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마음의 성냥에 불을 붙인다.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마음의 성냥에 불을 붙인다.
  • 윤영채
  • 승인 2021.02.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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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성인이 되고 잃어버린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먹는 즐거움이다. 하굣길에 편의점 냉장 코너에 들러 새로 나온 삼각김밥과 간식을 고르며 설레던 기억이 까마득해졌다. 예전만큼 맛있는 음식 앞에서 더 이상 군침이 돌지 않는다. 그것들에 매겨진 값이 의미하는 노동의 시간을 생각해보느라 맛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가 싫으면서도 다 미래를 위한 일이라며 궁핍한 타협을 할 때가 잦아졌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사랑이다.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일이 별로 설레지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를 좋아했을 때, 세상 모든 것들이 오롯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던 기분은 느껴지지 않는다.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 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고민스러웠던 일도 지난 일이 되었다. 편안하고 은은한 느낌으로 다가올 뿐이다. 먹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일에 집착이 사라지자 심장도 차갑게 식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간식이 먹고 싶어서 밤잠을 못 이루는 일도 없고, 기대한 만큼 사랑에 실망하는 일도 멀어졌다. 한결 가볍고 편안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잃은 것 같은 허전함이 나를 감싼다.

먹는 것, 사랑하는 일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열여섯 살 가을, 내 마음을 훔쳤던 소설이 있다. 세계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으리라.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Laura Esquivel)달콤 쌉싸름한 초콜릿(Como Agua Para Chocolate)’이다. 멕시코 혁명이 한창이던 1910, 한 농장에 셋째 딸 티타가 태어난다. 오랜 가문의 전통에 따라 셋째이자 막내딸인 그녀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를 수발할 운명에 놓인다. 가여운 티타는 요리에 관심을 보이게 되고, 어린 시절을 어머니인 마마 엘레나의 손이 아닌 부엌에서 보내게 된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옆집 청년 페드로와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풍습에 의해 둘은 헤어져야 했다. 페드로는 티타의 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기 위해 그녀의 둘째 언니인 로사우라와 결혼하게 된다. 어느덧 임산부가 된 로사우라는 자신의 남편이 된 페드로와 마을을 떠나게 되고, 둘은 다시 헤어진다. 십여 년이 흘러 티타의 어머니와 언니가 죽자, 두 사람은 다시 농장에서 재회하게 된다.

이 소설을 매년 새로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 책을 처음 만났던 그 가을엔 붉게 물든 단풍 같은 사랑이 있었다. 열일곱에는 좋아하는 학교 선생님을 떠올리며 책을 들었다. 짝사랑의 아픔이 더해져 괴로웠다. 열여덟엔 이 서사로 영화를 만들면 어떤 느낌일까를 떠올렸고, 열아홉엔 입시에 치여 반도 읽지 못한 채, 책을 덮었다. 그리고 성인이 돼서야 다시 책을 폈다. 처음의 느낌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들을 갈라놓은 운명에 탄식하기보다, 각 인물의 결핍과 사랑의 작용을 분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티타와 페드로의 사랑은 여러 장애물과 그로 인한 소유욕을 기반으로 자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헤집기도 했다. 사랑도 우정도 결국 비어있는 마음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고, 소유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사랑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책을 내려놓고 허탈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먹지 못해 아쉬운 것을 탐닉하고, 갖지 못해 슬픈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강렬함을 주지만 마음 한쪽에 채워지지 않은 허무함을 남긴다. 두 가지 모두를 잃어버린 지금, 나는 세상 어느 때보다 편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존재한다. 주위의 것들이 하나씩 사라져도 덜 슬플, 딱 그 정도만 먹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마음에 책임과 슬픔이 커질수록 사랑과 음식은 점점 내 삶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요리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안엔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이 있다. 작가는 인간의 마음속에 성냥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잘 보살펴주지 않으면 금세 눅눅해져 다시는 불을 붙일 수 없게 되지만, 반대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 폭발하는 순간이 되면 우리의 영혼까지 모두 타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마음의 온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페드로와의 이별, 언니의 임신, 조카의 죽음, 어머니에 대한 혐오로 얼룩진 티타의 마음은 축축해져 더는 불을 지필 수 없게 되었지만,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회복하여 그토록 갈망하던 페드로와 재회한다. 수년간 억눌러온 지난 세월을 터뜨리고 만 두 사람, 결국 각자의 성냥에 붙은 거센 불꽃을 감당하지 못해 죽고 마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눅눅한 성냥을 가진 채 살다 마지막에서야 강하게 불타버린 티타의 심장은 강렬했고 아프게 빛났다.

 

원작 바탕 영화 '달콤 쌉사름한 초콜릿'(Like Water For Chocolate) 중 티타와 페드로의 재회 장면 (출처:https://blog.naver.com/)
▲원작 바탕 영화 '달콤 쌉사름한 초콜릿'(Like Water For Chocolate) 중 티타와 페드로의 재회 장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나이를 먹고, 동심을 잃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잃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지었던 순수한 미소를 잃는다. 특별한 사랑, 운명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잃는 것이 아니라, 널뛰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는 성숙한 성인이 되어가는 일이라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행복과 슬픔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나는 침착하게 견디어내는 삶이 편안하고 좋으면서도, 때로는 불타오르던 과거의 마음을 그리워했다. 비어버린 가슴을 품고 사는 일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것이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책은 다양한 모습으로 서로 다른 정보를 간직한 채, 우리를 기다린다. 아무리 다른 모양새로 세상 곳곳에 존재해도 그 중심엔 꿈이 있다는 사실을 슬며시 알려주곤 한다. 글을 쓰는 이의 설렘, 이들의 아주 작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도달하기까지의 꿈과 희망 그리고 지혜가 담겨있다는 것만은 유일하게 일치한다. 사랑도 우정도 모두 영원할 수 없다고 믿고 단념하는 내게, 남의 꿈을 읽고 희망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따라서 책을 읽는 것은 마음의 성냥에 잔잔한 불을 지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 마음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적당한 온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읽고 그리는 경험이다. 동시에 허기진 마음에 양식을 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글도 누군가의 삶에 작은 위로가 되었을까, 마음에 온기를 주었을까. 이런 고민에 빠져 오늘도 밤을 지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