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2020년에 대한 소소한 단상
[장석류의 예술로(路)]2020년에 대한 소소한 단상
  • 장석류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문화 강사/행정학박사
  • 승인 2020.12.24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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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류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문화 강사/행정학박사
▲장석류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문화 강사/행정학박사

2002년은 월드컵으로 인해 다른해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2020년은 세월이 지나도 그 어떤 해보다 뚜렷이 기억될 것 같다. 공간적 이동이 어려운 답답함, 어떤 시도에 대한 취소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 거리두기 속 디지털로 바뀐 세상에 적응해 갔던 한해. 현실적인 추세로 보면 다가오는 신축년 2021년도 코로나19의 시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매년 12월은 저녁 약속이 꽉 차 있었다. 자정이 지나도록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올 한해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 나누고, 좋은 일은 축하하고, 힘든 일은 위로를 나눴다. 그러면서 각자의 한 살을 먹어갔다. 올해는 약속을 잡지 않거나 취소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이 줄었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이 글을 지금 읽고 계신 분께, 당신의 삶이 고맙고, 한해 잘 보내시느라 수고 많으셨다는 얘기를 먼저 전하고 싶다. 

코로나 19로 인한 생경한 경험 중 하나는 줌(Zoom) 화상회의였다. 회의도 해보고 강의도 해보면서 발신자의 위치에도 서보고, 공연이나 포럼 등을 생중계로 기획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것은 나의 사회적 표정들을 마주하게 된 부분이다. 그 동안 거울을 통해 나를 한참 지켜보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특히 사회적 공간에서 대화하는 표정을 직접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경험은 갖기 어려웠다. 그런데 화상회의를 하며 다른 사람의 얘기를 경청할 때 혹은 말할 때 내가 보지 못했던 나의 모습과 표정을 만나게 된다. 깐깐해 보이고 뇌세포가 계속 움직이고 있는 듯한 집중한 모습 사이에 가끔 수줍어하는 표정이 나올 때가 있었다. 낯설면서도 조금은 더 다가서기 편한 얼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을 수 있는 여유와 웃게 할 수 있는 유머가 갖는 힘의 귀중함을 올해 특히 많이 느낀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온라인에 나의 데이터를 더 많이 기록하고 활용하게 되었다. 검색한 웹사이트, 클릭 정보, 다운로드 내역, 구매 내역, 관람 내역 등의 정보를 갖고 머신러닝을 통해 학습한 나의 취향과 선호를 디지털 거울에 비춰주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음악도 하나씩 검색해 듣는 것보다 나의 취향, 기분, 상황에 따라 큐레이션 된 형식으로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이전에 비해 기계가 골라주는 음악이 내 취향을 제대로 파악한 것처럼 꽤 괜찮아졌다. 또한, 온라인 마켓을 통해 식재료 구매량이 늘었는데, 이후 구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타겟팅 된 광고들이 과할 정도로 발밑에 패스되어 오는 게 느껴졌다. 아직 데이터가 많이 쌓이지는 않아 비슷한 것을 반복적으로 추천해주긴 하지만, 데이터가 지식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한해였다. 문화 정책분야에서도 문화 빅데이터(www.bigdata-culture.kr) 가 운영되면서, 향후 그 활용도가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의 영역에서는 창작의 결과물을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사람들을 집객시켜 소통시키는 시도 자체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A를 준비하고, 대안 B를 준비하고, 다시 대안 C를 준비하지만, 결국 준비했던 것을 취소하는 일이 크게 세 번 정도 반복되었다. 취소했던 것이 아쉬워, 좀 더 욕심을 내서 다시 한번 해보지만 또 다시 취소를 결정하거나, 취소를 통보 받으며 한해를 보냈다. 아픈 마음으로 지켜본 잃어버린 공간들도 있었는데, 연극인의 터전이었던 남산예술센터가 문을 닫았고, 독립영화의 허브 역할을 했던 상상마당 시네마도 운영을 잠정 중단하였다. 이러한 흐름에서 질병관리청 만큼이나 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인복지재단, 서울문화재단 등과 같은 2차 공공기관의 현실적 필요성은 더 중요했던 한 해였다. 필요에 대한 높아진 정책에 대한 갈증과 허기만큼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 모두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서로 갈등하고 부대꼈던 한해였다. 

올해 5월부터 본 지면을 통해 문화행정의 가치충돌을 테마로 총 7편의 칼럼을 기고했다. ‘행정인의 고객과 예술인의 고객이 같을까?’, ‘표현의 자유의 경계는 어디일까’, ‘아날로그 예술의 불안’, ‘설익은 형평’, ‘쌓여가는 노예근성, 이번에는 누가 오실까?’, ‘예술기관 기획인의 직업 정체성은 무엇일까?’, ‘행정인과 예술인의 직업 정체성 차이는 무엇일까?’로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의 차이에 대한 이해의 확장을 통해 서로 간의 협력의 가능성을 탐색해보았다. 조금은 무거운 주제였고, 부족한 글이었지만 좋게 읽어주셨던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올해 읽었던 문장 중에 힘이 되었던 글귀를 하나 꼽아본다면, 헬렌 켈러의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은 못 보곤 한다."는 문장이었다. 신축년 새해의 시작도 한쪽 문은 닫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환의 시대에 열려있는 또 다른 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등잔 밑에 빼꼼히 열려 있는 연대의 문을 열고 나가면 누군가의 따뜻한 손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으면 더 좋다. 생의 전체는 넓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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