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향화, 스토리의 빈약함을 스타일로 상쇄하다
[윤중강의 뮤지컬레터]향화, 스토리의 빈약함을 스타일로 상쇄하다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1.02.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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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애잔하고 애틋하다. 서울예술단의 ‘향화’의 커튼콜이 그랬다. 1919년 3월 29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수원기생 33인을 불러낸다. 조선미인보감(1918)에 실린 수원의 예기(藝妓)들이다. 33인의 모습이 담긴 책을 영상으로 보면서, ‘우리의 이름은 그리고 너의 이름은”이란 뮤지컬 넘버가 펼쳐진다. 눈물이 핑 돈다. ‘조선미인보감’은 일직이 영인본(1984, 민속원)으로 나왔지만, 거기서 수원기생을 특별히 주목하진 않았다. 책을 펴낸 지 90년 후(2008), 김향화를 중심으로 수원기생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 때부터 ‘조선미인보감’ 속 수원예기의 모습이 달리 보였다. 공연을 통해 본 수원기생이 사진은 모두 겉은 담담해보였지만, 속은 당당해보였다. 
  
그러나 향화(2. 20 ~ 21. 경기아트센터)란 작품은 아쉽고도 안타깝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곱씹어도, 작중 인물의 캐릭터가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대체 김향화는 어떤 사람이라는 거야?”  반문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원인은 분명하다. 대본(권호성)의 한계다. 작가가 놓치고 싶지 않는 키워드는 많았다. 향화, 기생, 근대여성, 만세운동, 수원, 화성공연, 전통예인 등, 애석하게도 이게 어울리지 못하고, 장면마다 따로 존재한다.  

기생 향화라는 인물을 다루는데 있어서, 권호성은 순이(順伊) - 향화(香花) - 우순(祐純)으로서의 삶의 변화에 집착한다. 관객은 솔직히 큰 관심이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인생의 파노라마에 초점을 맞췄다면 더 ‘드라마적’이어야 했다. 순이는 지루했다. ‘여자들도 체력을 키워야 합니다“라는 말이 다가왔지만, 이것이 이후의 스토리와 크게 연결되지 않았다. 우순은 모호했다. ‘향화를 찾았다’라는 노래 자체부터, 상황의 전환에 기여하지 못했다. 각각의 넘버는 그저 무난할 뿐, 서정성과 웅장함 이외의 정서는 담지 못했다. 뮤지컬 넘버가 갖는 긴장감과 긴박감과는 거리가 있었다. 극음악으로서의 전체적인 설계도가 있기보다는, 마치 증축과 개축을 한 건축물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저 그 상황만을 대변하는 가사와 대사와 선율로 채워졌다. 

황석영의 심청(2003)에서 심청이 렌화(蓮花)로 변하는 과정처럼, 순이가 향화(香花)가 된 후의 변화를 기대했다. 1막과 연결해서 여성으로서의 ‘힘’(체력)을 기대했다. 개인사와 시대사가 합쳐지면서 전달되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다. 많은 관객이 집중적으로 알고 싶었던 만세운동을 주도한 의인(義人)으로서의 향화의 내면은 작품 속에 인색할 정도로 짧았다. 관객이 너무도 식상한 고문장면을 기대했을까? 비교컨대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1992)가 너무도 드라마적인 드라마였다면, ‘순이 향화 우순’의 굴곡진 여성의 삶을 만들어내려고 작가의 의도는, 몇몇 흔적(대사)만 보일 뿐, 관객의 머리와 가슴으로 파고들진 못했다. 

허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본을 보면서, 각색 및 윤색의 과정을 거쳤으면 어땠을까? 좀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현실성 희박한 가정’을 해본다. 남녀의 이분적 잣대를 경계하는 나이지만, 권호성의 초기 대본을 여성작가가 다듬거나, 여성의 시각으로 손을 봤으면, 이토록 캐릭터가 실종되지는 않았으리라. 내 말이 과한가?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향화가 과연 자기주도적인 삶을 구가한 여성인가?” 이런 원초적 의문마저도 든다. 작품 속 에피소드가 거의 남성(조력자)과 연관이 있다. 조금이라고 그런 면을 충족시켜주었다면, 나는 이렇게 글을 쓰지도 않았으리라. 

작품(대본)의 본질적 한계를 상쇄해 준 것이 안무 - 의상 - 무대이다. 이 셋은 확실하게 제 을 스타일을 퉁해서, 작품을 살려주고 있다. 안무(김혜림, 우현영)는 빈약한 스토리를 커버해주면서, 작품을 정감 넘치면서 화려하게 보이게 해주었다. '수원풍속가‘는 60년대 예그린가무단을 보는 것 같았다. 엿가위춤(고석진)이 이토록 작품의 ’터닝 포인트‘가 된 건 처음이 아닐까? 검무와 설장고는 마치 70년대 워커힐 가야금식당의 공연과 같았다. 이건 확실한 찬사다. 빠져들게 되지 않은 스토리에서 벗어나서, 극장식 갈라쇼의 장점을 확실히 살린 스타일을 만나면서, 관객의 진정한 박수가 들렸다. 

의상(박선옥)은 여성들만의 단체장면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제작여건의 한계일까? 일제 강점기의 보편적 분위기를 내주는 장면에선, 당시의 리얼리티가 살아나지 못했다. 서울예술단의 ‘윤동주, 달을 쏘다’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박선옥의 의상디자인에선 여성들의 움직임(무용)과 함께, 매혹적인 실루엣이 살아났다. 시집살이(빨래터), 낙화유수(수원권번), 선유락(방화수류정)은, 비주얼이 돋보이는 세 장면이다. 

무용과 의상과 함께, 무대디자인(이인애)이 작품을 살렸다. 최소영역으로 최대효과를 얻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감춤 속 드러남‘이라 할 이인애의 무대디자인은 늘 작품과 배우를 살리면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다. 방화수류정의 느낌이 나는 수조 무대는, 의상 - 안무 - 무대다지인이 삼위일체가 된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향화를 맡은 배우는 송문선과 김나니. 송문선은 서울예술단의 대표배우이자, 대한민국 음악극의 당당한 여배우로서의 튼튼한 행보가 보인다. 무용씬을 비롯한 여러 장면에서 송문선이야말로 체력(힘)을 두루 갖춘 배우임을 확인한다. 

김나니는 소리꾼으로서의 기량이 작픔올 통해 발휘되지 못해서 안타깝다. ‘조선미인보감’을 보면, 김향화가 8가지 기예에 출중한 것으로 나온다. 검무, 승무, 정재무(궁중무용)과 같은 춤, 가시와 시조와 같은 정가(正歌), 영금연주와 함께, 경성잡가(京城雜歌)라는 ‘서울좌창’, 서관이요 (西關俚謠) 라는 ‘서도소리’에 출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나니의 원래 전공은 판소리이지만, 그녀가 충분히 전통적인 성악에 두루 잘 부를 수 있음은 분명하다. 서울예술단의 가무극 ‘향화’에서 실제 향화의 이런 기예를 김나니를 통해서 살려냈다면, 김나니도 살고 작품도 살았으리라. 수원기생과 기생의 기예를 다룬 작품에서 실제 기생의 노래를 소홀히 한 것도, 이 작품의 아쉬운 한계라는 것을 지적 안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