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신영문구사의 기적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신영문구사의 기적
  • 윤영채
  • 승인 2021.04.08 2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세검정초등학교 정문에서 구기동 방면으로 가다 보면 피아노 학원들이 있다. 지금은 종적을 감췄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토마토 분식’, ‘조 아저씨 햄버거그리고 신영문구사가 있었다. 철판 떡볶이를 먹기 위해 줄을 섰던 기억도 나고, 조 아저씨가 만들어주시던 새우버거 맛도 잊을 수가 없다.

피아노 학원을 몰래 빠져나와 신영문구사에서 은밀한 작당 회의를 하곤 했다. 몰래 훔쳐 온 엄마의 돈을 모아서 블루마블을 샀고, 남은 돈으로는 질긴 불량 껌을 사서 턱이 빠질 때까지 씹어댔다. 당시 우리는 구몬학습과 피아노 교습이라는 사교육에 지쳐있었다. 그러나 갓 10대가 된 악동들이 할 수 있는 일탈은 많지 않았다. 고작 300원짜리 방귀 탄을 사서 학원가 앞에 뿌려놓는 반항을 저질렀다. 그리곤 우리를 쫓는 어른들의 아우성이 가실 때까지 문구사 뒤편에 숨어 있었다.

그마저도 열두 살이 되자, 오랫동안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어학원을 등록하게 되면서 차차 발길이 끊겼다. 친구보다 성적이 중요해졌고, 잘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을 즈음에 그 문구사에 대한 추억도 자연스럽게 잊혀 갔다. 고등학생이 된 후 가보니 피아노 학원도 분식집도 문구사도 사라지고 없었다. 다 어디로 간 걸까? 그 시절의 나도 찾을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부모님과 국내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어디 였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어느 휴게소에서의 뜻밖의 만남은 생생하다. 식당가에서 신영문구사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피곤한 표정으로 식사를 하고 계셨다. 너무 오랜만에 뵙는 얼굴들이라 긴가민가하기도 했지만, 워낙 숫기가 없어서 못 본 채 지나치고 말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차에 타서, 생각해봤다. 당시만 해도 문구사 근처에 가본 지도 꽤 오래됐었기 때문에, 그곳이 아직 건재한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후로도 그들의 피곤하기만 했던 표정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곰곰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기억 저편에서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던 하나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열병 같은 짝사랑을 하느라 꽤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어 학원에서 그 친구를 떠올리며 단어 시험을 치르고 있을 때 세검정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특별한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학원이 끝난 뒤,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으로 향했다. 간만에 신영문구사에 들러 야광봉을 샀다. 그때도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몹시 피곤한 표정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운동장으로 달려가야만 했기에 여운은 없었다. 이제 막 어둠이 내려앉은 운동장엔 사람들이 작은 불꽃이나 야광봉 따위를 흔들며 놀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밤, 그곳에서 짝사랑하던 그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웃었고, 함께 연한 바람결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었다. 같은 하늘, 같은 시간에서 나와 문구사는 다른 표정으로 각자 다른 운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결국,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날 학원에서 봤던 시험은 40점이라는 처절한 결과를 안겨줬다. 원하는 대학도 가지 못했고, 멋진 스무 살을 보내지도 못했다. 음악과 예술이 넘치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지금 나는 주 7일을 일하고 일주일에 다섯 편의 글을 쓰는 피곤한 삶을 산다. 인제 와서 다시 신영문구사에 대한 추억을 꺼내 보는 이유는, 휴게소에서 보았던 그들의 피곤함이 성인이 되어 경험하는 이 피로한 삶의 무게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한 추억으로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그들은 생계를 걱정했을 것이다. 악동 같은 우리를 보며 자녀에 대한 고민으로 어깨가 무거웠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보니 휴게소에서 봤던 그 표정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곳에 발길이 끊길 무렵, 나도 우리 모두도 커지는 고민을 안고 밤마다 울었을 것이다. 그곳은 유년 시절의 시작이자 끝, 내 성장의 작은 무대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원작으로 한 영화 포스터 (출처:https://blog.naver.com)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원작으로 한 영화 포스터 (출처:https://blog.naver.com)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주인 할아버지가 익명으로 고민 상담을 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른이 되어 각기 다른 고민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솔직하고도 잔잔한 위로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추억과 공감 그리고 따뜻한 마음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의 세상으로 전달된다. 갑자기 이 소설을 끄집어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얼마 전에 잠시 볼일이 있어 구기동을 가기 위해 세검정초등학교 근처의 골목길에 들어섰다. 처리해야 할 일들로 머리가 복잡한 상태에서 무심히 걷고 있었다. 지금은 쌀과 반찬가게로 바뀌어버린 신영문구사를 지나치는 순간, 깊은 슬픔과 아련함 그리고 불꽃 같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복잡한 생각과 고민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해야 할 일도, 공부도, 사랑도 언젠가부터 마음에 스며들어있던 불안과 피곤 따위를 말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초등학교 후배의 어머니가 운영하셨던 토마토 분식, 노부부가 늘 바지런했던 조 아저씨, 매일같이 부부싸움을 하셨던 빈 피아노학원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곳을 누비며 매일 온갖 나쁜 짓을 하고 다녔던 골목 무리인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겠지. 바쁜 오늘의 영채에게도 살 만한지, 너무 여유가 없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신영문구사의 기적이 일어나서 그날 선선하기만 했던 밤공기를 다시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하늘, 같은 시간, 어딘가에 있을 소중한 나의 친구들과 이곳에 모여, 아이처럼 울고 웃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점점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유년 시절의 추억은 신영문구사가 있던 한 어귀에 박제로 멈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