지금의 양도세 부과가 미술계의 발전을 위축시킨다는데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기획재정부의 입장이다.

이상율 기획재정부 소득세제과 과장은 “과세안 얘기는 90년도부터 나온 것을 이제야 실행하는 것이다. 물건을 팔아서 소득이 있으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 되는데 왜 세금을 안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과세에 대해 15년 전부터 미술시장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시기상조라고 반대해서 지금까지 연기했다. 아마 몇 년 후에 실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미술시장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전병목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과세형평의 원칙에 따라 세금을 내서 미술시장의 투명성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과세로 인한 실명제 때문에 미술시장의 수요가 줄어든다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오히려 과세가 대형거래 시 정상거래로 자리 잡힐 수 있다. 소액거래나 인터넷 거래는 화랑들을 통해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선임연구원은 또한 “시장의 상당부분을 자리 잡은 대형거래가 불확실하고 개방되지 않은 관행으로 인해 미술품 시장의 구조를 가로막고 있다. 양도세가 부과되면 거래정보가 구매시점부터 명확하게 구축돼 판매유통 구조가 투명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양도세부과가 시장을 부분적으로 위축시킬 수는 있지만 시장유통구조 확립에는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미술품을 사게 되고 보다 좋은 미술품을 싸게 구매하는 길을 열게 되어 시장이 활성화돼, 이로 인한 실질적인 혜택이 작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전 선임연구원은 “가격이 증가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미술품이고 그에 대해 과세를 부과하는 것은 정당하다. 이로 인해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젊고 재능 있는 작가들이 영향을 안 받게 하고 그들의 작품이 활성화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단지 미술계와 정부 간의 충분한 의견수렴이 아쉽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술계는 이번 과세안 통과에 대해 비상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대안방법을 모색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아직 세계정상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우리의 미술품과 작가들이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할 때에, 양도세 부과에 대한 정부와 미술계의 첨예한 대립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의진 기자 luckyuj@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