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공자에게 말을 걸다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공자에게 말을 걸다
  • 윤영채
  • 승인 2021.02.0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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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몸에 생긴 점()의 개수를 세어본다. 오른쪽 뺨과 왼쪽 빗장뼈 그리고 오른 발바닥 한가운데 있던 점들이 이제는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조금씩 번져나가는 크고 작은 점을 관찰하고 헤아리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수를 세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삶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떠올려본다. 10대 때는 몸에 있는 점의 개수, 추억 따위를 쉽게 생각해낼 수 있었다. 짧은 인생이었으니 기억할 일이 많지도 않았다. 정말 모든 일을 생생하게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과거를 잊는 일이 잦아졌다.

아홉 살 무렵에 좋아했던 불량식품의 이름과 맛이 떠오르지 않는다. 열 살 때 배웠던 바이올린 곡의 제목, 열두 살에 지독하게 미워했던 친구의 이름, 열다섯에 어떤 기분으로 미술학원을 가고 집으로 돌아왔는지, 열일곱 살의 나는 무얼 생각하며 살았는지, 스무 살 아르바이트 첫 출근길에 날씨는 어땠고 얼마나 떨렸는지, 대학 불합격 통보를 받고 서럽게 울었던 일, 스물두 살이 된 올 11일 새벽에 어떤 꿈을 꿨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어렴풋이 사건으로만 떠오를 뿐이다.

몸의 점이 하나둘씩 늘어갈수록 책임도 늘어났다. 엄마의 콩나물 심부름을 완수하면 칭찬받을 수 있었던 꼬마에서, 성적으로 날 입증해야 하는 학창 시절을 거쳐, 이제는 스스로 돈을 벌고 미래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도마 위에 올려진 한 마리 생선이다.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던 내가 누군가의 손에 붙잡혀 올라왔다. 그는 손에 칼을 쥔 채 물고기를 재단한다. 언제 잘려나갈지 알 수 없는 불안함 속에서 연약한 지느러미를 움직여봐도 더는 '물'이 아니다.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다. 하나씩 비늘이 뽑히고, 내장이 파헤쳐진 후, 가슴, , 꼬리가 차례로 잘려나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공포 속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로 놔 버릴 수도 있다. 죽기 싫어서 팔딱거리는 몸부림이, 세상의 눈엔 한갓 미동에 불과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삶이 보잘것없이 다가왔다.

과거를 쉽사리 잊어버리고 떠올리지 못하는 건 아마도 내가 마주한 두려움들(계속되는 실패, 하고 싶은 게 없어진 무료한 나날, 미래에 대한 걱정)에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몸의 점과 기억을 되짚어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차갑고 딱딱한 도마에 올려진 가냘프고 연약한 몸뚱어리를 기억하고 싶어서다. 책임과 의무가 늘어갈수록 쉽게 무너지는 내가, 헤엄치며 생긴 몸의 물결들을 다시 더듬어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자유의지를 잃지 않기 위해 아가미로 마지막 가쁜 숨을 쉰다.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

공자가 말했다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은 조금도 걱정할 일이 못 된다.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다.’

 

분명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원망했다. 노골적으로 드러난 내 육체와 정신이 바다에서 건져져 세상 위에서 심판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나의 활기와 성격 그리고 몇 가지 재능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건 아닐까. 내가 중요한 존재이긴 할까. 나는 왜 자유를 잃어가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산다는 건 무엇일까. 의문이 든다. 동시에 무섭고 두렵고 분한 감정이 날 지배한다.

공자의 말은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하여 참뜻을 알기란 쉽지 않다. 솔직히 글을 쓰는 지금도 왜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논어에는 어렴풋하나마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리가 있는듯했다. 내가 높아지고 싶으면 남을 높이고, 이해받고 싶으면 남을 이해하라는 말이 그것이다.

점을 세어보는 일이 아니라, 관절염으로 날이 갈수록 굵어져 가는 엄마의 손가락을 봤더라면, 아빠의 이마에 파여만 가는, 골 깊은 주름을 봤더라면, 점점 더 독하게 변해가는 작은 언니의 차가운 마음을 읽었더라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큰 언니의 작은 발과 큰 꿈을 봤더라면, 나의 비좁고 약한 마음도 이해받고 위로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남들의 인생을 깎아내리며 자신을 높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다른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멍하니 불 꺼진 천정을 바라보게 된다.

삶은 과연 무엇일까. 왜 이렇게 외롭고 슬플까. 왜 나는 점점 벅차게 커지는 삶의 기억을 잊어만 갈까. 몸에 점은 왜 자꾸만 늘어갈까. 이런 것들을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일도 공자가 말한 성인의 길에 다다르는 과정의 일부인 걸까. 헛된 고민을 하는 건 아닐지 무섭다.

 

子曰, 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공자가 말한다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정신적 기초가 확립되었고, 마흔 살에는 판단에 망설이지 않게 되었고, 쉰 살에는 하늘로부터 이어받은 사명을 깨닫게 되었고, 예순 살에는 누구의 말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일흔 살이 되어 비로소 제 뜻대로 행동해도 결코 도덕적인 법칙에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

 

이따금 혹시 내가 마흔이 되기 전에 죽는다면 어떨까 상상을 한다. 삶이 버겁고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이런 우스운 잡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나 이 모든 해답을 찾으려면 적어도 쉰 살은 넘겨봐야 한다. 물론 내가 그만큼 살 수 있을지 알 수는 없다. 그때가 되면 몸에 점도 더 늘어날 것이고 늘어난 점만큼 과거의 하루하루를 까먹고 사는 날도 늘 것이다. 내가 쉰 살이 되는 2049년에도 공자는 살아있을까? 불혹을 딛고 일어선 지천명의 나이가 되면 도마 위에 올려진 처절한 의미, 세상이 알아봐 주지 않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남의 마음을 먼저 알아보는 성숙한 개체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오늘의 나와 앞으로의 내게 공자는 말을 걸어왔다.

 

영채,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나라도 나를 알아봐 주면 될 일.

몸에 생긴 까만점을 별자리 삼아 나아가면 그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