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한국형 극사실회화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한국형 극사실회화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1.03.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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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윤진섭 미술평론가

최근에 '레일로드'로 잘 알려진 주태석 초대전이 경기도 이천에 있는 비씨조명미술관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작년 말에 열린 성곡미술관 주최의 김강용전과 함께 한국 극사실회화가 분명한 역사적 뿌리와 줄기를 가지고 토착화했음을 알리는 사례이다. 작년에 갤러리라메르에서 열린《진실 혹은 거짓》전은 김세중, 김시현, 유용상, 윤위동, 장기영, 최종용 등 6인의 작품을 통해 한국적 극사실주의 회화를 조망한 전시였다. 70년대부터 전개돼 온 한국의 극사실주의 회화는 2천년대 이후 한국이 고도 소비산업사회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고영훈, 김강용, 이석주, 주태석, 조상현, 서정찬 등 1세대 작가들과는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본격 팝아트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하는 이러한 경향은 이제 2세대 작가들에 의해 새롭게 부상되면서 보다 정치한 극사실적 묘사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한국의 극사실회화는 팝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만 정서만 그러할 뿐 표현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70년대에 들어 산업사회적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한국의 사회적 배경이 극사실 회화가 탄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도 가령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형구의 <과녁>과 같은 극사실 묘사의 작품이 있었지만, 소재적 측면에서 볼 때는 일정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조상현의 <복제된 레디메이드>는 공사장 가림막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건설 붐이 한창이던 당시의 사회 상황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발표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김명수(보중)는 실기실에 베니어판을 통째로 놓고 그 위에 선데이서울 표지를 확대해 그렸다. 조상현은 '장미여관'이란 영화 포스터를 확대하여 극사실로 묘사했는데, 이런 류의 작품이 팝과 극사실회화의 합류점이다.


당시 이석주는 송가문과 가진 2인전을 통해 벽돌담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는 조금 지난 뒤인 80년대에 들어 도시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 소재의 변화를 보였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평상복을 입은 젊은이들의 모습, 나중에 강승희와 황주리의 작품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이 도시의 이미지는 우리의 사회가 점차 산업사회로 전이되는 과정에서의 풍속을 담고 있다. 도시의 방랑자들, 그 음습하고 비릿한 밤거리의 풍경에 시선을 주었던 것이다. 음악에서는 통키타, 영화에서는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와 같은 작품들이 잇달아 발표되던 시절이었다. 거리에는 최류탄이 난무하고 계엄령이 발표되는 얼어붙은 정국에서 절은이들은 하길종 감독의 '고래사냥'과 같은 영화에 빠져들었다. 한치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질곡의 사회 분위기에서 젊은이들의 순수한 가슴은 하얀 포말이 이는 동해의 바닷가로 향했다. 

주태석이 '레일로드'로 대학미전에서 대통령상을, 지석철이 '쿠션'을 그려 19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것도 이 무렵이다. 변종곤은 하얀 망사 커튼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창가에 놓인 타이프라이터를 극사실 기법으로 그렸다. 그 때는 왜 그렇게 많은 작가들이 극사실 회화에 몰두했는가. 당시 [서울현대미술제], [앙데팡당] 등 젊은 작가들이 몰리는 대형 전시회에는 극사실회화 파트가 따로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80년대 중반에는 신표현주의의 바람이 불어닥치며 극사실주의는 다소 정체되는 듯 했다. 그러나 '형상성'을 표방한 동아미술제와 같은 민전의 창설은 한편으로 극사실을 포함, 구상회화를 지탱시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는 또한 '현실과 발언'을 비롯한 민중미술의 등장과 '새로운 형상성'을 표방한 한강미술관 중심의 일단의 작가들의 노력도 깃들어 있다. 장경호는 당시 한강미술관의 관장으로 목판화와 형상미술의 조명에 주력을 했다. 문화일보 기자를 거쳐 성곡미술관의 학예연구실장을 지낸 전준엽도 이 무렵에는 한강미술관에서 대형작품을 전시한 문제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소비가 미덕이 되는 후기산업사회의 국면을 노정한 2000년대의 극사실회화는 감각적이며 장식적인 경향이 사회적 의식의 표출에 우선했다. 여기에는 또한 화랑미술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해외 아트 페어와 옥션의 참가, 팽배해져 가는 상업주의도 한 몫을 했다. 대중의 취향은 골치 아픈 그림보다는 그저 걸어놓고 보기에 좋은 것을 선호했다. 따라서 과일을 비롯하여 꽃, 사탕 등 보기에 아름다운 그림들이 주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독특한 소재의 개발은 곧 작가적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감각을 그려라! 어떻게 감각을 그릴 수 있는가. 이 말은 곧 될 수 있으면 감각적으로 그리라는 의미다. 표피를 그리는 것, 사물의 표면 뒤에 숨겨진 진실 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외피를 감각적으로 그리는 것, 나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로 20대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번져가는 극사실 회화의 열풍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신기에 가까운 감각적인 테크닉에 놀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감각의 부패에 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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