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도시 공원의 밤, 치유의 시간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도시 공원의 밤, 치유의 시간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0.12.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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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공원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는 헨리8세의 사냥터로 조성 되었는데 근대로 넘어오면서 도시화에 의한 개발과 시민권의 성장으로 공공공간으로 이용되면서 현대공원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1800년대 중반, 미국 뉴욕, 역시 도시화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극심한 공해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사회적 불만이 쌓여가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원을 만들어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하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센트럴파크의 시초였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두 도시공원이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 만들어졌고 개개인의 삶의 가치를 인정하고 환경에 대한 불만을 해소해 주려는 노력에서 출발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지금은 도시 마다 인구 1인당 일정 면적 이상의 공원을 확보해야 하고 10년 단위로 공원 면적을 늘여 가는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법률로 명시하고 있다고 하나 시민들의 입장에서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시민은 더더욱 - 내 주변의 공원은 늘 부족하다.

2020의 키워드, 코비드19는 우리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코비드19에 대한 백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언택트에 대한 피로감은 계속 쌓여가는 현실에서 9시 이후의 사회에서의 삶마저 묶여버렸다. 저녁모임을 조금 일찍 시작하게 되었고 9시가 임박하면 신데렐라 마냥 마차에 올라 집으로 향한다. 인터넷의 댓글에서 본 글귀가 생각난다. ‘코로나는 9시 이후에만 전염되는가?’

구글이 발표한 ‘공동체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3월말 공원을 방문한 사람의 수가 코비드19 확산이 본격화된 1월 대비 약 51% 증가 했다고 한다. 계절의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열린 공간이 주는 정서적 치유도 이유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도시에서의 공원은 심리적 치유 및 면역력 증진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하며 얼마 전 열린 환경 관련 학술 포럼에서는 코로나 시대 사회적 대안으로 도시 공원을 재생하여 공공녹지를 공유화하는 계획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였는데 발표자는 “오픈스페이스가 바이러스 안전지대라고 볼 수는 없지만, 주목할 것은 공원이 제공하는 심리적 안정감으로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식물의 생장을 바라보고 이웃과 함께 있다는 위안감은 닫힌 공간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며 느낀 답답함과 우울함을 벗게 해준다”며 “이러한 공원이 제공하는 심리적 안정감과 치유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전략적인 싸움을 가능하게 해주는 백신과 같다”고 말했다.

밤이 되어야 비로소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여유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은 나만의 일상은 아닐 것이다. 저녁의 일정이 억지로 간소화된 요즈음 이른 저녁을 마치고 집주변 공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동네 쌈지 공원을 찾는 것만으로도 코비드19 행동 강령에 대한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 공원들은 대부분 조명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는 공통적 특징을 갖고 있다. 어둡고, 조명기구가 노후되거나 못쓰게 된 것도 눈에 띄고 지속적인 관리가 되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공원들이 꽤 많다. 공원은 식물이 우선시 되어 인공조명의 불빛이 생태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지금처럼 에너지를 적게 쓰고 유지 보수에 대하여 비교적 용이한 조명 시스템이 없었던 까닭도 있었을 테지만 점점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적절한 보수가 이루어져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공원을 일단 조성하고 나면 조명기구 자체도 노후화되지만 시간이 지나 수목이 자라나 조명기구를 가리거나 떨어진 낙엽으로 덮히면 조명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 된다. 또한 이따금 세워져 있는 이정표는 보이질 않고 안내 키오스크도 어둠속에 숨어 사람들이 가는 방향이 내가 가야하는 방향이 된다. 즉, 빈약한 계획, 관리의 부재라는 총체적 난국 속에 공원 이용자들은 스스로의 안전은 스스로가 지켜야 하는 것인지...

여러 번 강조했듯이 공원의 모든 곳이 밝게 비추어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빛환경의 조성과 공간별 다양한 질의 빛계획을 통하여 빨리 걷는 사람, 천천히 걷는 사람, 서성이는 사람, 앉아 명상하는 사람등 공원의 기능을 다양화 할 수 있는 조명이 계획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지속 가능한 조명계획을 수립하기 위하여 긴 수명이나 고효율 뿐 아니라 유지 보수를 쉽게 하고 그 기회를 줄이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2021 내년은 AFTER 코비드19의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런 기대를 해본다. 하지만 쉽게 가시지 않을 바이러스의 공포에 대해 개개인의 위생을 핑계로 스스로 닫은 공간 안에서 타인과의 거리두기를 지속할 것이 예상되어 당분간 공원 천천히 걷기는 지속될 듯하다. 또, 당분간 공원 조명에 대한 투덜거림도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