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홍정윤 혼(琿) 무용단장 “전통 기반한 창작은 나의 춤, 나의 미래”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홍정윤 혼(琿) 무용단장 “전통 기반한 창작은 나의 춤, 나의 미래”
  • 이은영ㆍ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3.17 12: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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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고 있는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 내 창작 세계에서 가장 중요
창단 첫 공연에서 들은 쓴소리, 성장의 밑거름 삼아
단단하게 다진 이론적 토대 위, ‘마음이 중요시되는 작품’에 힘 쏟을 것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ㆍ진보연 기자]포악한 왕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신의와 절개를 지킨 백제 평민 도미와 그 아내의 이야기. 「삼국사기」 권48, 열전8 도미(都彌)에 수록된 도미 ‘도미설화’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보다 높은 윤리적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초월적 인물로 전화하는 약자의 구조를 보여준다. 숭고한 가치를 위해 나아가는 인간상은 인류 보편의 가치로 ‘도미설화’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해석을 통해 대중매체에 등장하고 있다.

그중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 바로 무용극 <도미부인>이다. 송범이 남긴 업적 중 하나인 이 작품은 LA올림픽기념 문화행사의 참가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1984년 첫선을 보였으며, 초연 이래 최근까지 재연(再演)된 공연 횟수가 200여 회에 이른다. 이는 <도미부인>에 여타의 작품과 구별되는 특성과 향후 우리 무용 공연의 세계화라는 미래 전망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인터넷ㆍ시청각 매체의 발달로 정보를 접하기 쉬워졌고, 이에 따라 이론의 영역뿐만 아니라 무용 테크닉까지 빠르게 습득하고 발전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창작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작품과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홍정윤 단장은 우리 무용이 앞으로 나아가는 만큼, 한국무용에 내재된 사상이나 원류 보존에 대한 고민을 놓쳐선 안 된다고 말한다. 

▲홍정윤
▲홍정윤 혼(琿) 무용단(HONE ART COMPANY) 단장

홍 단장은 제38회 부산동래 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 수상을 비롯해 약 10여 차례에 이르는 다양한 콩쿨에서 수상한 이력을 가진, 이미 탁월함을 인정받은 무용인이다. 유년시절부터 무용을 시작한 그는 중앙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무용단원으로 활동했다. 

어린 시절부터 국립무용단원 시절에 이르기까지 몸짓으로 표현하는 춤동작들을 오랜 시간 익혔고 이와 동시에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 튼튼한 이론적 토대 위에 화려한 춤사위를 더하는 작업을 쉼 없이 시도해왔다. 작품성과 이론을 모두 겸비해 오직 몸으로만 수렴하고 환원시켜야 하는 무용수의 숙명을 묵묵히 수행해왔다는 평을 받는다. 

2011년부터는 무용의 학문적 탐구에 더욱 정진해 한국 춤의 사상적 원류 확보와 대중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혼(琿) 무용단(HONE ART COMPANY)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뮤지컬 음악 연구, 엔터테인먼트 강의, 전통과 창작을 넘나드는 100여 편의 공연 등 크고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안무가, 공연연출, 제작자로서 능력 배양에 힘쓰고 있다.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움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1월에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제12회 문화대상 무용부문 젊은예술가상을 수상했다. 

 

 

홍 단장은 전통을 따르며 온전한 하나를 위해 평생을 쏟는 이들의 삶에 존경을 표하며, 짙은 색 한 가지를 품기보다 다양한 형태를 엮어 자신만의 새로운 색을 내기를 선택했다. 단단하게 다진 이론적 토대 위에 자신만의 색이 담긴 춤사위를 더하는 홍정윤 단장을 만나 그의 예술을 이루는 것들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무용)을 수상한 홍정윤 단장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무용)을 수상한 홍정윤 단장

