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최성철 조각가 ‘예술에 대한 본질’은 뒤로 하고 ‘인간에 대한 실존’ 고민 시작
[Artist Interview] 최성철 조각가 ‘예술에 대한 본질’은 뒤로 하고 ‘인간에 대한 실존’ 고민 시작
  • 왕지수 기자
  • 승인 2020.12.24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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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작가’로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싶어…
이제 새로운 방식의 조각을 나만의 또 다른 언어로 이야기할 것

[서울문화투데이 왕지수 기자] 사뿐한 날갯짓으로 하늘을 유영하는 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가 되려면 변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는 자신을 어두운 공간으로 안으로 은폐시켜 의도적으로 외부와의 단절을 선언한다.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거쳐 인고와 고뇌를 감내한 후 마침내 애벌레는 그 전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형상이 된다. 땅을 기어 다니며 빼꼼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던 존재에서 이제는 하늘에서 땅 전체를 바라보며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오고 가는 존재가 된다.

▲최성철 조각가
▲최성철 조각가

최성철 조각가는 이러한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한 모든 준비과정을 마쳤다. 2년여의 시간 동안 유럽을 여행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그는 내적 성찰을 마치고 지난 10월 본화랑에서 ‘조각가의 회화일기’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여행 중 느꼈을 감정과 생각, 이야기를 회화로 풀어놓았다. “이 인터뷰 이후에는 새로운 방식의 조각을 나만의 또 다른 언어로 이야기할 생각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제 또 다른 차원으로의 비상을 앞둔 조각가로서의 모습이 기대되는 바이다.

최 작가는 인하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미술원 조각과를 졸업했다. 조각에 색을 입히는 ‘색채조각’이라는 독특한 표현 양식을 추구해온 그는 전통적인 조각의 미학적 형식을 탈피하는 흐름을 주도해온 조각가이다. 조형성과 더불어 회화성을 조각에 투영한 최 작가는 조각을 토대로 다양한 회화적 시도를 즐겨왔다.

그는 조각가의 삶을 살며 이탈리아, 독일, 서울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중국 샤먼의 ‘한중조각가국제교류전’, 뉴욕의 ‘Art Hampton’, 스위스 바젤의 ‘BASEL SCOPE ART FAIR’, 평창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규모의 아트 페어 참여 작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탈리아 미누치아노 시립박물관, 이탈리아 우디네 시청ㆍ까라라 시청ㆍ포르둔지아누스 시청, 대한민국의 국립 현대 미술관, 콜롬비아 이바게 시청 등에서 현재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만남이 어려워 아쉽게도 서울문화투데이 본지와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그가 생각하는 조각이란 무엇이고 특별한 방식의 조각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화를 나눠보았다.

▲Apple of Paris-유혹/스텐레스 스틸위에 채색/설치/2009(사진=최성철)
▲Apple of Paris-유혹/스텐레스 스틸위에 채색/설치/2009(사진=최성철)

생각을 눈에 보이도록 입체화한 것이 조각
서울문화투데이 독자들에게 작가님이 생각하는 조각의 정의는 무엇인지 설명 부탁한다.
정말 작품 활동한 지는 꽤 되었다.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졸업하고 다시 유학 다녀오고 만 58세인 지금까지 조각만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조각이란 ‘생각을 눈에 보이도록 손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적 의미가 아닌 조각에 대해 내가 내린 정의이고 개인적인 생각이다. 평면에 생각을 풀어 놓으면 회화나 드로잉이 되고, 입체로 풀어 놓으면 조각이 된다.

많은 예술 분야 가운데 '조각'이라는 분야를 선택해 조각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나 혹은 계기가 무엇인가?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대학 은사인 백현옥 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대학을 다닐 때 학교 연구실이나 작업실에서 작품을 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그리고 교수님과 함께 작품을 하면서 작품이 완성되어가는 전 과정이 너무 좋았고, 한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의 비로소 맛보는 기쁨의 순간과 안도감이 나를 조각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Apple of Paris-유혹/부분/스텐레스 스틸위에 채색/설치/2009(사진=최성철)
▲Apple of Paris-유혹/부분/스텐레스 스틸위에 채색/설치/2009(사진=최성철)

이탈리아 ‘예술가와 기술자의 상생 관계’, ‘사물을 보는 시각’ 배워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 미술원에서 조각을 공부했는데 그곳에서 조각뿐만 아니라 특별히 경험하고 배운 것들 있는지.
이탈리아에 있으면서 많이 배우고 또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은 ‘예술가와 그 예술가의 작품을 생산하는 기술자와의 관계’이다. 이탈리아는 세계적인 대리석 생산지로 전 세계 조각가들이 가장 오고 싶어 하는 선망의 장소이다.

