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의 레지던시: 다자주의와 평등, 협력
코로나 이후의 레지던시: 다자주의와 평등, 협력
  • 윤지수
  • 승인 2021.02.0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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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수(1992년 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를 나와 '미술이론의 공부와 연구를 위해' 네델란드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특히, 동시대 문화 현상과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미술, 과학, 역사를 포함한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 관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윤지수(1992년 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를 나와 '미술이론의 공부와 연구를 위해' 네델란드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특히, 동시대 문화 현상과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미술, 과학, 역사를 포함한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 관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팬데믹 상황으로 ‘다자주의(多者主義, multilateralism)’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지난 9월 여성가족부에 의해 주최된 성 평등 포럼에서 뉴욕대학교 국제학센터 교수인 앤 마리 괴츠(Anne Marie Goetz)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대만의 총통 차이잉원(蔡英文, Tsai Ing Wen)의 효과적 대응을 예시로 들며 여성 리더들이 코로나 19 방역을 선두지휘하는 나라가 코로나와 관련된 사망률이 6배나 더 낮다고 언급했다. 그는 강의를 통해 ‘다자주의’를 강조하며 케어를 중심으로 한 사회 변혁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 또한 ‘다자주의적’ 외교를 통해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이 있을 때 코로나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연설한 바 있다. 

팬데믹 상황으로 예술계 레지던시가 함축하고 있던 다자주의적 요소 또한 부각되고 있다. 이는 레지던시의 온라인 전환 때문이다. 200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연구하여 발간한 『미술 창작 스튜디오 운영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한국의 레지던시는 창작중심형, 프로젝트형, 교류 협력형, 지역 중심형의 4가지 형태로 운용되고 있는데, 레지던시가 포괄하고 있는 많은 의미 중 단연 중심이 된 것은 ‘공간 제공’이었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창작 공간을 지원하고, 이에 더불어 거주 공간까지 제공하는 것이 레지던시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주라는 것은 이 연구가 제안하는 ‘발전 방안’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 거시적인 방안으로는 ‘지역협력을 배제한 공간지원의 필요성’, ‘예술창작기반에 대한 현황조사’ 등이 있었고, 미시적으로는 ‘레지던시 전담팀의 조직화’와 ‘창작스튜디오 공간 지원 사업의 재설계’, 그리고 ‘전문인력 지원 및 공간 지원’이 있었다. 레지던시의 온라인 전환은 기존 레지던시가 중점으로 두던 공간제공 서비스를 무의미화하는 흐름으로, 대신 그 초점이 '교류'와 '협력'에 맞춰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필자는 ‘Tribe-against-machine’이라는 컨셉으로 전통공예와 기술 결합을 구현하는 온라인 레지던시 ‘HFF2020’를 운영하는 시웨이치에(施惟捷, Shih Wei Chieh) 를 인터뷰하여 레지던시의 온라인화의 도래가 이끈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웨어러블(wearable), 전자텍스타일(e-textile) 분야의 대만인 연구자이자 아티스트로 “미래에 친구를 사귀다(Having Friends in the Future)”라는 의미를 함축한 국제 온라인 레지던시를 작년에 열었다. 대만의 ‘국립 공예 연구 개발 센터’의 후원을 받아 오프라인 형태로 시작된 이 레지던시는 코로나가 발병하면서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운영자는 레지던시의 온라인화가 기존에 존재하던 계급체계를 제거하고 모든 참가자를 평등하게 대하는 데에 기여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레지던시의 온라인화로 기존에 계획했던 전문가 워크숍과 강의를 폐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전문가를 통해 지식을 주입받는 대신 모든 아티스트들이 상호적인 반응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는 장을 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자신을 ‘motivator’라고 칭했다.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이 캐쥬얼한 분위기로 인해 때로는 너무 느슨해지기 때문에 이들이 작업을 지속해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자신이 맡고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온라인 레지던시의 운용을 위해서 마인드셋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각자의 국적이 다른 만큼 ‘문화 차이’와 ‘언어 소통의 어려움’을 인지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는 다른 아티스트를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필자는 그의 인터뷰를 통해 레지던시의 온라인 전환이 연 새로운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 '지역적,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상호주의’라는 다자주의의 덕목이 점점 요구되는 요즈음 온라인 레지던시의 도입은 예술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평등과 상호협력의 가치관을 시스템화하는 시도이다. 한국 예술계 또한 이 시작점에서 긍정적인 변혁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