제12회 문화대상 젊은 예술가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상을 받은 소회와 수상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 시국을 맞은 모든 예술인이 마찬가지겠지만, 손발이 잘린 듯 무력하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정부에서 지원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지만 한정적이고, 많은 선후배들이 택배나 카페 아르바이트 등 본업을 뒤로한 채 생활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예술인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든 시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계속 주저앉아 걱정만 할 순 없었고, 다시 일어서야만 했다. 계기와 용기가 절실했던 시기에, 서울문화투데이의 젊은 예술가상은 ‘그만 좌절하고 이제는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해주는 일종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무용가로서 나는 지금 신인도 원로도 아닌 딱 중간을 지나고 있다. 뭔가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나니,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잠시간 방황하는 시기를 보냈다. 이번 수상은 하나의 전환점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새로운 시작의 지점으로 여기고, 침체되어 있는 사회에 어떤 예술적 에너지를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다. 

수상 당시 “코로나19 발생 이후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라고 말했는데, 코로나가 심정적으로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지.

응당 해야 할 일을 외부적 요인에 의해 해내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박탈감과 좌절감이 컸지만, 긍정적인 게 있다면 갑자기 주어진 많은 시간 동안 자아 성찰을 많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 부딪혀 내 일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은 나를 단단히 다지는 밑거름이 됐다. 내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던 시간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오롯이 집중한 시간이 모여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준 것 같다.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춤과 함께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춤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중 한국무용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무용을 아주 어릴 때 시작한 건 아니다. 원래는 발레를 전공했다. 지금은 워낙 훌륭한 피지컬을 가진 무용수들이 많아서 견줄 바는 아니지만, 내 나이대에서는 키가 좀 큰 편에 속했고 체력도 좋아서 외국 무용 전공을 추천받았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황무봉 선생님 제자이신 지도연 스승님을 만나게 되면서 한국무용에 입문하게 됐다. 무용이라곤 발레밖에 모르던 때에 한국무용을 시작했지만, 스승님께 배워가며 점점 그 매력에 빠지게 됐다.

오랜 경력에 걸맞게 전국의 다양한 대회에서 입상 경력이 있는데, 특히 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에서 받은 대통령상을 빼놓을 수 없다. 의미가 깊은 상인만큼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듯하다.

스승이신 국수호 선생님께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담금질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대학 졸업 후 박사 과정을 마치면서, 스스로 녹슬지 않기 위한 목표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대통령상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내게 커다란 배움의 계기를 만들어줬다. 대회를 위해 몇 년 동안 전통춤을 심도 있게 배웠다. 

모든 한국무용은 전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학부생과 국립무용단원 시절 여러 작품을 통해 두루두루 다양한 기법들을 익혔지만, 전통을 단기 커리큘럼 안에서 제대로 익히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창작 무용가이지만 어떤 한국무용 춤을 추든 그 기반엔 전통이 있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전통(무용)을 연마하신 분들께 누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한국적인 미가 제대로 녹아있는 작품을 만들려면 그 기법들을 충분히 알고 습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성준 대금연주가 개인공연 찬조출연 中 ‘창부타령‘ 공연 모습
▲이성준 대금연주가 개인공연 찬조출연 中 ‘창부타령‘ 공연 모습

학부생과 단원 생활 당시에는 크게 깨닫지 못했던 전통의 무게를 느끼게 된 계기가 따로 있었는지?

나의 첫 개인 발표회는 남들보다 이른 편이었다. 국립무용단에서 나와 만든 혼(琿) 무용단의 창단 공연이었는데 스케일이 굉장히 컸다. 국수호 선생님, 이상봉 선생님, 김영봉 감독님이 예술감독, 무대감독 등으로 도움을 주셨다. 20대 후반의 첫 무대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진행했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게 딱 그 시절의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1부는 전통, 2부는 창작 공연으로 50분씩 공연했다. 출연진 비용부터 의상, 소품, 세트 등 준비 과정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1회로 진행했는데, 780석 만석이었다. 외형적 결과만 봤을 땐 성공적으로 보였으나, 스스로는 실패라고 생각했다.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 번에 많은 욕심을 내면 체한다는 걸 깨달았던 공연이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많은 공부가 됐는데, 큰 가르침을 주신 분이 바로 성기숙 교수님이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없어 공연에 따로 모신 것도 아닌데, 공연을 관람하시고 평론을 해주셨다. ‘전통춤을 모르는 사람이 짜깁기해서 만든 공연’이라는 평을 보고 당혹감, 실망감, 충격, 절망감 등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왔지만 가장 지배적인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어설프게 아는 걸 온전히 안다고 생각하여 화려하게 포장해서 내놓았지만, 진짜를 알아보는 사람은 당연히 존재했고 성긴 알맹이를 감싸던 포장지는 순식간에 벗겨진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작품을 통해서 전통 기반의 춤을 췄으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했던 것은 흉내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전통을 제대로 모르는 채 건드리면 오히려 그것이 훼손된다는 걸 배웠다. 