그곳에서 조그마한 모형(bozzetto:조각을 위한 스케치)을 기술자에게 보여주면 기술자는 그 모형을 원본으로 삼아 크고 웅장하게 키우는 작업을 한다. 이때 일어나는 예술가와 기술자와의 관계가 나에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한국에서는 이 둘의 관계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라면 이탈리아에서는 ‘동반자’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려는 예술가와 또한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커다란 작품으로 실현시켜주는 기술자. 이 두 사람의 상생관계가 나에게는 새롭게 다가오더라.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예술가의 작품을 잘 이해하고 잘 다루는 기술자를 마에스트로(maestro)라고 부른다. 

그리고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을 꼽으라면 유럽의 도시 공간과 건축이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광장이 있고 또 분수가 있으며 그 동네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조형물(monument)들이 있고, 또 그 주위를 감싸는 건축물들. 그것들이 특별한 감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동질성과 차별성에 대해 말해 달라.
동질성은 예술가로서의 작업 과정(proces)은 비슷하다는 것이고 반면 사물에 대해 생각(idea)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느꼈다. 

차별성의 예로는 의자에 앉아있는 누드모델을 스케치할 때 나는 모델 전체와 그가 앉아있는 의자까지 그리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시선으로 모델을 보고 그린다. 가령 손만 그리는 이, 또 발만 그리는 이 또는 눈만 그리는 이 등등… 그들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을 조상으로 둔 이들의 새로운 시각과 다채로운 관점이랄까? 

또 하나 다르다고 느낀 것은 색을 쓰는 방식이나 작품구성을 하기 위한 과정이 많이 다른 것을 느꼈다. 이것은 그들이 그린 그림이나 조각 작품들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소녀의 그리움은 푸르름이다/나무에 채색/140×155×690mm/2020(작가=최성철)
▲소녀의 그리움은 푸르름이다/나무에 채색/140×155×690mm/2020(작가=최성철)

◆ 색채는 핵심을 감추기 위한 방법론적 수단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조각에 색을 칠하면 조각 고유의 질감이나 양감을 잃어버려 조각다운 맛이 떨어진다는 말을 하지만, 오히려 재료가 가진 정수와 그것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조각에 색을 칠한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재료의 속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숨기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미켈란젤로를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공부도 많이 했다. 또 무엇보다 그를 닮고 싶었다. 내가 유학을 위해 떠난 이탈리아 피렌체공항에 내리자마자 찾은 곳은 미켈란젤로가 묻혀있는 ‘산타크로체성당’이었다. 그의 무덤 앞에서 동상의 발목을 손으로 부여잡고 기도했다. “나를 당신의 발뒤꿈치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라고. 

그때는 90년대 중반이라 돌로 조각된 미켈란젤로 조각상을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지금은 안 되지만. 운이 좋았던 거다. 정말 훌륭한 조각가가 되고 싶었고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그런 마음을 품고 학교를 다녔다. 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하면서 이탈리아 여행을 많이 했다. 이제와 밝히지만 학교 보다는 여행에 더 충실했다는 말이 맞겠다. 외부의 공간이 나에게는 학교나 마찬가지였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탈리아 전역에 너무나 좋고 훌륭한 조각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미 훌륭한 조각이 많고 또 실력 있는 조각가들 사이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렇게 유학 2년여 만에 내린 결정은 ‘구상작품 포기’였다. 그들을 닮지 말자. 내가 아무리 조각을 잘 해도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새로움’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고민 끝에 나온 작품들이 대리석에 색을 칠하는 것이었다.
 
결국 ‘핵심을 감추자’, 이것이 나의 작품을 표현하는 방식이 되었다. 세계적인 대리석 산지인 이탈리아의 까라라(carrara)에서는 뭐든지 대리석으로 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데 여러 가지 색이 칠해진 대리석으로 된 작품은 금방 시선을 끌었다. 좋은 평을 받았다. 그래서 다음엔 브론즈(bronze)에도 색을 칠했다. 나는 재료의 핵심을 감추어 버렸다. 관람객은 색이 칠해진 작품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느끼지 못하면 재료가 무언지 전혀 알지를 못했다.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의도한 것이다. 이게 재료의 속성을 숨기는 이유이다.

▲작품 앞에서 최성철 작가(사진=최성철)
▲작품 앞에서 최성철 작가(사진=최성철)

흔히들 ‘조각’이라하면 ‘크기, 재료의 성질, 소재, 촉각 등이 중요하다’하고 그것이 전통 조각이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조각 기법과 다른 자신만의 조각세계를 열어가는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전통 조각의 기법은 ‘자연으로의 회귀’이다. 말하자면 사람을 조각해 놓고 색칠할 때 피부는 살구색, 윗옷은 빨강색, 치마는 녹색… 이렇게 하는 것이 전통조각의 기법이다. 작업을 할 때 일반적으로는 전통적인 조각기법을 따르지만, 마무리는 나만의 방식으로 한다.

