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미술) 수상자]동ㆍ서양을 아우르는 크로스오버 아티스트, 모지선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미술) 수상자]동ㆍ서양을 아우르는 크로스오버 아티스트, 모지선 작가
  • 이은영ㆍ왕지수 기자
  • 승인 2021.04.0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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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과 기상, 철학을 작품에 담으려 노력
모지선의 예술 세계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재료가 될 수 있다
선조의 삶 속에 녹아있는 예술의 뿌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그림 그려
작가는 ‘작품을 이 시대에 어떻게 알릴 것인가’ 공부해야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왕지수 기자]나무는 작은 씨가 싹을 틔우는 동시에 제일 먼저 뿌리를 땅속 깊숙이 내린다. 온 신경을 집중해 뿌리를 깊숙이 더 깊숙이 내려 자신의 지반을 탄탄히 다지고 그 심지를 곧게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이내 땅속의 영양분을 흡수해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줄기를 내고, 많은 가지를 내고 잎을 틔우고 마침내 열매를 맺는다. 뿌리 깊은 나무는 어떤 역풍이 불어와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자신의 위용을 드러내며 굳건하게 서 있다.

본지 서울문화투데이가 만난 모지선 작가는 뿌리 깊은 나무와도 같다. 50여 년의 세월 동안 작가로 활동하며 치열하게 자신의 예술적 근원에 대해 고민하고 파고들어 마침내 그 뿌리를 찾아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작품으로 구현한다. 

▲모지선 작가
▲모지선 작가

1951년에 태어난 그녀는 숙명여대에 입학해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해 대학교를 끝까지 마치진 못했지만 모 작가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결혼 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에 매진한 그녀는 1999년과 2001년,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Bennale Intermazionale Dell'Arte Contemporanea에 초청되어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이후 2008년 Seoul Open Art Pair(부산벡스코), 2009년 NEWARTEXPO (뉴욕 jacob .k.javits center), 2010년 KOREA ART FESTIVAL (오스트리아 비엔나 팔래파피갤러리), 2011년 NICEXPO(프랑스 니스), 2017년 ‘The Sound of Movement ’ 뉴욕 델아테 갤러리기획초대전, 2018년 ‘Geluid van Beweging’  네델란드 호르크롬뮤즘초청전 등 다수의 국제전에 참가했으며, 약 35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저서로는 ‘門이야기’(시집)가 있으며, 독서신문에 ‘그림이 있는 수필’이라는 제목으로 2년간 수필을 연재하기도 했다. 

모지선 작가는 한국적인 조형 모티브와 오방색의 변주, 그와 함께 서양의 건축적인 조형 이미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동양과 서양의 융합을 캔버스에 표현한다. 하나의 대서사시 같은 걸출한 대작들을 작업하는 그녀는 연필, 목탄, 수목에서부터 안료, 도료, 오일, 섬유 등 다양한 재료의 조합과 융합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모지선 작가의 ‘열정의 시간’
▲모지선 작가의 ‘열정의 시간’

장르를 뛰어넘는 독자적 철학의 가치관, 자유분방한 미학과 통찰의 세계를 보여주는 진정한 크로스 오버 아티스트로 불리는 모 작가는 이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지난 1월에 열린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의 미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모 작가를 양평에 위치한 그녀의 화실이자 갤러리에서 만났다.

◆ 선조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예술관이 곧 나의 뿌리

‘제12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수상 직후 소감을 말하며 “선조의 삶 속에 있는 예술의 뿌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지금껏 그림을 그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모 작가가 ‘선조의 삶 속에 있는 예술의 뿌리’를 찾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나는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때문에 활동 초기에는 단지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서 무의식적으로 작품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가지 경험을 하게 됐다. 둘 다 30대에 겪었던 일들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원로 화가 장리석 선생님이 나를 굉장히 예뻐하셨는데 한 번은 내 전시회에 오셔서 작품을 보시고 “모 작가는 파리에서 유학을 했지?”라고 물으시더라. 그래서 속으로 ‘나는 유학을 한 적이 없는데, 선생님은 왜 내가 파리에서 유학을 했다고 생각하실까? 내 그림이 파리풍인가?’라고 생각했다.

