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세한도 미담
[특별기고] 세한도 미담
  •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 승인 2021.03.1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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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황량한 벌판. 키는 크지만 볼품없을 만큼 앙상한 나무 오직 네 그루뿐. 나무 사이에 창고 같은 허름한 집 한 채. 이들은 겨우겨우 서 있다. 거기다 세찬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있는 듯하다. 매서운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고통의 계절이다. 바로 세한(歲寒)의 계절 즉 설날 무렵의 추위를 말한다.

누가 이런 적막한 풍경을, 아니 혹한을, 그렸을까. 바로 추사 김정희(1786-1856)이고, 찬탄의 대상은 그의 <세한도>(1844)이다. 살기 어려운 시절에 미담이 들려왔다. 소장자 손창근 옹은 불후의 명작 <세한도>를 국가에 기증했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를 기념하여 특별기념전 <세한>을 열었다.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Evergreens in Wintry Days)'. 참으로 고마운 전시다. 더군다나 코로나19의 난세에 들려온 미담이어서 더욱 소중하다.

추사는 누명을 쓰고 54세(1840)에 제주 대정으로 유배를 떠났다. 정치적 모함은 바로 혹독한 세한의 세월로 연결되었고, 유배기간은 길고도 길어 8년 4개월이나 되었다. 양반 중의 양반 가문출신에 대석학이었던 추사는 생애 최초의 위기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고통의 세월은 대가의 내공을 더욱 단단하게 조련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바로 그렇다. 인내의 시간은 불후의 창작으로 이어졌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한도>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추사를 위해 몇몇 친지들은 변함없는 정을 나누기도 했다.

역관(譯官)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은 각별했다. 그는 중국을 출입하면서 신간서적을 수집했고, 이를 제주의 추사에게 전달했다. 새로운 학문에 항상 목말라했던 추사에게는 신선한 청량수였을 것이다. 이들 사제지간의 끈끈한 정은 사뭇 울림이 크다. 게다가 양반과 중인출신이라는 신분 계급을 초월하고 이루어진 관계여서 더욱 훈훈하다. 서푼어치 권력 때문에 짓밟히는 우정이나 인륜은 얼마나 많았던가. 

추사는 드디어 붓을 들었다. 이상적의 고마운 마음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한겨울이 와서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쉬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정말 그렇다. 한겨울이지 않고 어떻게 상록수의 푸르름을 쉽게 알 수 있겠는가. 추사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을 빌려 <세한도>의 토대로 삼았다. 지조는커녕 불신과 불의의 온갖 잡음이 들려오는 세태에서 송백 이야기는 새삼 돋보인다. 그러고 보니 <세한도>는 각박한 현대사회를 위한 교훈 같기도 하다. 난세의 교과서 같다.

▲세한도(사진=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사진=국립중앙박물관)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자. 단촐한 집 한 채. 삼각형의 측면에는 특이하게도 원형의 창문이 나있다. 그리고 기다랗게 뒤로 이어졌지만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그냥 단촐한 집이라는 상징성만 남겼다. 집 왼쪽에는 비슷한 모양의 소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성긴 나뭇잎, 그것도 앙상하다. 오른쪽의 첫 나무는 너무 늙어 쓰러지기 직전, 겨우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갖은 풍상을 겪은 듯 온몸은 상처투성이고 나무줄기도 둘로 쪼개졌지만 이파리도 없다. 죽은 것 같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는 표정은 오른쪽으로 길게 내민 가지 끝에 몇 낱의 이파리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기서 고목은 소나무이고 나머지 세 그루는 백(柏) 즉 잣나무라고 알려졌다.
 
식물학자 박상진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 나무의 정체는 이렇다. 잣나무와 측백나무를 한국에서는 모두 백(栢)이라한다. 잣나무는 한국과 중국 동북부 지역에서 자라지만 중국 문화의 발상지인 내륙지방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한마디로 중국 선비들은 잣나무를 볼 수 없었다. 제주도에도 잣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추사가 귀양살이를 한 대정의 칩엽수는 소나무와 곰솔(海松)이 많다. 그래서 <세한도> 속의 늙은 소나무 한 그루와 세 그루의 곰솔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물론 그림 속의 내용은 공자 말씀처럼 소나무와 측백나무로 읽혀질 수 있다. 아무튼 추사의 <세한도> 속에 잣나무가 없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 우리는 <세한도>의 미담을 확인해 보자. 무엇보다 제자 이상적의 갸륵한 마음을 기리기 위해 추사는 <세한도>를 그려 주었다는 점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미담이지 않을 수 없다. 이상적은 이 그림을 들고 베이징으로 가 청대 문인학자들에게 보여주었고 16명으로부터 감상평을 받아 그림과 함께 배접했다. 정말 아름다운 미담이다. 청대 학계에서 추사라는 존재는 각별했음을 알려주는 일화이다.

식민지 시대 일본학자 후지스카 지카시(藤塚鄰)는 추사의 존재를 일찍 깨닫고 그에 대한 연구서를 집필했다. 게다가 <세한도>까지 소장하게 되었다. 일제말기 서예가 손재형은 도쿄로 달려가 후지스카에게 매달려 <세한도>를 한반도로 되찾아 왔다. 환국 이후 <세한도>는 오세창 같은 안목에 의해 감상평이 덧붙여지고, 세월은 흘러 손씨 가문의 소장품이 되었다. 92세의 손창근 옹은 <세한도>를 국가에 기증했다. 이미 3백여 점의 고서화를 기증했고 나머지 국보중의 국보인 <세한도>까지 내놓은 것이다. 아름답다. 국가는 기증자에게 금관문화훈장을 드렸고, 그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증자에게 90도 각도로 절하면서 예우했다. 이 모두 아름다운 미담의 연속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들은 <세한도>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세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 우리는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의 세한은 언제였나요?/ 당신의 송백과 같은 벗이 있나요?/ 변치 않는 푸르름/ 그 진정한 가치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국립중앙박물관 전시의 에필로그). 정말 <세한도>의 교훈은 무엇일까. 바로 ‘세한송(歲寒松)’의 교훈이다. 변절과 불의가 판치는 사회에서 지조와 우정을 지키는 마음. 혹한의 계절이 와도 변치 않는 꿋꿋한 의지. 세한은 특히 코로나19의 난국에 하나의 상징적 지표처럼 우리 곁에 다가왔다. <세한도>를 보면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우리 모두가 미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