나의 작품은 재료를 선택해 공들여 깎거나 어떤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조각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내 자신 나름의 치밀한 논리에 의해 대상을 구획하고 분할해 여기에 생경한 색채들을 채워 넣음으로써 매우 이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조각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대상의 현존성을 은폐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채색을 선호한다. 조각에 색채를 가함으로써 재료의 명암이나 질감을 중성화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의 조각은 대리석이든, 브론즈든, 목조이든 간에 재료가 가진 속성이 은폐되고 촉각보다는 시각에 호소하는 특수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3차원적 공간에 존재하는 내가 표현하는 예술은 분명 조각임에 틀림없지만 표면은 색채에 의해 은폐되고, 조각 고유의 질감을 박탈당한 외피는 2차원적인 특성을 강조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이끈다. 

또한 나의 작업은 모더니즘의 카테고리 안에서 형태를 규정하고 이를 파기한 후 다시 조립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은 파괴와 조합이라는 행위와 형태간의 문제뿐 아니라, 시간성과 공간성, 재질감과 색감, 해체와 환원이 중층구조를 이루는 가운데 조각의 확고 부동성을 강조하며 하나의 절대미로 존재한다.

‘만든다’라는 전통적 작업 개념에서 탈피한 파괴의 행위와 조합은 물질이면서도 또한 비물질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조각의 딜레마적 정황의 환기이자, 부정형의 혼돈을 작업과정과 일체화시켜 가시적인 형태로 환원하려는, 자연주의적 질서의 역설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조각가가 브론즈나 돌이 자연의 일부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이것을 자연에서 분리시켜 새로운 것으로 가치를 부여한다는 모순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본질에 대한 보고서/5m×2m 캔버스위에 아크릴 채색/2020(사진=최성철)
▲본질에 대한 보고서/5m×2m 캔버스위에 아크릴 채색/2020(사진=최성철)

◆ ‘형태의 유동성’에 대한 긴장과 고독, 나의 숙명적 부담 
조각을 통해 대중들에게 말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무엇인가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 조각 개념에 대한 ‘인식론적 단절’이다. 기존의 조각이 3차원적 공간 안에서 형태, 매스, 공간의 문제를 주된 테제로 내세웠다면 나의 이야기는 고도의 지적 논리가 내재된 색채를 개입시킴으로써 ‘조각의 회화적 속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존 조각의 설명적 원리들을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조각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해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조각은 더욱 풍부한 지적 정의와 확장된 개념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각에 채색이 가해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나의 조각이 이전의 채색 조각과 다른 점은 고대 자연주의부터의 일탈이자 근대 물질주의로부터의 일탈이라는 이중성을 함의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조각과 회화의 속성을 모두 추구하는 양자선택의 의미일 수도 있고 또 그 역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의 조각에서 색채는 대상에 부여된 범칙에 순응함으로써 윤곽이 그에 할당하는 영역을 채우는 데에 그치지 않고 조각의 고정된 기능을 확장하거나 반대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조각은 형태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시행착오의 결과로 이룩된 산물이기도 하다. 이미지의 자명성을 포기한 모더니즘 미술이 형식의 유희를 즐겼다고는 하나 그것은 뼈를 깎는 인고의 과정이다. 조각가가 재료를 선택해 깎고 다듬어 형태를 만들어 가는 도중에 맞닥뜨리는 형태적 유동성, 즉 ‘어떤 형상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긴장과 고독, 그리고 노동으로 점철된 피 말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형태의 재료를 고갈시켜 극단적인 단순성을 추구하거나 엄격한 규칙들을 적용해 기하학적으로 구성하는 일, 그리고 풍부한 변용과 놀랍도록 환상적인 변형을 통해 재료가 지닌 활력을 뚜렷하게 제시하는 일 등은 구상조각과 결별한 나에게 지워진 숙명적 부담이라 생각한다. 이 인터뷰 이후에는 새로운 방식의 조각을 나만의 또 다른 언어로 이야기할 생각이다.

오랜 세월동안 작품 활동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고,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하는 본인만의 방법은 어떤 것이 있나.
내가 지금까지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람’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힘’이다. 또한 스스로 스트레스를 생산하고 받는다. 스스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이런 것이 지금까지 나를 놓지 않고 살아온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찍 깨어 난 로마의 아침은 번거롭다, 커피향이 참 좋다/캔버스에 아크릴/25.5×17.5cm/2020(사진=최성철)
▲일찍 깨어 난 로마의 아침은 번거롭다, 커피향이 참 좋다/캔버스에 아크릴/25.5×17.5cm/2020(사진=최성철)

2017년 홍콩 게이트웨이 아케이드의 아트리움에 작가님의 작품이 설치되었다. 단발머리를 한 작은 아이를 형상화한 형형색색의 조각들. 이 작품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가.
‘소녀의 꿈’을 표현했다. 오래된 이야기인데 한가한 오후 카페에서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손님이 카페로 들어왔다. 순간 조용하던 카페는 왁자지껄 해졌다. 그 중 한 아이가 조그마한 사과를 양손에 쥐고 카페 이곳저곳을 다니는 걸 보았는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카페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걸 스케치 해 놓았고 또 작품으로 완성 시켜 놓은 거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꿈’이다. 꿈은 각각의 모습으로, 또 각각의 색으로 꾼다. 그 꿈이 모두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았다.