또 한 번은 내 친척 중에 유명한 작가가 한 분 계신다. 그분이 어느 날 느닷없이 내게 와서 “네 그림의 역사적 뿌리가 어디 있냐?”라고 물었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 꽃도 그리고, 풍경도 그리면서 혼자 좋아서 그림 그리는 것에 심취해 있었지 내 작품의 근원적인 뿌리는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두 가지 질문을 받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 

선조의 삶 속에 있는 예술의 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그 두 가지 일이 계기가 됐다. 결국 우리나라 선조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예술관이 나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모지선 작가의 작품
▲모지선 작가의 작품

◆ ‘기ㆍ운ㆍ생ㆍ동’, 내 예술의 근원적 정신

모 작가가 찾은 ‘선조의 삶 속에 있는 예술의 뿌리’란 무엇인가?

앞서 말한 두 가지 일을 계기로 동양화나 조선 시대의 수묵화, 사군자, 고구려 벽화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한국 사람들의 미의식 등을 책과 문헌을 통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나는 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통해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게 됐다. 자연스레 우리의 선과 색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동양의 미술 가운데에서도 사군자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사군자라는 게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담아 그리는 것이다. ‘기ㆍ운ㆍ생ㆍ동’, 재주를 부리지 않고 뜻과 기상을 표현한다는 말이다. 사군자가 그렇다. 그것을 깨닫고 사군자에 완전히 꽂혀 버렸다. ‘이게 추상 세계지, 이것 이상의 추상이 어디 있나?’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문자로 적지 않아도 그림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거다. ‘개념 미술의 선구자라 불리는 마르쉘 뒤샹보다 더 큰 것을 우리 선조들이 가지고 있구나!’라고 깨달았다.  

그 일필휘지의 사군자 정신과 선비정신, 재주를 나타내지 않고 뜻과 기상과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그것이야말로 내가 찾아낸 선조의 삶에 녹아있는 예술의 뿌리라 할 수 있겠다. 

◆ 그림 그리는 행위 보다 그 안의 내재한 철학 더 중요

이러한 선조들의 정신이 모 작가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눈으로 보이는 화려한 기교 등을 자랑하기보다는 우리 선조의 선비정신과 사군자 정신을 받들어 나의 정신세계를 작품에 그대로 담아내려고 한다. 그 뜻과 기상을 작품 안에 표현하려고 한다.

작품을 할 때는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보다 작가가 철학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그것을 어떻게 화폭에 담아내느냐가 중요하다. 이러한 가치관으로 스스로 이론을 설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캔버스 위에 담아낼지 연구하고 또 그 방법을 터득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 과정이 즐겁다.

나는 대학교에서는 서양화를 배웠고, 이후에는 동양화에 관심을 갖고 사군자를 오래도록 그렸다. 서양화의 어떤 기교, 동양화의 어떤 기술 이런 게 나에게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다시금 내가 사군자를 할 수도 있지만 나 스스로 모지선의 정신세계에서는 그 어떤 것도 다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정했다. 선조들의 ‘기ㆍ운ㆍ생ㆍ동’하는 정신을 마음에 담아 작품을 하는 게 중요하지 겉으로 보이는 기법이나 표현 방법에 얽매이지 않게 됐다.

▲모지선 작가
▲모지선 작가

◆ 서양화ㆍ동양화, 타인이 정해놓은 틀에서 해방돼…

본인을 ‘동서양을 아우르는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소개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한 말이라기보다는 한 평론가가 그렇게 칭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 그거 맞는 말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평론가의 말씀에 동의하는 이유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내 예술의 근원적인 뿌리는 선조들의 정신에 있다. 무엇을 그리고 어떤 기교를 부리든 간에 먼저는 어떤 철학과 사상을 담느냐가 나에게 중요하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가 수영을 하다가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지 않나? 그런데 발이 땅에 닿으면 그다음부터는 안심을 한다. 그런 후에는 자유롭게 바다를 유영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처럼 내가 예술을 하는 그 근본적인 이유, 그 뿌리를 찾으니 안도감이 생겼다. 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뿌리가 내 안에 심겨 있으니 무엇이든 자유롭게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안도감과 확신. 뿌리가 있으니 싹도 피울 수 있고, 줄기도 꽃도 피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때까지 쭉 그림을 그려왔다.

