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 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음악을 발생시키는 그곳에 있고 싶다”
[Culture Interview] 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음악을 발생시키는 그곳에 있고 싶다”
  • 인터뷰·정리/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1.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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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퍼러리-시나위(神我爲)’라는 새로운 원리로 전통음악 창작, “시나위 하자”
한예종 교직에서 다시 야전으로…되돌아갈 다리 스스로 끊다
코로나 시대, 예술과 기술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미래 극장’ 제시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ㆍ진보연 기자]‘시나위’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이끄는 록 밴드. 또는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피리 등 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자유로운 기악 합주 양식의 음악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여러 악기가 들려주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시나위’ 안에서 뿜어져 나오지만, 이를 이어주는 맥은 같다. 다성적이면서도 비정형적인 선율들이 만들어내는 음악. 우리 음악을 관통하는 정체성과 철학이 시나위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사진=경기아트센터)

그리고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시나위’에서 또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다. 연주자 개인의 감각적인 즉흥 음악성 구현과 합주를 통한 조화를 추구하는 ‘시나위’와 작곡가가 만든 작품을 연주자 집단이 소리로 재현하는 음악인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만나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원일은 연주자, 작곡가, 연출가, 음악감독, 방송 진행자 등 전방위로 활동하며 국악의 매력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는 1983년 국립국악고를 졸업(피리 전공ㆍ타악 부전공)했으며, 대학 졸업 무렵에는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악작곡을 전공했다. 작곡가로서는 1994년 서울 무용제에서 ‘족보’로 음악상을 받았으며, 1996년 장선우 감독의 ‘꽃잎’, 1998년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1999년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 2007년 장윤현 감독의 ‘황진이’ 등 영화음악으로 대종상을 수상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원도의 힘’(1998)과 ‘생활의 발견’(2002), 박훈정 감독의 ‘혈투’(2011),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2006) 속 음악도 그의 작품이다. 

그간 1993년 창작타악그룹 푸리와 2006년 그룹 바람곶을 창단해 이끌었으며 2006년부터 2018년까지 화엄음악제 총감독을 맡았다. 또한 국립극장 여우락페스티벌 예술감독,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 제100회 전국체전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으며 이벤트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가 한 단체에 터를 잡은 건 201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임기를 마무리한 지 4년 만이다. 

원일 예술감독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함께 우리 민속음악 ‘시나위’에 담긴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한국의 음악과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을 수용하고 창작해내고자 한다”라며 “혼자 하는 것보다 단원들과 함께할 때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라며 취임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원일 예술감독ⓒ김재성 작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원일 예술감독ⓒ김재성 작가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것이 취소되고 미뤄진 지금, 원일 예술감독이 이끄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바이러스로 인해 고립된 극장 문을 열고 나와 ‘미래 극장’을 찾아 나섰다. 예술과 기술을 결합해 단순 관람에 그치던 1차원적 감상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참여가 가능한 가상 극장 플랫폼을 마련했다. 가상 국악기와 단원들의 아바타, 1인칭 카메라, 라이브 스트리밍 등을 통해 관객들은 온라인에서도 주체적 체험이 가능하게 됐다. 

정형의 예술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원일 감독을 만나 그가 추구하는 예술과 그 속의 ‘시나위’란 무엇인지 들어봤다. 

지난 2020년은 시작부터 끝까지 온통 ‘코로나’였다. 많은 것들이 좌절ㆍ연기된 상황에서 특히 예술가들은 직격으로 피해를 입었는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한 해는 어떠했는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공연예술계가 전부 멈춰버린 한 해였다. 개인적으로는 우울감이 크게 다가와 힘든 시기를 지나왔다. 사적인 부분을 포기해가면서, 나름대로 큰 각오와 목표를 가지고 이곳으로 왔다. 나의 의욕과는 달리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매일을 보내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한계가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팬데믹 상황이 나아지길 마냥 기다리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계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예술 생태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거대 제약이 생겼지만, 온라인에서는 새로운 공간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 11월 경기아트센터에서 선보인 ‘메타 퍼포먼스: 미래 극장’ 역시 정형의 무대에서 벗어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았나?

코로나19라는 예측하지 못한 위기로 인해 무대 생태계가 변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존의 틀을 깨는 참신한 시도가 필요하다. ‘메타’는 그리스어(meta)에서 유래한 말로 ‘~를 넘어서’란 뜻이다. 지금은 철학에서 파생한 ‘~에 대해서’란 의미로 많이 쓰이는데, 어떤 분야가 그 범주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 단어 앞에 붙여 쓴다. 즉 ‘메타 퍼포먼스’란 ‘퍼포먼스에 대한 퍼포먼스’인 셈이다. 

