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무용가 육완순의 편지
[성기숙의 문화읽기]무용가 육완순의 편지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1.01.2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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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며칠 전 귀한 책 한권을 받았다. 무용가 육완순 선생이 쓴 『내가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이다. ‘육완순의 편지’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육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주고받은 서신 형식의 글을 묶은 것이다. 책에는 약 100여명의 국내외 무용가들이 등장한다. 무용을 평생의 업(業)으로 한 스승과 제자 사이를 편지 형식으로 매개한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랑’이다. 

알다시피 육완순은 한국 현대무용의 대명사로 불린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용을 전공하기 위해 몇 달 모은 쌀을 들고 고향을 떠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무용은 곧 기생들이나 하는 것으로 폄훼되던 시절의 얘기다. 대학을 마치고 1961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 지배와 6.25 전쟁을 겪은 가난한 나라의 무용학도가 혈혈단신 태평양을 건너간 것은, 오로지 ‘세계적인 무용가’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수학하면서 세계적인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 호세 리몽, 엘빈 에일리 등을 사사했다.

귀국 후 1963년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로 부임한다. 일본 유학파 박외선 선생이 이화여대에 무용과를 창설한 시기와 맞물린다. 그해 육완순은 명동 국립극장에서 첫 현대무용발표회를 열었다. 반향이 컸다. 형식 파괴의 자유로운 몸짓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무용계 원로들은 혹평한 반면, 젊은 세대는 그녀의 파격을 환호했다. 

육완순의 무용인생에서 안무가로서의 궤적은 두드러진다. 수십 편의 안무작에서 확인된다. 특히 한국적 주제를 천착한 작품은 단연 돋보인다. ‘무녀도’, ‘초혼’, ‘숲’, ‘학’, ‘한두레’, ‘실크로드’ 등이 그것이다. 서양춤의 기법에 한국적 정서를 투영한, 이른바 육완순의 ‘현대춤의 한국화’ 작업은 유의미한 성취로 여겨진다. 

그밖에 ‘슈퍼스타 예수그리스도’ 역시 눈여겨 볼 작품이다. 1973년 영국 작곡가 앤드루 웨버의 록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한국적 현대무용으로 승화시켜 주목을 끌었다.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견인한 수작으로 손꼽힌다. 국내외에서 지금껏 롱런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기념비적이라 하겠다.

육완순은 개인 창작활동을 넘어 지도자로서 실천하는 무용가를 표상한다. 1975년 이화여대 출신 현대무용 전공 제자들로 구성된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창단은 그 좋은 예이다.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춤을 추자는 시대정신을 표방하여 젊은 세대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 대부분이 컨템포러리무용단 출신이라는 점은 예사롭지 않은 기록이다.

육완순은 교육자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해방이후 신무용 2세대 중심의 무용연구소 출신이 주도하던 무용계는 박외선에 의한 춤아카데미즘 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지형에 놓여진다. 미국 유학파 출신 신진교수 육완순은 남다른 열정과 자유로운 창작정신으로 예술춤시대를 견인하기에 이른다.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그녀를 사사한 적지 않은 숫자의 제자들은 후일 대학교수가 되었다. 이로써 미국 유학시절 육완순이 사사한 마사 그레이엄의 긴장과 이완(contraction and release) 테크닉은 상아탑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무용가 육완순은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 ‘현대무용의 개척자’ 등 다양한 수식어로 표현된다. 이화여대 교수를 지내면서 한국 현대무용의 교육이론을 정립하였고,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또 이 땅에 최초로 미국식 현대무용을 도입, 자유로운 창작이념을 구현하며 예술춤의 진화를 선도한 업적이 크다. 나아가 한국현대무용협회, 한국현대무용진흥회 등을 창립하여 현대무용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 무엇보다 현대무용의 공적(公的) 제도화를 위한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2010년 창단된 국립현대무용단은 육완순과 그의 제자들이 기여한 공적 헌신의 소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완순이 펴낸 『내가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는 ‘세계적인 무용가’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이 실현되어 가는 길목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과 나눈 속 깊은 기록이다. 사제지간의 첫 인연을 비롯 공연활동과 해외유학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발판이 돼준 과정에서 만난 제자 혹은 후배무용가들과 얽힌 다양한 뒷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육완순의 대표작 ‘슈퍼스타 예수그리스도’에서 주역으로 발탁된 무용수는 스타탄생을 예고했다. 막달라 마리아역의 김화숙, 박명숙, 안신희 등이 대표적인 무용가로 손꼽힌다. 주인공 예수 역은 더욱 관심이 높았다. 박호빈·최두혁 등은 예수역을 맡으며 스타로 성장하였고, 이후 중견무용가로 일가를 이뤘다. 

현대무용이 낯설었던 시절 호세 리몽의 공연을 접하고 진로를 선택했다는 김복희는 육완순의 제자 중 최초의 대학 전임이 되면서 이른바 ‘제자교수’의 신호탄이 됐다. 지성적 안무가의 표상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역시 대학시절부터 이성적이었고 춤에 대한 미학관이 남달랐다고 술회한다.

육완순에게 제자 하정애는 특별한 존재다. 무용이 상아탑에 편재된 이후의 첫 결실이기에 더욱 그렇다. 육완순은 그녀에 대해 “한국 현대무용을 개척해 가는 동반자였다”고 회고한다. 하정애는 1985년 국제현대무용제 추진당시 공연윤리위원회에 소환될 위기에 처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예술가다운 해법을 제시한 스승 육완순의 대범함을 찬탄하며 존경심을 표한다. 이렇듯 한국 현대무용의 역사 뒤안길엔 늘 그녀가 버티고 서 있다. 물론 과오도 없지 않았다. 

1933년생인 육완순 선생은 무용계의 산증인이자 모두의 스승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장르를 넘어 여러 무용인과 맺은 인연 또한 남다르다. ‘영원한 지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에 대해, “한국인의 긍지이며 세계 무용계에 자랑할 무형자산”이라고 칭송한다. 온유하고 겸손한 품격있는 예술가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전미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매년 새해 손글씨로 덕담을 쓴 수첩 선물을 떠올린다. 해외공연 때 스승 육완순에게 노리개 선물상자와 함께 편지글을 받은 기억을 회상하는 제자도 있다. 그밖에 제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악명(?) 높은 새벽연습의 내력, 트레이드 마크가 된 올림머리의 기원 등 일상의 모습을 헤아리는 것도 흥미롭다. 

스마트폰 하나로 거의 모든 소통이 해결되는 이 즈음 무용가 육완순이 제자 혹은 후배 무용가들과 주고 받은 편지형식의 글귀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사랑의 말’을 담고 있기에 더욱 곡진(曲盡)하게 읽히는 것 아닐까? 세월의 여백에 감춰진 속살을 읽으며 또 다른 ‘세계적인 무용가’를 꿈꿀 미래세대를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