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열: 은유의 섬》전, 77세 노화가의 동심 깃든 서정
《오세열: 은유의 섬》전, 77세 노화가의 동심 깃든 서정
  • 이민훈 기자
  • 승인 2021.04.1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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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개인전, 역동적인 세상 속 발견한 내면 순수성 표현
내면 가치 중요해진 비대면 시대…오세열 작품세계 총체적으로 새롭게 재해석
학고재, 5월 5일까지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이 된 지금, 내면의 가치를 새롭게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역동적인 사회의 흐름 속에서도 오롯이 자신의 내면에 몰두해 작품세계를 펼쳐온 오세열 작가의 개인전이다.

오세열, 14. 무제 Untitled, 2021,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112x145.5cm (사진=학고재)

전시 《오세열: 은유의 섬》은 종로구에 위치한 학고재에서 지난 8일부터 오는 5월 5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학고재가 선보이는 오세열의 4번째 개인전으로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회화 24점을 선보인다.

지난 2017년에 열린 《암시적 기호학》에서 오세열은 화면에 나타나는 도상들의 의미와 조형성을 살폈고, 같은 해 11월 《무구한 눈》은 그의 인물 형상이 드러내는 서정성을 주목했다.

오세열, 18. 무제 Untitled, 2021,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193.9x130.3cm (사진=학고재)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한다. 유년의 감각을 재료 삼아 특유의 반(半) 추상화면을 구성하고, 낙서하듯 그려내 어린아이의 동심이 깃든 화면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전쟁의 한복판에서 유년을 경험하고, 세상이 어두울 때마다 내면을 들여다 봤던 77세 화가의 세계 안엔 아이와 노인의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오세열은 은유의 화법을 구사한다. 평평한 물감층을 긁어 만든 흔적들이 비밀스러운 암호처럼, 낙서처럼 화폭을 채운다. 그가 만들어낸 기호는 정해진 의미에 갇히지 않고 폭넓은 사유의 기회를 품고 있다. 어린아이가 놀다 간 흔적처럼 보이는 동시에 노인의 연륜의 손길이 떠오르기도 하는 표현이다.

오 작가는 인물화에 대해 “변방과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 부모를 떠나 방황하는 아이들같이 전쟁 후에는 마음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많았다”며  “그런 아이들의 형상으로부터 외로움과 쓸쓸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이어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외로운 사람들은 주위에서 품어 주어야 한다”며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치유의 표현을 드러냈다

오세열, 7. 무제 Untitled, 2019,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80x100cm (사진=학고재)
오세열, 7. 무제 Untitled, 2019,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80x100cm (사진=학고재)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전시 서문에서 “화면의 피부는 매우 납작하지만, 그 위로 물감과 사물이 생명체처럼 서식한다”며 오세열의 작품을 소개한다.

오세열은 캔버스 위에 단색조의 물감을 수차례 쌓아 올려 바탕을 마련하고, 뾰족한 도구로 화면을 긁어낸다. 자신의 이 작업 과정이 “유년의 순수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같다고 말한다. 여러 차례 물감을 중첩해 바탕색을 만들고 풍부한 색의 표현을 구사하는 화풍에 대해선 ‘묵은지 같은 그림을 그리려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겉절이도 신선한 맛이 좋지만, 그림에는 깊이가 있어야 하니 묵은지 같은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볼 때마다 작품이 다르게 느껴지는 깊이 말이다”라며 작품에 담긴 감각의 깊이를 언급했다.

오세열, 16. 무제 Untitled, 2021,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130x97cm (사진=학고재)

오세열은 산업 사회를 겪으며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는 “물질적인 것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신적인 것이 소멸해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어두운 세상 속에서 발견한 자신의 내면적 가치를 그림으로 꺼내는 일을 좋아했다. 그가 만든 화폭은 지친 인간의 마음을 보듬고, 현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유행의 본격화로 거리두기가 익숙해진 우리 일상의 변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건네준다. 물질세계와 멀어지면서 공허해진 우리의 시간을 채워나갈 방향을 생각해 볼 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