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 19세기 민족음악Ⅱ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 19세기 민족음악Ⅱ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 승인 2021.01.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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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19세기에 보헤미아는 오스트리아의 통치 아래 있었다. 1848년의 혁명은 스메타나를 열광적인 보헤미아 민족주의자로 만들었다. 그는 이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자유의 노래’, ‘학도병 행진곡’, ‘국민군 행진곡’을 작곡, 체코의 독립과 자주를 위한 싸움에 앞장섰다. <블타바>는 6곡의 교향시로 구성된 <나의 조국> 가운데 두 번째 곡이다.  

그의 결혼은 행복하게 시작했으나 불행하게 끝났다. 어린 네 딸 중 세 명이 죽었고 아내 카테르지나마저 결혼 10년 만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셋째 딸 조피에 의지하여 은둔생활을 하던 그는 1874년 <나의 조국> 중 첫 곡 <높은 성>(비셰흐라드)를 쓸 무렵 귀병을 앓기 시작했고 1879년 여섯번째 곡 <블라니크>를 쓸 때에는 심한 이명, 두통, 현기증 끝에 청력을 잃고 말았다. 스메타나는 고통과 좌절 속에서 이토록 신선하고 화려한 작품을 써 내려간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모차르트나 리스트와 같은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지만 현실에서는 베토벤과 같은 고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오래 전에 사망한 모차르트와 베토벤 앞으로 편지를 쓰다가 안 되니까 자기자신 앞으로 편지를 쓰는 등 극도의 절망 속에서 만년을 보냈다. 1884년 4월, 그는 프라하의 지방 정신병원에 수용됐고, 그해 5월 사망했다. 스메타나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프란츠 리스트는 말했다. “그는 진정한 천재였다”  

체코 출신의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은 모두 5개의 녹음을 남겼는데, 이 가운데 71년 보스턴 심포니 연주와 90년 체코 필하모닉 연주를 먼저 꼽을 수 있다. 쿠벨릭이 서방 세계에 망명 중이던 71년 연주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90년 ‘프라하의 봄’ 실황 연주는 오랜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42년만에 귀국, 민주화된 조국에서 지휘한 감격적인 연주이다. 이날 연주회에는 하벨 대통령을 비롯한 청중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지휘에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시벨리우스(1865~1957)의 조국 핀란드는 ‘숲과 호수의 나라’로 불린다. 이 나라는 전국토의 70퍼센트가 원시림으로 덮여있고 크고 작은 호수가 6만개나 된다. 시벨리우스가 태어나고 젊은 시절을 보낸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핀란드는 이웃 러시아의 압제에 허덕였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핀란드를 러시아에 병합하려고 자치권을 폐지하고, 의회와 언론을 탄압하고, 러시아어를 강요하는 등 온갖 핍박을 가했다. 암울한 시대의 한복판, 시벨리우스는 상처 입은 조국에 대한 피끓는 사랑을 담아 <핀란디아>를 작곡했다.

이 곡은 1900년 7월 2일 파리의 만국박람회장에서 헬싱키 필하모닉의 연주로 초연됐다. 당시 ‘수오미’(호수의 나라)란 제목으로 발표하여 핀란드 국민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는데, 러시아 정부는 내용이 너무 선동적이라며 연주 금지령을 내렸다. 마침내 1904년, 핀란드 국민이 일으킨 대파업에 러시아 정부는 충격을 받고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이 곡도 해금되어 제목도 <핀란디아>로 당당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이 음악을 들으면 짙은 안개에 잠긴 호수와 깊은 숲의 정경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곡은 결코 핀란드의 웅장한 자연을 묘사한 음악이 아니다. 여기에는 핀란드를 짓누르는 암울한 공기, 그리고 이를 단숨에 씻어내려는 민중의 뜨거운 열정이 있다.
금관의 묵직한 포효, 팀파니의 격정적인 박동으로 시작한다. 감정이 서서히 고조되고, 마침내 걷잡을 수 없는 함성으로 폭발한다. 회오리바람처럼 솟아오르는 현악의 몸부림이 가세하고 당당한 민중의 행진이 시작된다. 금관의 거침없는 포효, 햇살처럼 찬란한 심벌의 환호는 현악의 거대한 소용돌이와 만나고, 이윽고 클라이막스에 도달한다. 합창과 목관이 차분히 생각에 잠겨 ‘핀란드 찬가’를 노래한다. 
 
  “오 핀란드여, 보아라, 날이 밝아온다. 
   밤의 두려움은 영원히 사라졌고, 하늘도 기뻐 노래하네. 
   나 태어난 이 땅에 아침이 밝아오네. 
   핀란드여 높이 일어나라, 노예의 굴레를 벗은 그대, 
   압제에 굴하지 않은 그대, 오 핀란드, 나의 조국….” 

핀란드 사람들은 지금도 수많은 행사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되새긴다. 그러나 <핀란디아>는 핀란드 국가가 아니다. 이 노래를 새로운 국가로 하자는 의견이 대두했으나 기존 국가와 혼동할 우려가 있어서 채택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