이 공연은 예술과 기술을 결합해 1차원적 공연 감상 방식을 바꿔 놓았다. 관객은 준비된 길을 따라가며 공연을 위해 만든 가상 극장 플랫폼을 통해 공연에 참여했다. 프로젝션 매핑된 공간 속에서 증강현실(AR), 가상 국악기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아바타, 1인칭 카메라, 라이브 스트리밍 등을 체험 가능토록 했다. 3D 기반의 극대화된 시각적 효과와 딥러닝을 이용한 사운드도 제공됐다. 

미래극장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무도 진행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 공연의 주인공은 철저히 관객이었다. 관객이 무대와 무대 위 퍼포먼스를 모두 선택했다. 우선 극장은 4계절을 의미하는 4개 공간으로 나뉘고, 12간지를 기준으로 나뉜 12번의 공연이 24시간을 채웠다. 

방역복 위에 웨어러블 카메라를 착용한 현장 참여자 5명과 이들을 따라다니며 골프 ‘갤러리’처럼 각 공간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온라인 관객 20명까지 총 25명이 공연에 참여했다. 또한 온라인 방송 플랫폼 트위치에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채널에 접속 후 무료 관람이 가능했다. 현장 관객들은 직접 공연을 대면하지만, 극장을 선택하거나 노래, 춤, 연주 등에 대한 선택권은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카메라에 실시간으로 담기는 영상을 지켜보는 온라인 관객들이었다. 총 12개의 질문과 온라인 관객이 선택한 답으로 무대와 공연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이러한 과정으로 공연을 만들어가고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온라인 관객들이 공연의 주도권을 갖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공연예술의 영상화 시장 확대가 아니었다면 생각지 못했을 거다. <메타 퍼포먼스: 미래극장>은 예술과 기술이 융합된 미래 극장을 거닐며 수동적인 온라인 감상자가 점차 능동적 퍼포머로 변하는 과정을 추구했다. 아울러 이 공연이 불안정한 극장의 미래를 위한 혁신적 시도이자 또 하나의 대안이 됐길 바란다. 

관객이 주도권을 쥔 공연이라는 것이 매우 특별한데, 미래극장을 진행하면서 아쉬웠던 점도 있었을 것 같다.

공연 준비 과정에서 아쉬운 건 항상 시간과 예산이다. 특히 이번 경우엔 협력 기관 한 곳이 내부 사정으로 참여를 번복해서, 홍보 마케팅 예산이 훅 빠져나갔다. 코로나19 때문에 해당 기관도 어쩔 수 없던 상황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프로그램 진행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경기아트센터에서 도움을 받아 불행 중 다행으로 진행이 가능했다. 

예술가들의 창작ㆍ공연ㆍ전시 형태가 코로나19 이후 변곡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시장 전체에 위기를 가져왔지만 언택트 시대를 견인하기 위한 활로 모색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렇다. 준비되어 있다면 어둠이 걷히고 좋은 시기가 왔을 때 반드시 빛날 거라 생각한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준비되어 있다. 지난해 6월부터 5개국 유럽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직도 네덜란드나 콜롬비아 등 여러 곳에서는 계속 공연 요청 메일이 온다. 그들은 ‘시나위 오케스트라’라는 말을 이해하고 있으며 우리의 음악을 듣고 싶어 한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원일 예술감독ⓒ김재성 작가

재발견 되고 있는 ‘한국’이라는 코드가 있다. 우리를 많이 궁금해한다. 한국 음악에는 서양음악에는 없는 여백의 깊이가 있다. 우리 고유의 예술을 설명할 때 여백의 미란 말을 하지 않던가. 음들이 수직으로 쌓인 것이 서양 음악이라면, 우리 음악은 음과 음 사이 공간으로 음미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청각뿐 아니라 시각과 촉각으로도 느끼는 음악의 감각적 행위는 이미 꽉 짜인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음과 음 사이의 간격’과 그 속에 성기게 깃든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콘서트 메디테이션 역시 수출하기 좋은 레퍼토리이자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한국 음악의 특성에서 비롯된 치료 효과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음악을 통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하나의 공연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그게 바로 콘서트 메디테이션 <반향>이다. ‘반향’은 소리가 어떤 장애물에 부딪혀 반사돼 다시 들리는 현상이다. 반사된 소리를 되새기는 것과 같이 인생에서 지난 일 년을 반사되는 지점으로 보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의 공연이다. 

