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노정식의 ‘왜곡(歪曲)’- 타인에 대한 기억과 사물에 대한 기억
[이근수의 무용평론]노정식의 ‘왜곡(歪曲)’- 타인에 대한 기억과 사물에 대한 기억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3.1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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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왜곡(歪曲)의 왜(歪)는 아니 불(不)과 바를 정(正)의 합자(合字)다. 바르지 않게 구부러져있다는 뜻을 함축한다. 기억이 왜곡되어 있다면 혹은 기억을 올바르게 되살릴 수 없다면 개인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사람간의 소통이나 인간관계 자체가 왜곡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기억이 늘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노정식은 주목한다.

‘왜곡’(歪曲, 3.6~7, 대학로예술소극장)은 그가 ‘Memory’(2014), ‘Who am I’(2017), ‘파편’(2020), ‘프로젝트-망각’(2017)으로 이어지는 기억연작에 새롭게 ‘타인의 기억’(2021)을 추가하여 옴니버스 형식으로 내놓은 60분 작품이다. 살아오는동안 만난 얼굴들, 그들의 거짓말과 위선, 그들이 남긴 말들로 구성되는 사람에 대한 기억과 그가 겪었던 사물에 대한 기억으로 나눠진다. <타인의 기억>이 전자라면 <파편>은 후자에 속한다.

무대 위에 작은 공이 여섯 개 놓여 있다. 검은 옷의 무용수들이 차례로 등장하더니 공 하나씩을 집어든다. 멀리서 자동차 경적소리도 들리고 웅성대는 작은 소음도 계속된다. 여섯 개의 공은 여섯 명 무용수들 각자의 기억이다. 그들은 자리에 앉거나 누워 혹은 일어서서 자신의 기억을 살려낸다. 소중하게 기억을 쓰다듬기도 하고 몸 주위로 가볍게 공을 굴려보기도 한다. 잊고싶은 기억인듯 벽을 향해 힘껏 던져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벽을 튀긴 공은 다시 자기에게로 되돌아온다. 바닥을 향해 거듭거듭 공을 튕겨본다. 기억은 정다운 친구이기도 하고 버리고싶은 악몽이기도 하지만 어느 것이든 그 기억이 없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억은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무대가 갑자기 암전하면서 정적이 온다. 

두 사람이 등장한다. 남자 대 남자(신원민, 서보권), 혹은 남자 대 여자(이대호, 김희원)다. 서보권은 베를린국제무용콩쿠르에서 은상을, 신원민은 코리아국제무용콩쿠르의 시니어부문 1등 수상자다. 이대호는 베를린(Berlin cle. toula Limnaios)에서 무용단원으로 활동했고 김희원은 알빈 에일리 스쿨(Alvin ailey school independent)을 수료했다. 이들 두 쌍이 각각 보여주는 기억들은 평행선을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며 서로 충돌한다. 한 기억이 다른 기억을 보완해주기도 하고 서로를 배척하기도 한다.

듀엣에 이어 툇마루무용단 대표와 정단원인 이동하와 하가은이 가세한 4인무가 뒤따른다. 무용수들이 군무로 보여주는 기억들은 복합적이면서 개별적이다. 동일한 사건을 바라본 사람들의 기억이 늘 같은 것도 아니다. 안경의 색깔에 따라 기억은 빨간색으로도, 파란색으로도 창고에 보관된다. 기억을 왜곡시키는 요소들은 또 있다. 타인의 영향이 있고 환경적 요인도 작용한다. 배경에 흐르는 비발디의 ‘4계’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스스로 변화하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상만으로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기억을 만들어낼 때도 있다.

공연의 피날레는 남성 솔로가 장식한다. 조니 마티스(Johnny Mathis)가 부르는 ‘Misty’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기억에 대한 힐링을 암시해준다. “당신이라고 믿는 것이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에 관한 단상이 노정식이 ‘왜곡’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일 것이다. 

안무자에게 기억들에 집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선택과 후회…당시에는 올바른 길이라고 선택했는데 그 선택의 결과가 다른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상처가 되었다. 내 기억들을 되돌아보면서 과거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싶다.” 노정식의 대답이었다. 2010년 이후 꾸준한 활동을 펼쳐온 노정식(Roh Dance Project)이, ‘상처’, ‘소풍, ’거인들‘에서 보여주었던 삶과 자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그가 이러한 고민을 내면으로 돌려 자신의 치유와 회복을 위함은 물론, 상처받은 이 시대 관객들을 위로하는 단계로 확장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왜곡‘은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사족을 하나 단다면 팸플릿 어디에도 공연일시와 장소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 이것도 기억의 왜곡인지, 관객을 배려하는 기본에 늘 충실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