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세계를 여는 신호탄: VR 참여형 콘텐츠와 배우의 역할
VR 세계를 여는 신호탄: VR 참여형 콘텐츠와 배우의 역할
  • 윤지수
  • 승인 2020.12.24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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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수(1992년 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를 나와 '미술이론의 공부와 연구를 위해' 네델란드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특히, 동시대 문화 현상과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미술, 과학, 역사를 포함한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 관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윤지수(1992년 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를 나와 '미술이론의 공부와 연구를 위해' 네델란드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특히, 동시대 문화 현상과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미술, 과학, 역사를 포함한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 관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상 현실이 열리기 시작했다. SNS에서 패션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이마(Imma), 뮤직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릴 미쿠엘라(Lil Miquela)는 모두 가상 인물로, 수십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며 다른 인플루언서와 마찬가지로 SNS 포스팅을 통해 큰 광고수익을 내고, 여러 매체에서 활동하며 그 존재감을 톡톡히 입증하고 있다. SM에서는 올 11월 4명의 현실 멤버와 그들의 자아를 대변하는 4명의 아바타를 한 그룹으로 한 ‘에스파(aespa)’를 데뷔시켰다. 현실 멤버들과 그들의 아바타는 인공지능 시스템 ‘나비스(Navis)’의 도움으로 소통하며, 현실 공간에도 가상 공간에도 존재하게 된다. 이처럼 가상의 인플루언서들은 큰 수익을 내며, 시장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다.

예술계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허수아비(Scarecrow)>는 주목할 만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콘텐츠원캠퍼스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실감 미디어 융복합 콘텐츠인 이 작품은 관객들을 가상현실 공간에 초대하여 허수아비와의 교감을 통해 불새의 저주를 푸는 스토리라인을 지닌다. 참여형 연극은 관객들의 참여를 주도하며, 관객이 극에 온전히 몰입하고, 개입할 수 있게 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허수아비(Scarecrow)> 또한 관객의 반응에 따라 캐릭터가 즉흥적으로 교류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다수의 장치를 미리 해두어, 관객이 극의 주체로 참여하게 했다. 

참여형 공연이 일반적인 공연에 비해 관객에게 더 큰 몰입감과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는 우리 뇌의 특성 때문이다. 우리 두뇌에서는 실제로 정서에서 이성으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이성에서 정서에 영향을 주는 네트워크에 비해 3배나 많기 때문에 인간은 이성적 영향보다 정서적 영향을 즉각적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심리적 사건이 일어났을 때 뇌에서는 신경세포 연결고리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며, 시냅스 연결의 강도가 바뀐다는 연구가 신경생물학자인 에릭 켄 델(Eric R. Kandel) 박사에 의해 입증되었다. 즉, 극이 촉진하는 관객의 심리적 변화가 뇌세포 연결을 바꾸고, 이것이 마음과 행동의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허수아비(Scarecrow)>의 매체적 특수성, 즉 VR이라는 가상 공간을 빌려 극이 진행된다는 점은 관객의 몰입을 오히려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VR을 접해본 적 없는 관객이 낯선 미디어 환경을 접했을 때, 감정적으로 위기감을 느낄 수 있고, 이에 의해 감정을 조절하고, 공감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본 작품에는 이런 낯선 미디어 환경에 노출된 관객이 생생한 현실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현실감을 느끼기 이전에 새로운 가능성의 장으로 관객이 먼저 마음을 여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배우들 덕분에 가능했다.

필자는 극 중 허수아비 역할을 담당했던 신동근 배우와의 인터뷰를 통해 관객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자신을 기꺼이 노출하고 극에 몰입하게 하기 위한 일련의 노고들을 들을 수 있었다. 관객이 광활한 VR 환경에 입장하는 순간, 배우들은 3평 남짓의 한정된 공간에서 극중 캐릭터를 연기하기 때문에 신체적, 물리적, 환경적 제한이 있었다고 한다. 이 좁은 공간에서 스텝이나 다른 참여자와 부딪히지 않으면서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고, 동시에 관객의 움직임 또한 고려해야 했다고 한다. 또한 참여형 작품이다 보니, 참여하는 관객의 반응에 맞춰 스토리가 진행되었고, 장면전개를 위해 기술진이 컴퓨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배우와 타이밍이 맞지 않아 상황에 집중하기에 어려웠다고 한다. 또한, VR 구현에 있어, 기술이 사람의 신체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버퍼링이 생기는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배우 신동근은 자신이 극에서 해야 할 미션을 수행하는 것에 더 급박했기 때문에, 캐릭터와의 몰입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체험하고 있는 관객들의 반응에 의해 역으로 허수아비역에 이입하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말하며, 관객과의 교류가 배우에게도 굉장히 중요했다고 이야기했다. 

배우들은 낯선 환경에 처음 들어간 관객이 그 환경을 익숙한 공간으로 받아들이고 극과 합일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오히려, 자신들이 물리적, 신체적, 환경적으로 제한된 환경에 있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리고 필자는 이들의 역할이 이를 넘어서 관객에게 VR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을 심어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리드를 따라가며 이들과 소통하던 관객은 어느새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고, 극의 스토리를 주도하며 감정적인 큰 울림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뇌에 새로운 경험 기억으로 새겨졌을 것이다. 이 경험 기억이 점차 많이 쌓일수록 우리는 VR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에 신호탄이 된 것은 VR 참여형 콘텐츠며, 작품에서의 배우들의 역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