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글로벌 공연기획자 유소방 대표 “세계 사로잡은 한국 예술가, 더 큰 무대로 이끌어 마침내 Vincero”
[Culture Interview]글로벌 공연기획자 유소방 대표 “세계 사로잡은 한국 예술가, 더 큰 무대로 이끌어 마침내 Vincero”
  • 이은영ㆍ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4.2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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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딸의 빈 국립 음대 입학, 인생의 터닝포인트
“안 되면 되게 하라”…빈필 앙상블 신년음악회 유치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한국 공식 파트너, 수상자 위한 무대 ‘위너스 콘서트’ 진행
지금 해외 무대에 가장 세우고 싶은 아티스트는 이날치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ㆍ진보연 기자]벨기에 왕비의 이름을 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더불어 클래식 콩쿠르 ‘빅3’로 꼽힌다. 1951년부터 시작된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해마다 열리는 국제적인 클래식 콩쿠르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결선이 지상파 채널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인 클래식 연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많은 벨기에 사람들도 한국인들이 클래식 연주에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이 대회 예선에서 25~30%가 한국인일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벨기에 RTBF 제작 다큐멘터리 ‘K클래식 세대'(K-Classics Generation)’에 출연한 소프라노 황수미

이에 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클래식 음악 전문 프로듀서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티에리 로로(Thierry Loreau)는 2012년 ‘한국 음악의 비밀(Le Mystere Musical Coreen)’에 이어 2020년 ‘K클래식 세대'(K-Classics Generation)’를 제작하며, 국제 클래식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좋은 성과를 거두는 이유와 비결을 소개했다. 

콩쿠르에는 상금, 악기, 음반 제작 등 젊은 음악가들이 열광할 많은 것들이 걸려있다. 하지만 콩쿠르는 하나의 관문일 뿐이다. 열매를 맺기 시작한 이후 무르익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해 유소방 대표는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한국 공식 파트너가 되길 자처했다. 유 대표는 “콩쿠르 수상자도 궁극적으로는 많은 무대에서 공연하길 바랄 것”이라고 말하며,  ‘위너스 콘서트’를 지난 2019년부터 선보이고 있다.

유소방 대표는 25년간의 유럽 현지 생활을 토대로, 한국-유럽 간 문화 교류 사업의 전례 없는 성과를 도출해냈다. 국내 국공립 단체 및 지자체 시립 단체들과 해외 유명 페스티벌 초청 공연 다수를 연계했으며, 수준 높은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ㆍ한국 연주자들과의 협연을 이끌었다.

▲유소방 SBU&Partners 대표 ⓒ김재성 작가
▲유소방 SBU&Partners 대표 ⓒ김재성 작가

지난 2016년에는 오스트리아 3대 페스티벌 중 하나인 ‘브루크너 페스티벌’에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선정되도록 기획했으며, 이를 통해 국내 우수한 음악인 500여 명을 유럽에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성사시켰다.

더불어 세계 3대 오케스트라 빈필과 베를린 필, 뉴욕필의 악장 및 수석 단원들과 함께 앙상블을 기획해, 미국 및 유럽 최정상 음악인들을 한국에 소개했다. 또한 오스트리아 현지 코디네이션 및 기획을 통해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문명전 ‘파라오와 미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피카소와 모던아트’ 전시를 성공적으로 주도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여성 최초로 오스트리아 대통령 금장 훈장과 대한민국 정부의 국민 포장을 수상한 바 있다.

K-클래식은 이제 영화ㆍ방송ㆍ대중음악과 함께 한류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의 재능 있는 연주자들이 전 세계를 이끌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고, 국내에 세계적인 예술 단체들을 소개해 한국의 음악적 위상을 높이는 유소방 대표를 만나 그가 꿈꾸는 세계 속 한국은 어떤 모습인지 들어봤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지도 1년이 넘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삼는 만큼 제약도 많았을 것 같은데.