처음 들어보는 혹평에 좌절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나 자신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 성 교수님을 아직 개인적으로 뵌 적이 없어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했지만, 깊이 감사하고 있다. 아마 내가 계속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부분에 대해 지적해주신 덕분에, 전통을 깊이 공부하게 됐고 그 덕분에 대통령상도 받게 됐다. 전통 춤ㆍ음악 등 부족한 부분에 대해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많은 선생님께 자문구하는 지금의 작업 방식 역시 그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홍정윤 혼(琿) 무용단(HONE ART COMPANY) 단장

국립무용단 정단원에서 출발해 현재 혼(琿) 무용단을 운영하고 있다. 국립무용단에서의 생활과 무용단의 대표가 된 지금의 차이는 무엇인가.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처음 무용단을 만들었을 땐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무용에만 전념하면 됐던 단원 시절과 달리 기획부터 연출, 영업까지 전부 책임져야 하는 상황 앞에서 높은 현실의 벽을 마주하게 됐다. 나는 똑똑한 무용수는 아닌 것 같다.(웃음) 비싼 수업료를 내고 몸으로 부딪쳐봐야만 아는 사람이다. 

전국에서 선발된 뛰어난 기량의 무용수들과 최고의 스태프들이 공동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집단에 있다 보니 내가 실현할 수 있는 역량에 비해 눈이 지나치게 높았다. 당연한 일인데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 비교하던 시절이 있었다. 의욕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닌데 여러모로 많이 부족함을 느꼈고, 결국 무용단을 잠시 접고 다시 학업에 전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무용의 실연(實演)뿐만 아니라 이론적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2011년부터는 한국 춤의 사상적 원류 확보와 대중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꾸준한 연구를 통해 발견한 새로운 발전 방안이나 방향성이 있는지?

계속 고민해오던 부분들이 자연스레 연구로 이어졌다. 인터넷ㆍ시청각 매체의 발달로 정보를 접하기 쉬워졌고, 이에 따라 이론의 영역뿐만 아니라 무용 테크닉까지 빠르게 습득하고 발전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더 새로운 것이 창작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작품과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만큼, 한국무용에 내재된 사상이나 원류가 제대로 보존되고 있는가, 그 뿌리를 토대로 한 재창조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무용극 역사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도미부인>을 논문의 주제로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종종 국립무용단을 비롯한 국공립 무용단에서 예전 작품들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오래된 작품들은 대학 커리큘럼에서 제대로 다뤄주지 않는다. 이렇게 묻히기엔 뛰어난 예전 작품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재조명해서 과거를 비추는 폭이 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수평이 유지되기 위해선 힘의 고른 분산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 2019년에는 제주 4ㆍ3사건을 기리는 ‘동백발화(冬柏發花)’를 공연하기도 했다. 역사적 사건을 춤으로 표현하게 된 과정은 어떠했나. 

정말 부끄럽게도 4ㆍ3이 지니는 무거운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공연에 참여할 당시에는 사건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기에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했다. ‘제주 4ㆍ3사건을 알리는 좋은 취지의 공연이 있다는데 한번 같이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사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처음의 마음이 죄스러웠고 임하는 자세는 진지해졌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무용수들과 함께 협업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처음에는 없었던 사명감과 책임감도 느끼게 됐다. 이 작업을 계기로 ‘마음이 중요시되는 작품을 더 열심히 하고 싶다’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처음의 나처럼 아직도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소리를 내어주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작업이 보다 많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래서일까, 무대의 규모보다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공연을 많이 선보이는 것 같다.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는 ‘예술가가 대접받기 위해선, 대접받는 분위기를 스스로 조성해야 한다’라고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가르침에는 서구식 교육관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전통문화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든 구색이 다 갖춰진 무대에서만 공연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당놀이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문화는 사람과의 교감에서 발생하는 예술이 많지 않나.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 장소가 어디든, 그대로 무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실경 자체를 하나의 세트로 만들 수 있는 존재감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닐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마인드를 가진다면 예술가의 무대는 더 넓어질 것이다.