경기도립국악단의 이름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로 변경한 것은 세계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보인다. 아울러 ‘국악’ 대신 ‘시나위’라는 단어를 넣어 정체성과 본질을 잃지 않도록 일깨우는 이름이 완성됐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시나위’로 대표되는 우리 고유의 음악과 ‘오케스트라’의 형식ㆍ구조를 결합해 국악이 가진 고정관념을 돌파하고자 하는 음악 철학이 담겨있다. 쓰여 있는 전통음악에 대한 단순 재현이 아닌 창조 음악 행위를 하는 주체라는 정체성을 담는 이름이다. ‘국악관현악단’ 혹은 ‘국악단’으로 우리 음악을 특정 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에 시의적절하게 대처하며 유동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를 지향한다. 

아울러 ‘국악’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우리를 통치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최대한 이를 대신할 수 있는 말을 찾고 있다. 나는 우리음악, 한국음악이라는 의미에서 나아가 예술 실천ㆍ창작의 뜻을 담은 시나위를 선택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예술단의 명칭 변경과 운영 방식의 변화에는 단원들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 설득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26년간 유지되던 시스템과 타이틀을 바꾸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이곳에 정식 취임하기 전, 단체의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면 계획한 곳까지 나아갈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하며, 명칭 변경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득했다. 10시간 정도 회의를 거친 끝에 결국 우리의 철학이 담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내가 이곳에 오면서 바뀐 것은 명칭만이 아니었기에 주말마다 시간을 쪼개서 단원들과 몇 시간씩 토론했다. 이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서로 맞지 않는다면,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밝혔고, 단체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나는 연주자 개개인이 보여주는 ‘시나위’에 우리 음악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개별 연주자의 뛰어난 역량이 앙상블을 이룬다면 그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다. 

이전보다 확실히 연습량도 많아지고, 자기 계발의 필요성도 늘어나 피곤하겠지만 단원 각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슷한 시스템으로 26년간 관성적으로 운영되던 단체다. 녹슨 부분들도 있을 테니, 기름칠하고 닦아서 쓸 만한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분명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드디어 실력 발휘할 시기가 왔다’라고 생각하는 단원도 있을 것이다. 

감독으로서는 좋게 말하는 부분이 있지만 여긴 프로 예술단이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고 있으니까, 능력이 안 되면 당연히 아웃이다. 이런 냉정함이 단원들에게 부담을 주겠지만, 개개인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시나위를 하려면 이 정도 부담감은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개된 2021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라인업이 매우 흥미롭다. 다양하고 폭넓은 시도가 기대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작업이 있다면?

올해 라인업 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것은 바로 뮤지컬 <금악>이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에 전해지며 아무도 해독하지 못하던 악보인 <금악>을 둘러싸고 궁중 음악가들과 왕권 주변의 인물들이 펼쳐내는 미스터리 사극 뮤지컬이다.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하며 예악 정치의 원대한 꿈을 실현하려던 비운의 왕세자 ‘이영’(효명세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예약을 통해 이름만 남아있던 고구려와 신라 때의 궁중무용을 되살리고, 최초의 궁중 독무 춘앵전 외 무려 25종의 궁중무용과 이에 맞는 악장 및 가사를 직접 만들었다. 더불어 임금의 덕을 칭송하는 글을 직접 지어 신하들에게 읽게 했다. 이영은 왕권 회복을 위해 칼 대신 예악을 정치적 무기로 삼았던 것이다. 

뮤지컬 형식을 띠고 있지만, 우리 음악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참여하는 국악 뮤지컬로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단체가 국악관현악단의 틀에서 벗어난 시나위오케스트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전통음악 콘텐츠를 가장 전문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악단은 경기도에 우리뿐인 데다가, 창작 능력까지 갖춘 유일한 단체다. 능력이 있는데 시도해 보지 않는 것은 재능 낭비가 아닌가.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총체적 언어다. 이번 작업은 시나위오케스트라가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높일 기회가 될 것이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원일 예술감독ⓒ김재성 작가

오케스트라가 뮤지컬을 한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원 감독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웃음)
소리에 대하여 넓히고 확장한다는 복선이 이거였구나.