2014년에 열린 서울국제조각페스타에 출품한 작품 가운데 바이올린을 형상화한 작품이 좋았다. 연주가들의 전유물인 바이올린을 조각으로 형상화한 이유는 무엇이고 바이올린에 다양한 색깔의 패턴을 그려 넣은 것은 어떤 의도인가.
서양 클래식을 본격적으로 접한 시기는 이탈리아 유학 때이다. 클래식 가수들과도 자주 보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다양한 악기들의 앙상블도 보고 또 귀로 듣곤 했다. 그 중 바이올린과 첼로의 아름다운 음들이 공간을 떠돌고, 또 머릿속에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색들로 채워지곤 했다. 그 아름다운 선율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이 작품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림 같은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 예술가에게 외로움은 강한 힘
최근 본화랑에서 유럽을 다녀오고 난 후에 그곳에서 보고 겪었던 것들을 작업한 회화 전시를 열었다. 유럽 여행을 통한 경험들이 회화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었나.
2018년과 2019년 2년여에 걸친 유럽 방문이다. 오랜만에 찾은 로마와 베를린 그리고 처음으로 여행한 몰타 등 모두 좋았다. 이 여행의 목적은 ‘오롯이 나 자신, 혼자만을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마음뿐이었다. 거대담론은 묻어두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자고, 혼자 커피 마시고, 혼자 돌아다니고… 

그야말로 ‘지극히 혼자’였다. 이런 것들이 작품에 고스란히 묻어난 것 같다. 본화랑에 오셔서 그림을 본 분들의 한결같은 말씀은 “외롭다”라는 말들이었다. 110여 점이 넘는 작품이 있었는데 말이다. 

작가에게 외로움은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모노포비아(monophobia) 즉, 혼자 있는 것에 대한 공포증이 많은 것 같다. 잠깐의 외로움도 용납되지 않는 모습이다. 손안의 전화기는 쉴 새 없이 문자와 신호를 퍼 나른다. 적극적인 소통의 시대를 대변하듯이. 하지만 작가는 혼자만의 시간, 즉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지극한 외로움은 강한 힘이 된다. 작가에게는.

▲그 때가 옳았던가 지금이 옳던가-베를린에서/캔버스에 아크릴/25.5×17.5cm/2020(사진=최성철)
▲그 때가 옳았던가 지금이 옳던가-베를린에서/캔버스에 아크릴/25.5×17.5cm/2020(사진=최성철)

조각 작품의 화려하고 경쾌한 색채와는 달리 이번 전시회의 회화 작품은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어두운 색채를 사용했는데 이유가 있나.
거대담론을 묻어두고 오롯이 개인적인 소소한 일상들을 기록했기에 여러 가지색을 사용하지 않고 절제된 몇 가지 색만을 사용하였습니다. 외로움은 화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은 절제됨’을 말합니다. 

저희 서울문화투데이 제4회 문화대상 시상식 상패를 너무나 멋지게 만들어주셨는데, 어떤 컨셉과 의미를 담았는지 늦었지만 듣고 싶다.
‘너무 멋지다’는 것은 과찬이다. 그때 사과에 대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었을 때이다. 마침 서울문화투데이가 ‘사과나무미디어’ 그룹이란 걸 알고 어렵지 않게 디자인할 수 있었다. 이 상패의 주제라면 ‘나눔’이다. 사과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가 참 많이 있는데, 가령 아름다움이나 사랑 그리고 건강 등… 하지만 유럽에서는 나눔의 의미도 있다. 왜냐면 사과나무에는 굉장히 많은 열매가 맺히기 때문이다. 그걸 많은 사람이 나누어 먹는다. 그래서 ‘나눔’의 의미가 강하다. 

대중들에게 어떤 조각가 혹은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꿈꾸었던 것은 그야말로 ‘유명한 예술가’였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제가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예술에 대한 본질(essence)을 뒤로한 채, 지금은 인간에 대한 실존(existence)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카프카(Franz Kafka)의 ‘변신’처럼 이젠 나도 이름 모를 벌레로 변하고 싶다. ‘자유로운 작가’로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