이렇게 내가 예술을 하는 그 근원이 바로 잡히게 되니 서양화든 동양화든 그 틀에 국한되지 않고 어디든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더라. 우리의 미적 표현과 서양미술이 어디서 만나고 혹은 어떻게 섞여 있는지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한 관심사가 작품에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를 보고 ‘동ㆍ서양을 아우르는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라고 불러주시는 것 같고, 나 또한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흔히들 어떤 작품을 그리면, 선 하나를 보고 ‘이거는 한국적인 것인가?’, ‘동양적인 것인가?’, ‘아니면 서양적인 것인가?’ 이런 것을 많이 논하곤 한다. 그런데 나는 서양화 개념, 동양화 개념에 대해 자유롭다. 미의식의 세계 안에서 어떠한 것이든 내가 선택하고 건져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서양이다 동양이다 등 타인이 정해놓은 틀에서 해방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작품에 대해 설명 중인 모지선 작가
▲작품에 대해 설명 중인 모지선 작가

◆ 작가는 타인과 구분되는 차별성 필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Bennale Intermazionale Dell'Arte Contemporanea에서 지난 2001년 오일 페인팅 부문 5위를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어떤 작품으로 상을 받았으며,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탈리아 현지에서 보름 동안 전시를 했다. 전시가 개최되는 동안 비평가들이 출품작을 살펴보고 평가한다. 

전시 마지막 날 출품작들에 대한 최종 심사를 진행하고 수상자를 발표한다. 그때 당시 페인팅 부분 5위를 했고, ‘역사의 빛’이라는 작품을 포함해 그림과 드로잉까지 해서 한 5~6개 작품을 가지고 갔다. 비평가들은 물론이고, 서양화가들이 “독특하고 유니크하다”라면서 내 작품이 해외의 작가들 사이에서 좋은 평을 많이 받았다.
 
작가의 작업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차별화되고, 작가의 역사나 작가 스스로에 대한 가치관이나 철학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등에 대해 깊게 조명하는 것 같았다. 그러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차별성이나 독특함이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VR 전시회, 미디어 아트 등 예술과 기술을 접목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예술과 기술 융합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1990년대 작가로서 이탈리아라는 국제무대에 처음 발을 딛게 됐다. 그때 나는 내 작업에 대한 설명을 담은 팸플릿을 가지고 갔다. 그런데 해외 작가들은 다 CD, 노트북을 갖고 와서 작업을 하더라. 그때 당시 우리나라에는 노트북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였다. 새로운 기술과 예술이 만날 수 있다는 충격을 받고 이런 기술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내 그림에 관심을 가진 어느 큰 미술관으로부터 제의를 하나 받았다. “모 작가 작품의 선을 움직이게 만들어줄 수 있냐?”라고 해서, 영상 작가를 찾아가 돈을 주고 의뢰를 했다. 그렇게 완성한 영상을 미술관 쪽에 전달을 했더니 자신들이 원하는 게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내 그림을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IT 기술과 접목해 표현할 수 있는지 연구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딸이 IT업계에서 일을 하는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받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1년 만에 ‘오르페스 여행 작품’을 IT기술과 접목해 내 나름대로 만들었다. 스스로 만들어놓고 보니까 ‘아, 이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어마어마한 것을 만든 사람도 처음에는 주차장에서 주먹구구로 시작하지 않나? 뭔가 대단한 거를 처음부터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다. 그래서 나도 이 작품 하나를 기점으로 해서 만들어보니 그다음에 좀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이 배우러 다녔다. 이 나이에 안 돌아가는 머리를 쓰고 했다.

현재 수피아미술관의 ‘화려한 향연’ 展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누드 변주곡’이라는 타이틀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를 통해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누드 변주곡’이라는 작품은 독특한 작품이다. ‘누드 변주곡’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악적 연구를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선과 역동성이 강조된 모지선 작가의 ‘누드 변주곡’
▲선과 역동성이 강조된 모지선 작가의 ‘누드 변주곡’

음악을 들을 때 아리아가 계속 반복되고 변화하듯이 그림에서 나의 누드 크로키 등 회화적 콘텐츠가 변주하는 선율처럼 어떤 행위를 하며 역동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 시, 음악, 책, 그림 등 모든 것 내 안에서 어우러져…

그림뿐만 아니라 시와 수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도 하고, 성악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어 다양한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활동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는 그림을 그리다 막히면 늘 책을 보고 책을 읽다가 길을 찾으면 다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곤 한다. 또한 음악을 듣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림, 시, 음악, 책 등 이런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다 같이 어우러져 있다. 그림 속에서 음악을 찾고 음악 속에서 그림을 찾는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내 작품을 보고는 “모 화백님, 그림에서 음악이 들려요”라고 많이 이야기하신다.