금지곡이라면 궁금해지지 않나. ‘금지의 시대가 있었구나. 금지된 정치적 이유가 있었구나.’ 식의 이유 말이다. 이처럼 ‘왜 금악일까? 왜 해독되지 못했나?’라는 질문을 통해 금악의 이유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그리고 해독하는 순간 튀어나오는 어마어마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슬기둥 멤버로 시작해 푸리, 바람굿 등 연주단체를 통한 퓨전 음악 활동은 새로운 장을 열었고, 후배들에게 많은 자극이 됐다. 최근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날치, 악단광칠 등의 활동을 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과거 나의 음악을 비롯한 이들의 창작 활동 모두가 ‘시나위’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시나위는 동시대적 요소가 중요한데, 이는 곧 문화적 흐름이다. 이 흐름을 파악하면서 동시에 변하지 않는 본질까지 가져가야 비로소 진짜 시나위, 진짜 퓨전 음악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독특한 실험정신을 발휘한다고 해서 이 모든 과정이 국악 대중화에 기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퓨전이 대중의 입맛에 맞을 순 있지만 본질을 보존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정체성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뭘 해도 되고 뭘 하면 안 되는지 잘 아는 사람들만이 좋은 음악을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다. 

예술단의 성취를 위한 노력 외에, 개인의 예술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과 방향성이 궁금하다. 

아티스트와 교수 사이에서 갈등하던 시기가 있었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인 음악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교수님 중에도 두 가지를 모두 훌륭히 해내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하지만 나는 한 곳에 몰입하고 싶었고, 예술 쪽에서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10년간 몸담았던 한예종에 사표를 내고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됐다. 어중간하게 남은 생을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냈다. 힘들 때 뒤돌아보며 미련을 갖게 될까 봐 되돌아갈 다리를 끊은 것이다. 

그렇게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계속하고 싶었으나, 어느 단체에 소속되길 끊임없이 제안받았다. 처음엔 거절도 많이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을 함께할 수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 확신을 준 곳이 바로 경기아트센터였다. 공공단체로 어려움도 있겠지만 혼자 하는 것보다 단원들과 함께할 때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결심하게 됐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경기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겠다’라는 포부가 나온 것인가?

‘경기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음악’이란 경기도 지역 사회와 결합해서 만든 음악으로 이 지역 분들을 팬으로 만들면, 그걸 세계에서 보고 싶어 할 것이라는 뜻이다. 예술단체에 언제나 나를, 내 작업을, 내 공연을 기대하고 지켜봐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동력이 된다.

세계화를 노리면서 이 지역 도민들의 취향도 맞추고 싶으니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결국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다. 그리고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자리하고 있는 용인 지역 분들을 우리의 팬으로 만드는 것은 여전히 안고 있는 숙제이다.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했던 기자간담회 당시 “지역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어떻게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전 세계인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나위’는 우리 예술과 일상 속에서 어떻게 발생하고 파생될 것이라 생각하는지?

미래의 코드는 ‘기본소득’이 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시대가 오면서 벌써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쟁이 뜨겁지 않나. 이 가운데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원론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일단 노동을 해서 돈을 번다는 개념이 상당히 의미 없어지고 부에 대한 개념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점점 정신적인, 초월적인, 종교적인 무언가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영성적인 것. 영성이라는 것은 자신이 맡고 있는 범위나,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존재를 초월해서 연결된다. 

그런데 인간이 한 개인을 초월해서 확장되면서 초월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중 하나가 바로 예술이며, 나는 내가 하는 음악과 자연스레 연결 짓게 된다. 다성적이면서도 비정형적인 선율 흐름을 만들어내, 음악적으로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곡’이자 무속 의식에서나 공연장에서 연주되는 곡인 '시나위'에서 착안이 시작됐다. ‘신아위(神我爲)’라는 새로운 창작원리로써 각기 존재하는 영적인 주체가 음악을 함으로써 음악이 되어가는 체험 중, 생명의 에너지로 예술적 생성-소멸과 같은 신적 영역이자 영적 영역 어딘가에 다다르고자 하는 시도이다. 

▲국악방송 ‘원일의 여시아문’
▲국악방송 ‘원일의 여시아문’

국악방송 ‘원일의 여시아문’ 진행을 맡고 있다. 다양한 예술인들과의 만남이 음악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여시아문’을 진행한 지 5년 정도 됐는데 지금까지 만난 예술가들이 대략 200여 명 정도 될 것 같다. 이 사람들은 다 이도공간이고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자기 세상을 대중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본인의 스타일로 음악을 해내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세상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예술가들을 먼저 만나 인터뷰하기도 한다. 주어진 대본은 따로 없다. 프로필을 쭉 읊어준 다음 떠오르는 대로 질문을 시작한다. 진짜 시나위를 하는 것이다. 그저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형식인데, 어느 순간 본심이 훅 나올 때도 있다.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저도 크게 감동할 때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가장 좋은 건 역시 음악적 영감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꼭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수많은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아이디어가 스파크처럼 확 일기도 한다. 

어떤 예술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면 참 좋겠다. 그리고 아주 많은 수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 음악이 계속 살아남아 여러 사람이 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더 널리 울려 퍼져, 단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