활발한 작품과 더불어 2000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꾸준하게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엔터테인먼트, 뮤지컬 음악, 스포츠 산업 전공을 통해 더 많은 학생을 만났다. 수업 의뢰를 받았을 당시, 무용과가 아

닌 다른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용수로서 그리고 연출가로서 쌓아온 나의 경험과 경력이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르치기보다 아이들과 실험ㆍ실습을 통해 공연을 만들어가며,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직접 체험으로 터득하게 했다.

이론적인 지식만큼 중요한 것이 실전을 통해야만 알 수 있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연예술에선 더욱 그렇다. 전공이 이론이더라도 연기나 연출 등 실전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보면 그 경험으로 더욱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작품을 만들다 보면, 무대에 오르는 무용수 외에 공연을 총괄하는 연출자도 필요하고, 무용수를 적절하게 배치할 기획자도 필요하고, 예술적인 성향을 더 발현할 수 있게 서포트해 주는 역할들도 매우 중요하다. 이런 포지션들이 어우러져 함께 작업하는 시스템과 환경에 대해, 현장에 나가기 전 대학에서 실습과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커리큘럼을 통해 지금보다 더 많이 마련되길 바란다. 

경력에 비해 무형문화제 종목 이수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유가 있는가?

나름의 철학이다. 전통을 따르며 끝없이 갈고 닦아 온전한 하나를 완성하는 삶은 정말 훌륭한 일이며 진심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절대 쉽지 않은 길이기에 전통은 온전히 전통만 하는 사람들의 전문 분야여야 한다. 

앞으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전통 무용을 연마한 인간문화재보다는, 여러 시도와 협업을 통해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다. 계속 하나만 꾸준히 하다 보면 그 색깔이 몸에 배는 것이 당연한 순서인데, 그건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색깔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유롭게 길을 거닐며 들꽃도 보고 야생화도 보면서 여러 향기에 젖어보고, 내 나름의 꽃꽂이를 해보고 싶다.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제 모방에 의한 재창조만 있을 뿐, 온전한 창작은 찾기 힘들다고 이야기들을 하던데 굉장히 공감한다. 그래서 완벽하게 새로운 창작보다는 좋은 창작의 개념을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이것의 답은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과 똑같을 것 같다. 내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바가 나에겐 가장 중요해졌다. 연출적 입장에서 극적 효과를 내려면 화려한 기교나 장식은 필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을 1순위로 놓지 않게 됐다. 정신을 똑바로 세우고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 이게 나의 창작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홍정윤 혼(琿) 무용단(HONE ART COMPANY) 단장

앞으로의 꿈(계획)은 무엇인가?

작품 만드는 것이 항상 소원이다. 무용 시나리오를 써서 캐릭터로 변형해보기도 했고, 지금도 그 연장선에 있다. 자리만 다르다.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작업하는 커리큘럼이 같은 맥락이었다.

앞으로 여러 사람과 새로움을 창작할 수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 가고 싶다. ‘단장’이라는 타이틀보다, 내 생각을 작품으로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겠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창작 환경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지원을 받아서 규모 있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3가지를 꼽는다면?

첫째로 건강. 내 컨디션이 온전하지 않으면 에너지를 낼 수 없다. 욕심이겠지만 후배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무대에 오래 서고 싶다. 육체도 정신도 건강이 중요하다.

둘째로 흡수력. 내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의견을 최대한 잘 수용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운.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고 하지만, 나와 주변 사람들의 노력에 날개를 달아줄 운이 따라주는 삶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