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정동극장
[성기숙의 문화읽기]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정동극장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1.04.2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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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한마디로 정동극장은 특별한 공간이다. 근대문화유산 1번지, 서울 중구 정동길 43번지에 위치한 정동극장은 작지만 큰 의미를 지닌 극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1991년 연극계를 중심으로 전문극장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문화계 여론이 받아들여져 1995년 정동극장이 문을 열었다. 

정동극장 초대 관장 홍사종은 탁월한 운영능력으로 개관 1년 만에 독립법인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남겼다. 예술단체 특성화 전략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 시절 정동극장은 명동예술극장과 통합되어 연극전용극장으로 사용되었다. 

2010년 최정임 극장장 부임과 함께 정동극장은 독립운영체제로 새롭게 출발한다. 국립무용단 주역무용수 출신 최정임 극장장은 전통에 기반한 작품제작에 올인하여 한국예술의 역사성과 문화적 우수성을 담지한 레퍼토리 창출에 주력하여 호평받았다. 특히 관광수요에 부응한 전통상설프로그램의 안착은 그의 업적에 속한다.   

경주 출신인 최정임 극장장은 2011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최를 계기로 로컬브랜드 창출에도 앞장섰다. ‘미소-신국의 땅, 신라’를 비롯 ‘찬기파랑가’, ‘바실라’, ‘에밀레’ 등이 그 결과의 산물이다. 최 극장장과 더불어 안무가 김충한이 정동극장의 지역브랜드 가치 창출 성공신화의 주역으로 손꼽힌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정동극장은 상설 전통예술전문극장으로 자리매김되었다.   

불행하게도 그후 정동극장은 몇 년간 과도기를 거쳤다. 기존 전통의 명맥을 이어갔으나 정체성은 둔화되었다. 더욱이 단원들의 존재론적 상실감은 한층 커졌다는 전언이다. 예술단원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소송전이 이어지는 등 크고 작은 진통도 겪었다.        

최근 정동극장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 중심에 김희철 신임 대표가 있다. 그는 한국 예술행정의 거목 이종덕 사단 막내격에 속한다. 충무아트센터 본부장 시절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제작, 성공시키는 등 남다른 저력을 보여줬다.    

김희철 대표는 문화계가 깜짝 놀랄만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의 방점은 정동극장의 인프라 구축으로 귀결된다. 어엿한 중극장·소극장의 신축을 통해 공연 창작환경의 저변확대를 꽤한다는 방침이다. 예산확보에도 성공하여 사업추진은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정동극장’ 명칭 부여를 예고하는 등 문체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감지된다.

올해로 부임 2년째인 김 대표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시즌제를 도입하는 등 정상적 극장운영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2021년 정동극장 라인업은 다양한 장르구성이 돋보인다. 우선 ‘베르나르다 알바’, ‘포미니츠’, ‘판’ 등 세 편의 뮤지컬이 무대에 오른다. 국내 유일의 직업발레단인 유니버설발레단이 ‘챔버시리즈’에 초대된다.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인디 아티스트가 꾸미는 대중음악 콘서트도 기대치를 높인다. 경계를 허물고 전통예술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창작플랫폼 ‘바운스’도 준비된다. 

10여년 전 최정임 극장장 시절 시도되어 큰 성과를 거둔 경주사업소의 활동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김충한 안무의 ‘미소’ 시리즈는 신라 천년이 응집된 유서 깊은 고도 경주의 지역브랜드를 견인한 대표적 관광상품으로 줏가를 올린 바 있다. 최근엔 창작뮤지컬 ‘월명(月明)’이 관객과 만난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월명 스님이 지어 부른 「도솔가」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삼국유사』 기록을 토대로 경주의 지역성에 토대한 신라시대 이야기로 지역브랜드 가치 창출 화두는 지속된다.     

무엇보다 정동극장예술단의 공식창단 소식은 더없이 반갑다. 전문무용수 10명, 타악연주자 6명 등 총 16명으로 꾸려진 정동극장예술단은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도전과 실험에 나선다. 첫 정기공연으로 이규운 지도위원 안무의 ‘시나위, 夢’(2021.3.23.~28, 정동극장)이 무대에 올랐다. 정동극장이 상설공연 중심에서 예술성 강화 차원에서 마련된 야심작이었다.

작품 ‘시나위, 夢’의 주요 테마는 굿이다. 우리문화의 원형으로 간주되는 굿을 현대적 공연미학으로 갈무리하여 깊은 여운을 남겼다. 특히 치밀한 구성과 정교한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모던한 무대이미지에 스며든 몽환적 분위기의 영상 착시효과도 절묘했다. 밀착된 교감으로 긴장의 끈을 놓치 않는 무용수들의 다채로운 움직임은 섬뜩한 기운을 안겨줬다. 무엇보다 근성있는 안무자 이규운의 발견은 큰 소득이다.   

오는 10월 개최되는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戱)’ 무대는 더욱 기대를 모은다. 알다시피 정동극장은 서구식 극장무대의 효시로 일컫는 원각사와 그 전신인 협률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개관했다. ‘소춘대유희’는 정동극장의 뿌리의식에서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여겨진다.

협률사는 1902년 고종황제의 어극(御極)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궁정극장이다. 조선왕실은 대한제국과 고종황제의 위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칭경예식을 치룬 후 극장영업을 통해 재정을 확보한다는 목적에서 희대를 상업극장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니까 협률사는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상업극장인 셈이다. 

1902년 12월 4일자 『황성신문』에는 「협률사 광고」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린다. “본사에서 笑春臺遊戱를 금일 위시하오며 시간은 하오 육점으로 십일점까지요, 등표는 黃紙 상등표에 가금이 일원이요, 紅紙 중등표에 가금 칠십전이오, 청색지 하등표에 오십전...” 

우선 신문을 통한 최초의 공연광고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입장권을 각기 다른 색깔로 표기하고 있는데, 가령 황지는 상등표에 일원, 홍지는 중등표에 칠십전, 청지는 하등표에 오십전 등 등급화하고 있음이 이채롭다. 영업을 목적으로 관람객에게 입장권을 금액에 따라 차등 판매한 것이다. 협률사가 명실공히 상업극장 성격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한편 공연시간에 대한 명시도 눈겨여볼 점이다. 기사에는 ‘소춘대유희’가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공연됨을 알리고 있다. 근대적 시간 개념의 등장과 공연시간의 확정을 통해 공연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린 것이다. 이와 같이 ‘소춘대유희’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기초한 공연 유통구조의 근대적 변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동극장예술단은 전통과 현대의 공존 그리고 시대와 교감하는 새로운 전통예술 창출을 표방한다. 오는 10월 정동극장(예술단)이 ‘소춘대유희’를 통해 우리시대 공연문화에 어떤 화두를 던질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