전 세계를 활동 무대로 삼는 글로벌 기획자다 보니, 코로나19로 가장 직격탄을 맞은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기획했던 80~100개의 공연이 취소됐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기획자로서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는 콘텐츠인 ‘빈 필하모닉 멤버 앙상블’의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역 수석 단원 13인으로 구성된 ‘빈 필하모닉 멤버 앙상블’ 신년음악회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진행된 아이디어 기획공연이다. 빈필 신년음악회는 오직 빈에서만 연주될 수 있는 공연이기에, 전체 오케스트라가 아닌 빈필에서 허용하는 최대 인원 13명(악 연주자 5명, 목관 4명, 금관 3명, 타악기 1명)으로 구성된 앙상블의 음악회를 기획하게 됐다. 

1월에 7회 공연을 마치고 난 직후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었고, 이후의 공연은 모두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엄청난 쇼크였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기에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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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하모닉 멤버 앙상블

코로나 이후 변화된 점이 있다면?

공연이 무대에 오를 수 없게 되자 그 외에 부가적인 문제들도 발생했다. 출연진 100명의 항공료는 이미 지불된 상태인데, 입국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취소가 결정되다 보니 항공사에서 처음엔 환불이 불가하다고 하더라. 당시에는 WHO가 코로나19를 팬데믹(Pandemic)으로 규정짓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이런 상황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었다. 지불된 항공료가 1억 원이 넘는 적지 않은 비용이었기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에 대한 방안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항공 예약뿐만 아니라 숙박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던 중 팬데믹 선언이 공식화되면서 항공ㆍ숙박 취소 등에 대한 규정도 마련됐고, 100%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그간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굉장히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코로나19라는 변수를 만나, 정신없이 달리던 것을 잠시 멈추고 비로소 숨 고르기를 하게 된 것 같다. 코로나를 통해 인내를 배웠고, 생각의 방향도 많이 바뀌었다. 무방비했던 작년에 비해 많이 단단해졌고, 급변하는 외부 상황에 대처할 방안들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사실 나는 공연을 유튜브나 기타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것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많은 기획자들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공연은 역시 라이브로 들어야 하며, 거기서 오는 감동이 다르다고. 그런데 이번에 제주도에서 여러 아티스트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를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중계하고 난 뒤 편견이 많이 깨졌다. 물론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으로도 아날로그가 전하는 감동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만, 코로나로 관객들이 공연을 직접 접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든 요즘 같은 시기에는 온라인 중계만으로도 그들의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로나 자체는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지만, 그 안에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우리의 모습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취소된 공연 중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

오스트리아 ‘빈 방송교향악단 ORF’의 내한 공연이 가장 안타까웠다. 오스트리아 공영방송국 ORF 소속인 ‘빈 방송교향악단 ORF’의 25년 만의 내한공연이었는데, 참여 인원만 백여 명, 준비 기간은 2년 가까이 됐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더해졌으나 실연 한 달 전인 2월에 취소가 결정됐다. 

총 5개 도시 투어가 예정돼 있었는데, 도시마다 지자체 성격이 다르다 보니 취소 시기도 달랐다. 해외 아티스트가 오는 것에 두려운 도시들은 다소 이른 취소 결정을 내렸고, 2개 공연이 먼저 취소됐다. 하지만 고양시를 포함한 3개 도시는 마지막까지 진행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5개로 준비해서 예산을 다 맞춰 놨는데, 2개가 취소될 경우 예산이 엄청 오르기 때문에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오케스트라 측에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물었더니, 오스트리아 방송국(ORF) 측에서 그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하더라. “전 세계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 방송 오케스트라가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말해줬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결국 ‘빈 방송교향악단’의 내한 공연은 취소됐지만, 일하는 내내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 서로 쌓인 서로 간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지난해 11월 예정되었던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 내한 공연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4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문태국이 함께할 예정이었는데, 여러모로 의미 있는 공연을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다. 올해라도 진행을 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해보곤 있지만, 유럽의 상황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심각하다 보니 쉽지 않다. 

