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고통받지 않는 방법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고통받지 않는 방법
  • 윤영채
  • 승인 2021.04.16 0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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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사랑니를 뽑았다. 처음엔 윗잇몸 양옆이 간지러웠고, 이후엔 밤마다 두통과 미열에 시달렸다. 유명하다는 홍대의 한 병원을 한 달 전부터 예약해둔 덕에 3월 말에 오른쪽 위아래 사랑니를 뽑을 수 있었다. 과정은 간단했다. 볼에 마취 주사제를 맞고, 잠시 후 주사 두 방을 더 맞는다. 이후 마취가 들면 의사가 감각이 있는지를 물어본 뒤, 잇몸을 절개한다. 도구를 사용해서 이를 부시거나 그대로 뽑아낸 뒤 너덜너덜해진 살을 꿰매면 모든 것이 끝난다. 처방해준 약과 얼음 주머니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붓기도 금세 가라앉는다. 내게 사랑니를 뽑는 것이란 감흥 없는 체험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대부분 질색을 한다. 태연하게 말하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혹시 마조히스트가 아니냐고 묻는다. 10대의 영채라면 무서워했겠지만, 글쎄 지금은 별 느낌조차 없는 것을 뭐 어쩌란 말인가.

몇몇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실 나는 타고난 겁쟁이다. 주사 맞는 날이면 종일 두려움에 떨었고, 피 검사하는 날이면 학교를 결석하기 위해 꾀병을 부렸다. 주로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뾰족한 것이 피부를 찌르고 몸속에 액체를 주입하는 행위였다. 차라리 다리가 부러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찢어지고 꿰매는 일 따위는 그저 아플 뿐. 내게 고통을 주진 못한다. 성인이 되면서 고통이 주는 의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윤가은 감독의 손님이다.

여고생 자경은 얼마 전 아버지에게 상간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쓰러진 엄마, 풍비박산 난 집안 꼴을 보고 복수를 결심한 그녀는 어딘가로 향한다. ‘그 여자의 집이다. 그러나 자경이 찾던 그 불륜녀는 없고, 아이들만 있을 뿐이다. 애까지 있는 여자가 유부남과 바람이라니. 아이들의 엄마가 늦게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자경은 기다리기로 한다. 아빠가 좋아하는 여자는 어떤 속옷을 입는지,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 조금은 궁금하다. 그렇게 끌어 오르던 분노가 약간 잠잠해질 때 즈음,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외로운 아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신과 같은 위치에 상처가 난 아이의 이마에 밴드를 붙여주며 착잡함과 동시에 동질감을 느낀다. 이후 이들이 자신의 이복동생임을 알게 된 자경은 담담하게 아이들과 밥을 먹는다. 빈칸인 알림장 보호자 확인란에 짜증 섞인 낙서를 그려 넣는 자경. 그들의 엄마가 집에 거의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급하게 자리를 뜬다. 상처로 얼룩진 그녀는 천천히 그리고 조금은 빠르게 언덕을 올라 유유히 사라진다.

고통이란 무엇일까. 자경의 이마에 난 상처일까? 아이의 찢어진 피부일까? 영화 속 세상에서 풍긴 비릿한 고통의 향기는 바로 앎과 모름 그리고 그것을 관조하는 제3 . 진실에 다가갈수록 타들어 가는 자경과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좁고 가난한 집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 그 자체가 비극이자 고통이다. 이 영화가 준 메시지는 우리 모두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 그리고 나도 말입니다.’

이마에 난 상처는 연고를 바를 수도 있고 흉터를 치료할 수도 있지만, 마음의 고통은 기억을 잃지 않는 이상 벗어나기 쉽지 않다.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그것을 끄집어낼 줄 알아야 한다. 그 앞에 서서 나와 고통의 정체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해야 한다. 모두가 경험했듯 그 과정은 비참하고 힘들다. 삶의 매 순간 알게 모르게 계속 상처를 받아가며 그렇게 우리는 무뎌진 어른이 된다.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고,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성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책 그리고 작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배운 인생의 진리다.

영화 '손님'의 한 장면. 자경과 아이가 서로의 상처를 만져보고 있다. (출처:https://blog.naver.com/)
영화 '손님'의 한 장면. 자경과 아이가 서로의 상처를 만져보고 있다. (출처:https://blog.naver.com/)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마음을 닫아버렸던 적도 있다. 그때 사귀던 첫사랑이 내게 해준 말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너처럼 마음을 꽁꽁 싸매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솔직해지는 일이야.’ 나보다도 어린 그에게 이런 지적을 받다니 마냥 자존심이 상했지만, 돌이켜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상처받기 싫어서 경계를 긋고 자신을 감춘다는 건, 결국 지난 고통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뜻이지 않겠는가. 모 철학자가 말했듯이 아이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 어른은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며 진정한 어른은 아이 같은 성인이 되고 싶어 한다. 결국, 성장의 발판인 고통을 넘고 넘어서 우리는 다시 자신 마음에 집중하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고통받지 않는 방법이 궁금해서 이 글을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런 방법은 없다. 세상은 계속 우리에게 화살을 쏜다. 몸에 꽂힌 화살을 빼고 목적지까지 달리거나, 그대로 주저앉아 죽어야 한다. 끝까지 달린 자만이 이기는 싸움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억지로 숨기지 않아도 된다. 옆 사람도 내 앞에 먼저 달리고 있는 사람도, 이 세상을 뛰고 있는 우리는 모두 두렵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한 번 울고 일어나면 될 일. 화살이 뚫고 가는 고통에 아프다고 하소연 한 번 하고 다시 달리면 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랑니를 뽑기 직전에 조금 두려웠었다. 찌릿한 고통이 올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몸이 경직되고 호흡이 빨라졌다. 그런데도 발치가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며 허세를 부렸다. 아직 나는 아이와 어른 그 경계에 서 있는 모양이다. 4월 말, 봄과 여름의 중간이 되면 왼쪽 위아래 사랑니를 뽑으러 가야 한다. 그때의 나는 조금 더 두려움에 솔직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른쪽 내 사랑니, ‘고통받지 않는 법을 긴 여운으로 남기고 그 자리는 지금 야물게 아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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