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현의 시론 ]피해자중심주의는 원칙이 아니라 캠페인이어야 한다
[허재현의 시론 ]피해자중심주의는 원칙이 아니라 캠페인이어야 한다
  •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기자/前 한겨레신문 기자
  • 승인 2020.12.24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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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현 리포액트 대표기자(前 한겨레신문 기자)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기자(前 한겨레신문 기자)

경향신문은 지난 8월 '박재동 화백 미투 조작 의혹' 보도를 한 강진구 탐사보도 전문기자를 징계했습니다.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미투 제기자에 대한 2차 가해성의 보도가 언론의 피해자중심주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이유입니다. 2020년이 마무리 되어가는 지금까지 강 기자는 경향신문 상대로 징계 무효처분 소송을 진행중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성추문 관련 의혹 보도를 할 때 피해자중심주의는 원칙처럼 제시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옳을까요. 결론부터 쓰면,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 가해' 개념과 용어에 대해선 여성주의 내부에서조차 2004년부터 비판적 문제제기가 계속 진행돼 왔습니다. 언론이 되레 이를 원칙처럼 내세우며 앞서간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피해자중심주의는 원칙이 아니라 캠페인이었다

피해자중심주의가 처음 대중에 소개된게 2000년대 초입니다. 90년대까지 대학총학생회,노동조합,사회운동단체 등 곳곳에서 성폭력 사건이 만연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사회운동가 100여명이 모여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 100인 위원회'를 만들었고 2000년 7월부터 2003년10월까지 활동했습니다. 

이 위원회 활동의 가장 큰 성과는 '피해자 경험에 기반해 성폭력을 이해해야 한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0인 위원회는 발간한 백서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성폭력 사건의 특징이 사적인 자리에서 은밀히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사실 자체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 사회를 성찰하기 위해 내던져진 일종의 '캠페인성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피해자 중심'이란 단어에 '주의'라는 단어가 붙어 '성폭력 사건 조사의 절대 원칙'처럼 변질되어 진보진영에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낀 일부 여성운동가들이 2004년부터 의문을 표했습니다.

2005년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내부집담회에서 '피해자중심주의' 대신 '피해자 관점'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된 바 있고, 2006년 정희진이 '성적자기결정권을 넘어서'라는 글에서는 나아가 "피해자중심주의는 여성주의가 아니다"라는 주장까지 합니다. 2017년에는 여성학자 권김현영 등이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토론회에서 "폭로중심의 피해자 정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시작했습니다. 

권김현영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피해자중심주의는 마치 피해자의 말이 곧 진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중략) 페미니즘은 가해자의 진술에 대한 해석투쟁의 영역이며, 2차 가해라는 말은 피해자 중심주의와 결합해서 그러한 해석투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피해와가해의 페미니즘,2018)

나아가 그는 피해자에게는 '피해의 증명 의무도 있다'고도 설명합니다. "피해자는 당연히 자신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해석할 권리가 있지만, 그 경험을 공론의 영역으로 가져올 때는 정당화의 의무를 지게 된다. 페미니즘은 그 정당화 과정에서 해석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지 무조건 편을 들어주는 언어가 아니다."

여성운동가 최미진은 좀더 나아가 "피해자중심주의는 증거주의로 대체돼야 하고 2차 가해 용어도 사용해선 안된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갑니다. "2차 가해 용어는 피해호소인의 말을 절대화 하는데 이용돼, 진실 규명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사건과 관련한 논의를 가로막고 도덕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논쟁, 2017) 

최미진의 견해는 워낙 급진적이라 여성주의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 상태에 있습니다. 다만 '피해자'라는 용어대신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여성운동가라는 점에서 눈에 띕니다. 

■"신뢰하되 검증하라"는 여성주의 이론이자 언론의 원칙

이렇게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가해'는 여성주의 내부에서조차 그 비판적 성찰과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자세한 검토없이 대중에게 '합의된 여성주의 원칙'처럼 제시하는 건 당연히 성급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덧붙입니다. 이글은 여성주의 논쟁에 개입하려는 게 아닙니다. 피해자중심주의가 틀렸다는 주장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반여성주의'라고 낙인찍힐 위험을 무릅쓰고 기자로서 이런 글을 쓰는 건, 권김현영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 논쟁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권김현영, 2017)  경향신문을 비롯 우리 언론인들은 일부 여성주의에만 집착하지 말고 모든 사조로부터 신중한 거리두기의 판단을 해야 합니다. "페미니즘이 싫어 테러조직 IS에 가담했다"는 2015년의 '김군'같은 일탈은 어쩌면 우리 언론이 대중에 여성주의를 오인하도록 만든 탓도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