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하남과 김유정이야기Ⅲ
[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하남과 김유정이야기Ⅲ
  • 왕지수 기자
  • 승인 2021.03.17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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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유승현 /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지난 호에 이어)

병이 깊어진 유정, 산골로 오다

병색이 깊어진 유정은 매형 유세준에게 업혀 광주군 산골(하남 상산곡동) 다섯째 누이네로 오게 된다. 전차를 태워 오는 길에 담배 여러 갑을 샀다고 하는데 담배를 좋아하는 유정을 매형이 배려한 것으로 산골에서는 담배를 구하기가 힘들어 미리 구입을 한 것이었다.

김유정과 유세준은 처남 매부관계 이전에 재동 보통 공립학교 동문 사이였으니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매형과 다섯째 누이는 병이 악화된 유정을 치료하고자 산골(산곡)로 유정을 데리고 왔기에 유정이 이곳 하남에서 기거하는 동안 쓴 글들은 하남시 산곡을 모티브로 쓰였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극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유정의 글은 더 깊어진다. 유정이 친구 이상에게 보낸 편지에서 “닭을 몇 마리 고아먹으면 내 병이 나을 거야. 뱀을 몇 마리 고아먹으면…….”하는 내용이 있다. 같이 기거한 조카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집 바깥마당 한구석에 뱀탕 구덕이 있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뱀을 잡아오면 그 구덕에서 뱀이나 닭을 푹 고여 병색 깊은 유정을 해먹였다는 기억이 있다고 하는데 당시 상황을 많은 문헌에서 유정을 가엽게 기록하고 있으나 아마도 글쟁이인 유정이 본인의 슬픈 처지를 글을 쓰는 동료에게 더욱 자극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 매형과 누나의 가족은 아픈 유정을 보살피며 정작 잘 해먹였다는 조카들의 증언이 인상 깊다.

그도 그럴 것이 늘 누이에게 미안해했고 누이를 위해 글을 쓴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글을 쓰고 상금을 타면 누이와 매형 조카들에게 선물을 사다준 사랑 넘치는 유정이었다.

유정을 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병색이 점점 더 심해져 갔다. 폐결핵으로 각혈을 했지만 치루가 더 심하여 출혈이 심하고 그 고통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통증으로 고생하는 것을 지켜보는 조카들과 가족들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는 증언을 한다. 유정은 산골 요양 중에도 일본으로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필자의 지난 호 김유정과 하남이야기에서 매형 유세준이 우체국에 가서 글을 송부했다는 이야기를 실었는데 그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유정을 위하여 누이는 유정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글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면 매형인 유세준은 병중에 있는 유정의 다리가 되어 하남시 소재 신장우체국으로 가서 각 출판사로 글을 송부해준 중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병중에도 글을 쓰는 유정 

유정의 병이 깊어질수록 몸은 힘들어서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의 영혼을 맑디맑았다. 글이 끊이지 않았고 유정의 기거하는 방으로 매형이 만들어준 방은 조카들의 기억에도 늘 글을 쓰고 있는 유정의 모습이 회상된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유정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지금은 90세가 훨씬 넘은 큰조카는 그때 소학교 5학년이었는데 억지로 서울로 올려 보내졌고 밑의 조카들은 방안에서 유정의 관이 나가는 것을 창호문 사이로 지켜보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유정이 세상을 뜬 후 친구 소설가 안회남이 와서 유정이 쓴 글을 제법 많이 들고 갔는데 아직도 유가족들은 안회남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안회남의 문체가 유정의 문체와 비슷한 것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단다. 폐결핵을 앓은 유정의 시신은 홍제동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여 한강에 뿌려졌다고 한다. 문단의 큰 별이 지고 말았지만 그의 글은 산골에 가득한 동백꽃만큼 우리에게 알싸함을 남긴다. 

하남시 산곡의 동백꽃

봄이 시작될 즈음  하남시 산곡은 유정의 소설 속에 등장한 동백꽃이 제일 먼저 꽃봉오리를 내민다. 얼마 전 하남시 문화재단 김유정포럼을 기획한 담당자는 김유정이 작고하기 전 기거한 곳을 방문해봤다며 가슴 뭉클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모든 것의 역사는 작은 것조차도 흔적으로 남고 의미가 부여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은 다만 찾지 못하고 지나는 것일 뿐 누군가의 가슴에는 깊이 간직되고 여운으로 남아 있다. 천재소설가 김유정의 손을 잡고 산골 소풍을 다녔던, 멍석을 깔고 유정 삼촌의 바이올린연주를 들었던, 꽃밭사이에 있던 유정의 방과 그 방안에서 글 쓰고 있는 것을 바라보던 그 조카들은, 모이면 유정삼촌 이야기를 소박하게 하고 있다. 필자의 눈에는 그 조카들이 천재 소설가 유정삼촌도 그립지만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유정에게 베푼 사랑과 배려를 기억하고 그들의 부모를 더 그리워하는 것 같아 보였다. 유정이 작고하기전 고통을 호소했지만 피를 토하며 남긴 주옥같은 글들은 영원히 우리 가슴에 남을 것이다. 춘천일대에 문화아이콘이 된 김유정컨텐츠와 유정이 작고 하기전 기거한 이곳 하남과 비교할 수는 없다. 유정의 생가 터가 있었고 그의 흔적이 많은 춘천과 하남은 시작부터가 다르지만 유정의 마지막이 이 곳 하남 산골이었다는 것은 예술가의 삶속에 묻어나는 모든 것이 창작의 흔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유정이 머문 곳, 하남을 절대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이제라도 그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김유정과 하남이야기는 필자도 귀동냥으로 듣고 녹취해두고 있다. 

● 소설가 김유정이 작고하기전 기거한 하남에 관한 문헌 기록은 거의 없으며 최근 ‘하남시 인물찾기’에 김유정이 회자되고 있다. 필자는 김유정을 하남으로 데려온 누이 김복달의 친손녀로 현존하는 유족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김유정 발자취를 본 지면에 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