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현재를 위로하는 119년 전 왕실의 소리…국립국악원 70주년 기념 공연 ‘야진연’
[현장리뷰]현재를 위로하는 119년 전 왕실의 소리…국립국악원 70주년 기념 공연 ‘야진연’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4.0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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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4, 국립국악원 예악당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현실의 고통을 위로하는 과거의 궁중 잔치 ‘야진연’이 세월을 거슬러 우리 곁에 찾아왔다. 국립국악원은 개원 70주년을 기념해 대표공연으로 119년 전 왕실의 잔치를 선보인다.

국립국악원이 개원 70주년을 맞이해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신라시대 음성서 이후 1,400여 년의 맥을 이어온 국립 음악기관으로서 흔들림 없이 지켜온 찬란한 궁중 예술을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국립국악원 ‘야진연’ 프레스 리허설 모습(제공=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은 1902년 4월,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기로소(耆老所) 입소를 축하했던 진연(進宴,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궁에서 베푸는 잔치)중 밤에 열었던 잔치 ‘야진연(夜進宴)’을 재해석하여 오는 4월 9일부터 14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린다. 

기로소란 정2품 이상, 나이 70세 이상의 문신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다. 태조 고황제가 창설했으며 숙종, 영조 그리고 고종이 여기에 들었다. 

1902년 기로소 입소의 축하 진연으로는 황태자와 백관들이 황제에게 ‘외진연’을 올리고, 다음날엔 왕실 가족과 친인척 및 명부가 참여해 ‘내진연’을, 그리고 그날 밤에는 황태자가 황제에게 ‘야진연’을 올렸다. 

8일 오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진행된 프레스콜에서 조수현 연출은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과거의 작품을 ‘왜’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라며 “이 작품에서는 고종과 태자의 관계를 드라마 적으로 접근해, 집중적으로 풀어냈다”라고 말했다. 

▲국립국악원 ‘야진연’ 프레스 리허설 모습(제공=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야진연’ 프레스 리허설 모습(제공=국립국악원)

그는 “처음엔 태자가 고종을 기로소에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태자는 처음 아버지가 올랐던 계단 위쪽을 응시하는 수미상관 구조를 지닌다”라며 “이는 그도 언젠가 아버지가 갔던 길을 갈 것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종의 기로소 입소 전후 자료를 살피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고종즉위 40년 칭경기념비전’이었다. 온갖 상서로운 동물들과 함께 도교적 상징인 거북이, 연꽃과 주작을 이뤄진 무지개 모양의 문을 세운 독특한 형태의 기념비이다”라며 “황태자 순종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안식과 평안의 무릉도원을 선물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고, ‘야진연’도 같은 선상에서 해석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조 연출은 119년 전과 코로나19로 침체된 지금의 시대 상황을 비슷하게 바라본다. 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축제에서 얻어갈 수 있는 본 의미를 살렸다”라며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축제를 통해 되새기면서 내일을 살아갈 의미를 찾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국립국악원 ‘야진연’ 프레스 리허설 모습(제공=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야진연’ 프레스 리허설 모습(제공=국립국악원)

이번 ‘야진연’은 1902년 5월 31일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함녕전에서 저녁 잔치로 거행됐던 진연 중 의례를 제외하고 음악과 춤을 중심으로 하는 무대공연으로 재창작 됐다. 본래 의례를 중심으로 연주와 궁중무용이 진행되었으나, 12종목의 궁중무용은 제수창, 장생보연지무, 춘앵전, 헌선도, 학무‧연화대무, 선유락 등 6종목으로 축소하고 여기에 정동방곡을 시작으로 여민락, 수제천, 해령 등 궁중음악의 정수를 담았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유정숙 예술감독은 “왕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연주와 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복숭아를 바치는 공연을 관객과 나누며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염원을 담았다”라며 “담백하고 절제된 동작으로 우리 궁중 무용이 담고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현하고자 했다. 공연을 통해 깊이 있고 소중한 궁중 예술의 가치를 발견하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국립국악원 ‘야진연’ 프레스 리허설 모습(제공=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야진연’ 프레스 리허설 모습(제공=국립국악원)

고종 황제의 기로소 입소를 축하하는 당시 행사의 전말은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소장 임인진연도병과 『임인진연의궤』에 담겨 있어, 이번 공연의 재현에 바탕이 됐다. 전체 10폭의 그림 중 8폭에는 밤에 올려진 잔치였던 ‘야진연’의 모습이 담겨있다.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 아래 아름다운 궁 안에서 달빛과 별빛으로 물든 왕실의 잔치를 12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판타지로 풀어냈다. 

서인화 국악연구실장은 “국립국악원은 조선 왕실의 음악기관이던 장악원의 맥을 이어왔기에, 귀중한 유물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에 우리가 소장한 유물과 연계해서 공연을 선보이고자 했다”라며 “다가오는 2022년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임인진연도병’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공연은 임금의 덕이 높아 상제께서 장수로 보답하여 창성하게 한다는 내용의 구호(口號)를 가진 ‘제수창’을 시작으로 백성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자 했던 ‘여민락’과 하늘처럼 영원한 생명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수제천’, 새롭고 힘찬 발걸음의 시작을 알리는 ‘대취타’ 에 이어 윤선도의 ‘어부사’를 부르며 배 주위를 둘러서서 춤을 추는 ‘선유락’으로 이어져 궁중예술의 백미를 관객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국립국악원 ‘야진연’ 프레스 리허설 모습(제공=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야진연’ 프레스 리허설 모습(제공=국립국악원)

또한, 이번 공연은 무대미술과 무대 영상디자인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수현 감독이 맡은 첫 연출작으로 전통의 원형은 최대한 살리면서 무대 위 표현 기법은 첨단기술을 접목시켰다. 조수현 연출은 LED 스크린으로 무대를 둘러싸 ‘기로소’를 무릉도원의 세계로 표현하고, 진연의 현장을 환상적인 이미지로 펼쳐내 공연에 생동감을 더할 예정이다.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어둠을 밝히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120여 년 전의 ‘야진연’을 통해 2021년 관객들의 마음속에 온화한 기운의 희망과 위로가 전해졌으면 한다”라고 밝히며 “어려운 역사 속에서도 묵묵히 버텨온 찬란한 전통 예술이 전하는 깊은 울림과 감동을 관객과 함께 나누길 바란다”라고 언급했다.

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기념 공연 ‘야진연’은 오는 9일(금)부터 14일(목)까지 주중 저녁 7시 30분, 주말 오후 3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선보이며 국립국악원 누리집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 S석 5만원, A석 3만원, B석 2만원. 12일(월)은 휴관. (문의 02-580-3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