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산, 수묵화의 미 전하는 《기세와 여운》展
뮤지엄산, 수묵화의 미 전하는 《기세와 여운》展
  • 이민훈 기자
  • 승인 2021.04.1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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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연령층의 한국 근현대 회화 작가 20명 참여…김환기, 김창열, 이우환, 김호득, 박다원 등
지난달 13일 개막, 오는 8월 29일까지
동양적 발상으로 보는 넓은 의미의 회화 전시

쉼 없이 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이 자연의 시간을 느껴볼 수 있는 수묵화 전시가 기획됐다. 뮤지엄산에서 지난달 13일에 문을 열어 오는 8월 29일까지 진행되는 《기세와 여운》展이다.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잠시 멈춰 앞으로 나아갈 시간을 고민하는 지금, 이번 전시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전시는 한국 근현대 회화작가 20명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자연과 가장 닮은 수묵화는 기와 운이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움이 완성된다. 이 둘의 조화는 자연스러움이 담보될 때야 그 빛을 낼 수 있다. 전시는 자연이 품고 있는 ‘기세’ 속에서 우리가 지나온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고, 함께 어우러져 있는 ‘운치’ 속에선 여유를 느낄 수 있게 장을 열어준다.

이번 전시는 수묵화의 미적 특징을 기(氣)와 운(韻)으로 요약한다. 이 특징을 서양화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회화에서 찾고자 한다.

제1전시장 전경(청조갤러리) 김영주, 김창열, 김호득, 김환기, 남관, 박다원, 서세옥, 오수환, 우종택, 이강소, 이우환, 이응노, 장욱진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사진=뮤지엄 산)
제1전시장 전경(청조갤러리) 김영주, 김창열, 김호득, 김환기, 남관, 박다원, 서세옥, 오수환, 우종택, 이강소, 이우환, 이응노, 장욱진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사진=뮤지엄 산)

선에서 표출되는 기세를 표현한 작품 … 김영주, 김환기, 박다원 등

수묵화의 미적 특징 중 하나인 기는 서체 충동과 선이 가진 고유의 힘을 통해 표현된다. 서체 충동은 국내 서양화가들에게도 발견되는데, 이는 한국 현대 화단의 시작점에 동양 예술의 정신세계가 깊게 스며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보여주는 작가로는 김영주, 김창열, 김환기, 남관, 서세옥, 오수환, 이강소, 이우환, 이응노, 장욱진이다. 김호득, 박다원, 우종택 작가는 선이 가진 고유의 힘을 통해 수묵화의 기를 보여준다.

주요 작가 중 하나인 김영주는 195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비평활동을 전개하였다. 1957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를 결성하여 미술평론계를 이끌었으며, 기존의 보수적인 화단에 대항할 수 있는 재야 작가를 발굴하는 역할을 했다. 작품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집중되어 왔다. 그는 기호와 서체로 이루어진 화면을 연출한다. <신화시대>는 그의 말년작 중 하나로 198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얼굴 형상과 즉흥적인 선의 조합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말년에 이르러 전통 회화의 선으로 돌아가 현대화된 화면을 구축한 그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김 작가는 1960년대에는 원색으로 이뤄진 평면 추상을 진행했고, 1970년대 이후 무작위적인 문구(글자)와 기호가 격정적인 선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화풍을 완성했다. 

김영주,신화시대, 1993, 200.0×380.0cm, 종이에 수묵,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뮤지엄산)<br>
김영주,신화시대, 1993, 200.0×380.0cm, 종이에 수묵,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뮤지엄산)

김환기의 작품은 서양화에 스민 동양 예술 자락을 볼 수 있게 한다. 김환기는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 백만회 등의 단체에 가담하고, 1948년 신사실파를 결성해 한국적 정서를 현대화하고자 하는 실험에 힘써왔다. 그가 산, 달, 항아리 등 한국적 소재를 형상화하는 방식은 수묵화 선의 움직임을 닮아있다. 또한, 전면점화로 알려진 그의 대표작은 모필(毛筆)로 그려진 것이다. 그의 작업은 동양의 선과 모필이라는 한국적인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김환기의 드로잉은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가 형성되는 토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김환기, 무제, 1963, 16.0 x 24.5cm, 종이에 과슈, 뮤지엄산 소장 (사진=뮤지엄산)<br>
김환기, 무제, 1963, 16.0 x 24.5cm, 종이에 과슈, 뮤지엄산 소장 (사진=뮤지엄산)

