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 강남 갔던 제비가 순천 낙안읍성에 박씨를…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 강남 갔던 제비가 순천 낙안읍성에 박씨를…
  • 주재근/한양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20.12.2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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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주재근/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조선 전기 왕의 명령에 의해 편찬된 지리서가 있다. 역대 지리서 가운데 가장 종합적인 내용을 담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이다. 여기에 전라도 순천을 “산과 물이 기이하고 고와 세상에서 소강남(小江南)이라고 일컫는다”라고 평한 글이 실려 있다. 순천의 산과 물이 아름다워 중국 강남 지역에 비길만하다는 말이다.

판소리 흥부가를 듣다 보면 제비 이야기가 나온다. 흥부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니 제비는 무사히 강남으로 갔고, 다시 흥부집으로 돌아오면서 보은하고자 박씨를 물어다 주었다. 그 박이 크게 자라 열어 보았더니 쌀과 은금보화가 수북히 나와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제비가 겨울을 보내고자 갔던 강남은 중국인들이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上有天堂),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下有蘇杭)’ 라고 하는 중국의 강남 지방이다.

13세기 『동방견문록』을 쓴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폴로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호화로운 도시라 칭한 항주(杭州)에는 서호(西湖)가 있다. 중국 당나라(618~907) 이래로 백거이(白居易)와 소동파(蘇東坡) 등 여러 문인과 화가들이 서호와 그에 얽힌 사랑 이야기들을 시로 노래하고 사시사철의 풍경을 화폭으로 찬미하였다. 서호의 수양버들 사이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에 시대를 초월한 시적 감흥이 저절로 일어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유네스코에서는 중국 항주의 서호와 그 문화경관을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완전성, 진정성 등을 기준으로 세계유산으로 2011년 지정하였다.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는 순천(順天)은 산과 물이 중국의 강남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 해서 소강남이라 하였다. 순천에는 세계 5대 연안 습지인 순천만이 있고 여기에 펼쳐진 갯벌과 갈대, 철새들이 공존하고 있는 자연생태계의 보물창고이다. 

또한 순천에는 1397년 일본군이 침입하자 김빈길이 의병을 일으켜 처음 토성을 쌓은 이후 1626년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한 낙안읍성이 있다. 예전 지방의 관청과 민가를 둘러서 쌓은 성을 읍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읍성이 조선시대 104개소 였는데 1910년 일본의 읍성철거령으로 대부분 읍성들이 헐렸다. 현재 남아 있는 읍성은 낙안읍성을 비롯해 고창읍성, 해미읍성 등 약 16개 남짓 된다. 이들 읍성 가운데 낙안읍성은 독보적으로 옛 모습 그대로의 전통마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재도 실제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삶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낙안읍성에서는 매년 낙안읍성 활성화를 위해 ‘낙안읍성 민속문화축제’와 ‘전통향토음식축제’와 더불어 ‘전국국악대전’, ‘가야금병창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오키나와에 가면 들르는 곳이 옛 류큐국(流球國, 1429~1879)의 왕궁인 슈리성(首里城)과 류큐국의 전통촌락인 류쿠무라(琉球村)이다. 

낙안읍성과는 달리 류큐무라는 우리나라 한국민속촌처럼 전통 모습을 관광목적으로 재현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일본과는 다른 오키나와의 전통가옥에서 오키나와의 독특한 전통의상을 입어 볼 수 있고, 전통악기인 산신(三線)의 음악과 춤을 곳곳에서 보고 들을 수 있다.
 일본 오키나와의 류큐무라 민속촌처럼 해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 중국 항주의 송성(宋城)이다. 1996년에 조성된 송성은 중국 남송시대(1127~1279) 수도였던 항주의 거리와 가옥을 재현해 놓고 관광객들을 위해 결혼식 단막극과 악대들을 앞세운 가마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항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공연극으로 만든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은 대표 문화상품으로 관광객의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의 송성이나 일본의 류쿠무라가 인공적으로 조성된 테마파크라고 한다면 낙안읍성은 수백년 동안 후손들의 삶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가장 자연적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관아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지방의 정재와 반주음악, 문인들이 부른 시조, 서민들의 민요와 농악과 함께 전문적 예술로 발전된 가곡, 판소리, 산조 등을 다채롭게 볼 수 있는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최고의 현장 공연무대가 될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이 일반인들과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은 창덕궁 내 곳곳에서 다양한 음악과 춤들을 보면서 옛 정취를 떠 오를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순천시에서는 낙안읍성의 문화적·역사적·사회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세계유산 잠재목록 등재 이후 아직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하고 있다. 9년이 지난 지금도 순천시에서는 202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추진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민간에서도 등재를 위해 낙안포럼을 결성하여 열기를 이어가며 힘을 보태고 있다. 

낙안읍성이 세계문화유산 지정만이 목표가 아니라 지정되기 전 시민들과 국민들의 문화공감대 형성과 지정 이후 더욱 더 찾아보고 싶은 세계적 명소로서의 계획과 투자가 있어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국 항주 서호와 일본 오키나와 수리성은 그 곳의 역사와 문화를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인공적인 송성과 류큐무라로 세계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

순천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암사가 있고, 곧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순천만 갯벌이 있다. 이와 같은 세계유산과 함께 낙안읍성은 우리나라 읍성 문화와 전통 생활상, 전통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문화예술산업의 보고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중국 강남으로 갔던 제비가 낙안읍성으로 날아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박씨를 놓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