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고향에 대한 독백적 사유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고향에 대한 독백적 사유
  • 윤 진 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1.01.2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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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윤진섭 미술평론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사태가 드디어 전시방식을 바꿔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변화해 가고 있는 전시방식은 향후 관객의 미적 체험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간 미디어아트가 활성화하면서 관객참여(audience participation)를 유도하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긴 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에 급증하고 있는 웹 기반의 전시방식은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호응이 없이는 감상 자체가 어렵다는 점에서 기존의 오프라인 전시와는 그 양상이 다르다. 만일 코로나 19를 비롯한 팬데믹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시방식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향후 기존의 예술계 양상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작년에 아마도예술공간에서 가진 [A Book + OFF KAWARA] 초대전에서 개념미술에 기반을 둔 독자적인 작업을 펼친 바 있는 권남희가 이번에는 3차원 가상현실을 통해 수십 년 간 꿈꿔온 세계를 보여주었다. 작년 권남희의 개인전은 아마도예술공간의 건물 전체를 1권의 책으로 설정하고 11개에 달하는 전시실을 각 페이지로 삼은 개념적인 전시였다. 그러니까 관객이 건물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곧 책 안으로 잠입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관객들은 각 전시장의 하단부에 밝게 빛나고 있는 네온의 숫자를 보면서 비로소 자신들이 책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권남희의 작업에서 이 ‘걸어 들어가는’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낯선 장소에 대한 탐색일 수도 있으며, 꿈 속에서 그리던, 추억과 낭만이 서린 애틋한 장소와 연관된 행위일 수도 있다. 이번에 권남희가 새롭게 시도한 3차원 가상현실의 세계 [당신이 눈물 흘리면 내가 함께 울어줄게요(When you cry....I will cry too)]는 후자에 속한다. 이 전시는 모두 4개의 작품들로 구성돼 있는데, 1. 등대로(To the light house, 2020), 2. 솔숲(A pine forest, 2020), 3. 안개잦은 지역(Foggy area, 2020), 4. 날들과 날들(Days and days, 2020)이 그것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강릉 출신인 작가의 추억과 관련된 것들이다. 작가의 고향인 강릉의 바다 안목에 있는 등대와 숲속, 대관령의 안개 등등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소와 사물들은 실존한다. 권남희는 그 장소들을 직접 찾아가서 대변하고 자신의 추억 속에서 그 의미들을 오늘의 현실에 소환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작가가 웹상에 구현해 놓은 이 장소들을 방문해서 가상의 체험을 하게 된다. 관객들은 스마트폰, 웹브라우저, 가상현실 안경 등을 통해 작품을 감상한다. 이때 물론 같은 장소와 사물이라 할지라도 관객이 체험하는 내용이나 질이 작가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서로 다른 환경과 시기에 성장한 관객들은 장소와 사물에 대해 각자 서로 다른 미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장소에 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관객들은 360도 회전이 가능한 가상공간 속에서 거리를 명시한 숫자(예, 10M, 20M...)를 비롯하여 안개지역 등의 표지판, 바람, 나무, 기억, 쉼, Silence, Winds, Birds 등등의 단어들, 텅 빈 입방체의 방 등등을 만나게 된다. 관객들은 웹상에서 기기(器機) 조작을 통해 대상과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작품 속으로 몰입하거나 다양한 심리적 반응을 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안개지역이나 숲속을 거니는 듯한 가상 체험을 통해 아날로그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디지털 미디어 아트 특유의 미적 체험을 하게 된다. 

 권남희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가상현실의 세계를 통해 고향인 강릉의 자연환경과 시간, 그리고 작가 자신의 사적인 추억들을 오늘의 현실에 불러오고 싶은 꿈을 마음 속에 지니고 있었다. 이번 가상현실 프로젝트는 한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영국, 독일 등 다양한 나라들에서 오랜 기간 동안 레지던시 활동을 펼쳐 온 권남희가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새로운 형식의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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