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축제였던 정월대보름날
마을축제였던 정월대보름날
  • 정영신 기자
  • 승인 2021.02.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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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의 장터이야기 (34)
2011 경기 안성장 ⓒ정영신
2011 경기 안성장 ⓒ정영신

시골에서는 설날보다 정월대보름이 의미 있는 날로 기억된다.

대보름 전 날이면 집집마다 돌아가며 지신밟기를 하는데,

마지막집에서는 여인네들이 술과 음식을 미리 준비했었다.

마을 사람들이 동그마니 모여 한해농사이야기를 나누며

푸르스름한 새벽녘에야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2011 경기 안성장 ⓒ정영신
2011 경기 안성장 ⓒ정영신

 

내게 보름날은 엄마가 건네주는 무 한쪽을 먹으며 시작됐다.

여름 내내 처마 밑에 올망졸망 내걸렸던 묵은 나물과 오곡밥,

메밀묵과 과일이 들어간 청주까지 넓디넓은 밥상 위가 가득했다.

엄마가 담근 청주 잔을 들 때는 지신(地神)에게 먼저 인사하라는 당부도 빼먹지 않았다.

 

2013 경산 하양장
2013 경산 하양장 ⓒ정영신

 

아주 어렸을 때는 보름이 되기 전날에 밥을 얻으러 다녔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믿었기에 꼬집으며 긴 밤을 샜다.

장난삼아 잠든 동생 눈썹위에 밀가루를 발라주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보름날저녁이면 동무들과 깡통에 숯을 넣어 쥐불놀이를 했었고,

동구 밖에서 연을 하늘높이 날리기도 했다.

2013경주 외동장
2013경주 외동장 ⓒ정영신

 

엄마는 정성껏 준비한 밥과 나물을 소한테 주면서 한해 농사를 점쳤다.

워메! 오늘은 복순이가 밥을 먼저 먹는다야, 농사가 잘될란갑다하시며

복순이 여물통에 쌀뜨물을 부어주던 모습이 아련하다.

 

2013 경북 청도장
2013 경북 청도장 ⓒ정영신

엄마가 없는 보름날을 맞아, 엄마처럼 오곡밥과 나물과 각종 부럼도 준비했다.

보름날 아침 무 한쪽과 귀 밝기 술 한 잔을 마시면서, 속울음으로 정월대보름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