내 안의 감정과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들을 자연스레 하는 것뿐이다. 

한 번은 정채봉 작가가 나를 찾아와 “이번에 책을 내는데 그 책 표지로 모 작가의 그림을 사용하고 싶다”라고 했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정채봉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정 선생이 내 화실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내가 글 하나를 써 놓은 것을 우연히 보시고는 “이렇게 좋은 시를 왜 출판을 안 하냐?”라고 했다. 그래서 정채봉 선생의 권유로 시집을 출간하게 됐다.

그때 정 선생이 “글로써 세상을 넓히고 그림으로 세상을 높이고 싶은 화가 모지선”이라고 전집에 글귀를 써주셨다. 정 선생 말씀처럼 나는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나와 세상을 표현하는 사람이고 싶다.

시집 발간 후 자연스럽게 독서신문의 조성남 편집장을 알게 되어 “모지선의 그림이 있는 수필”를 쓰게 됐다. 내가 첫 수필로 뭐를 썼냐면 ‘나는 수상 후보자’를 썼다. 그 수필은 ‘아무도 나에게 상을 주는 사람도 없고 내 작품을 인정하는 사람도 없으니 내가 나한테 상을 주리라’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 수필로 문화 수필 대상까지 받아 등단을 하게 됐다. 그 후 독서신문에 거의 2년을 연재했다. 내가 문학적 소양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단지 나의 일상을 그대로 쓴 내용이었다. 그만큼 나의 일상이 그림을 그리다가 책을 보다가 시를 쓰다가 노래를 하다가, 이게 나의 삶이다.

▲모지선 작가가 K-Classic의 영향을 받아 완성한 작품

◆ 작품은 곧 화가의 현주소

작품의 영감은 어떤 것들을 통해 받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4~5년을 주기로 변화를 겪는 것 같다. K-classic에 빠져 있을 때는 그 선율을 통해 영감을 받고, 역사에 빠져 있을 때는 그것과 관련해 영감을 받아 작품을 완성했다. 

자연스럽게 관심과 흥미가 그 시대와 때에 따라 변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갇혀 있을 때는 ‘화가의 방’이라는 주제로 제가 갇혀 있는 공간에 대해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렇듯 작품이라는 것은 곧 화가의 현주소이다.

◆ 작가는 작품을 미래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해야…

코로나19로 지난 한 해 문화예술계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모 작가에게 코로나19가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작가로서 지난 한 해를 어떻게 보냈나?

코로나 시대였지만 감사하게도 작년 한 해 전시를 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문화ㆍ예술인들이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코로나가 주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면을 고찰할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코로나 시대의 역설적인 소득이라 생각한다. 그 시간을 통해 영감을 받게 되고 그것이 작품 활동으로 이어지게 되니까.

갤러리가 문을 닫고 관객들이 찾아오지 못한다면 좌절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작품을 어떻게 보여주느냐’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 그래서 VR같은 새로운 기술을 작가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도 신기술을 배워야 한다. 이제 미래의 언어로 표현을 해야 한다. 원로 작가분들을 만나보면 그분들도 ‘자기의 작품을 이 시대에 어떻게 조명하고 알릴 것인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신다. 그러한 자세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모지선 작가
▲모지선 작가

◆ 삶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는 작가로 남고파

앞으로의 계획과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최인호 작가를 기리는 작품을 하고 싶다. 이 위대한 사람에 대한 조명이 잘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발로 뛰는 역사가는 최인호 작가밖에 없다. 최인호 작가는 한국의 역사와 뿌리는 찾기 위해 직접 발로 뛰어 유림 6권의 역사책을 쓰고 돌아가셨다.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반드시 조명하는 작품을 하고 싶다. 영상이 됐든 평면 회화가 됐든 뭐든 하고 싶다. 그분에게 헌정하는 작품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수필을 음악극이나 오페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월광소나타’라는 수필 작품을 썼다. 어릴 때 피아노 선생님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수필로 썼는데, 그 수필이 장면이 되어 무대로 실현되는 것을 꿈꾼다.

앞으로 대중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의 삶이 그대로 작품으로 투영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그 사람은 그냥 사는 게 그냥 예술이더라’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작가. 그런 것을 추구한다. 

*사진:김선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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