일필휘지로 생명의 기운을  형상화하는 박다원의 작업 방식은 일필휘지에 근거한다 서양미술의 흐름을 관통하는 그안에 동양의 정신과  역사가 녹아 있다. 직감으로 받아 들이는 그의 작업에는 우주 자연 인간에 대한  사유와 명상이 담겨 있다. 우연의 필치가 필연으로 이어지는  정신성에 의한 독자적인 조형성,  자유로움과 자제력의 동시작용으로 화면에 생동감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힘을 자아낸다 .정신력에서 살아남은 작가의 화면 경영의 치열함을 알수 있다. 30대 중반까지 그의 작업은 탄탄한 데셍과 화면의 완성도를 추구한 구상 회화에 속하는 것이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 단색의 선과 텅 빈 공간이 조화를 이루는 추상화로 변모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본질에 닿으려는 작가의 무의식 속에 내재돼 체득된 무엇에 영향을 받은점이 있다고 보여진다. 단 하나의 붓질로 작품은 완성되며, 텅 빈 캔버스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화려한 수식과 기교없이 정신성에 의한 독자적인 조형성으로 공명을 일으킨다

박다원의 now here는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가 시작된 가장 첫 연작이다. 한국적모더니즘 ,우리내 기억속에 잠재된 동양의 추상정신을 캔버스에 소환시켜  본질과의 조우를 시도하는 작업이다. 그는 페이지갤러리, 우명 미술관, 지족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비롯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고려대 박물관, 경남도립미술관 등의 주요 단체전에 초대 됐다.

박다원,NOW HERE 10,10-1, 2019, 162.0×130.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개인소장 (사진=뮤지엄산)<br>
박다원,NOW HERE 10,10-1, 2019, 162.0×130.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개인소장 (사진=뮤지엄산)

‘번짐’과 ‘여백’으로 표현되는 운치…구모경, 정창섭 등

여백에서 느껴지는 고아한 정취와 번짐에서 나타나는 은은한 미감이 담긴 작품들도 전시된다. 여백을 비어 있는 공허한 무의 상태가 아닌 비움을 실현함으로써 화면을 채우는 작품들이다. 구모경, 윤형근, 이영호, 정광희, 정창섭, 정탁영, 조순호, 김창열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산수를 주제로 작업을 이어온 구모경은 전통 수묵의 매재 ‘지·필·묵’에 ‘필’을 제외한 먹과 종이의 조합으로만 표현한다. 그의 작업은 설산의 압도적인 풍경을 먹과 종이로 풀어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그는 자작나무에 집중하였는데, 초기에는 나무 형태를 벗어나지 않은 구상 회화를 시도했으나, 점점 추상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단순히 재료적 측면에서의 먹과 종이의 실험에 그치지 않고 종이를 겹쳐 바르는 정신 수양의 과정에 집중한다. 이를 위해 얇은 한지를 여러 겹 붙인 뒤 먹을 스미게 하여 깊이 있는 검정색을 표현한다. 구모경은 더리미미술관, 대안공간 숲, 아라아트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수묵비엔날레,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등에서 열린 기획전에 참여했다. 

정창섭, 닥, 1985, 140.0 x 240.0cm, 캔버스에 닥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뮤지엄산)<br>
정창섭, 닥, 1985, 140.0 x 240.0cm, 캔버스에 닥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뮤지엄산)

운치를 보여주는 주요 작품의 작가 정창섭은 1970년대부터 한지를 이용한 작업에 집중해 온 인물이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닥> 연작은 전통 창에서 사용되는 창호지의 기능에서 나아간다. 전통 한옥 재료인 한지로 오래된 것에 대한 정취를 환기한다. 물에 불린 닥이 마르며 만드는 고유의 주름은 종이의 물질 그 자체에 주목하게 하며, 손을 이용해 작업하는 작가의 행위를 부각시킨다. 1953년 제 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낙조>로 특선을 받으며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해 1950년대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뜨거운 추상을 구사했다. 국제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 기관을 비롯하여 파리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도쿄 미술관 등 다수의 해외 전시에 출품했다.

전시관련 자세한 사항은 뮤지엄 산 홈페이지(http://www.museumsan.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033-730-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