▲유소방 SBU&Partners 대표 ⓒ김재성 작가

해외와 국내 공연예술 시장 상황을 비교해 본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크게 실감하지 못할 것 같은데, 코로나 시대에 유럽을 오가며 생활하는 나의 입장에서 한국은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 유럽은 모든 게 록다운 됐다. 미팅도 안 되고, 식당과 카페도 전부 문을 닫았다. 공연장은 꿈도 못 꾼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공연을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공연장에서 추가 감염이 발생한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 그만큼 관객들도 방역수칙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럽은 마스크를 올바르게 착용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 사소한 규정을 무시한 대가가 얼마나 큰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 하는 것 같다. 문화 강대국이라 불리던 유럽의 예술은 지금 멈춤 상태다. 

▲유소방 SBU&Partners 대표 ⓒ김재성 작가

결혼 전 여행사 근무, 방송국 리포터 활동 등 다양한 직장생활을 통해 경력을 쌓았지만, 가슴 속에는 항상 음악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고 들었다. 이루지 못 해 아쉬웠던 꿈 가운데 공연기획자의 모습도 있었나?
학교를 졸업한 후, 해외에서 활동하고 싶은 꿈이 컸다. 하지만 그 때 당시 해외 출국은 쉽게 오픈되지 않던 시기였다. 60세 이상만 해외를 갈 수 있었다. 그래서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직장을 열심히 찾았다. 마침 롯데에서 해외기획업무 할 사람을 구하더라. 공연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하던 일은, 해외에 나가서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갈 루트를 미리 답사하고 장소를 섭외하는 등 기획을 하는 것이었다. 전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공연도 보고 문화와 비즈니스 노하우 등을 배웠는데, 이는 지금의 공연 기획에 있어 밑바탕이 됐다. 

그러다 아이를 가지면서 고향인 제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제주 MBC와 KBS에서 리포터로 몇 년간 활동했다. 해외 행사가 많은 제주 특성상, 리포터로 행사에 참여해서 관련 설명을 하는 등의 일을 했다. 

공연과의 관련성이 전혀 없는 일들로 보이지만, 지금의 나는 젊은 시절의 내가 다져놓은 탄탄한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4살 딸의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예비학교 최연소 입학은 가족 모두에게 커다란 터닝포인트가 됐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많은 나라 중 왜 오스트리아로 떠나게 됐나?

이것 역시 나의, 우리 가족의 운명이었던 것 같다. 여동생이 성악을 전공하는데 성부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동생이 유학을 가길 바랐다. 그리고 목소리가 완전 모차르트 목소리였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길 강력 추천했다. 여권이랑 비행기 티켓을 전부 준비해서 동생 손에 쥐여줬다. 동생은 그곳에서 잘 적응해서 성악 활동을 하고 현지 사람과 만나 가정을 이루며 살 게 됐다.

나 역시 동생처럼 성악을 공부했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집안에 음악을 둘이나 하는 게 부담이 되니 한 명은 학업의 길을 가자’라고 말씀하셨고, 나보다 노래를 좀 더 잘했던 동생이 성악을 전공하게 됐다. 어쩔 수 없음을 알았지만, 끝까지 가보지 못 한 길에 대한 미련은 계속 남아있었다. 그 마음이 딸에게 옮겨간 것 같다. 딸이 4살 되던 해, 동생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1/32 사이즈의 바이올린을 선물로 보냈다. 아이는 바이올린을 좋아했고, 긴 손가락 덕분에 제법 빨리 배웠다. 

아이가 5살 되던 해, 한 달간 동생이 있는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우리 가족 일생일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동생의 추천으로 빈 국립음악예술대학교 영재과 교수님 앞에서 딸이 연주할 기회가 생겼는데, 연주를 들은 교수님의 첫 마디가 “너는 내가 키울 테니, 오스트리아에 있어라”였다. 이어 두 달 뒤 있던 빈 국립 음대 입학시험이 있었다. 출국 직전 제주음악협회 콩쿠르에 참가했었기에 그 음악으로 입학시험을 치렀고, 덜컥 합격해버렸다. 

운명에 기로 앞에서 고민한 끝에 오스트리아에 남기로 했다. 사실 처음엔 2년만 있으려 했는데 벌써 25년이 됐다. 그곳은 우선 학비가 전액 무료다. 최고의 선생님에게 무료로 음악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주신 선물 아닌가. 오스트리아는 예술, 특히 음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혜택을 우리가 받게 된 것이다. 참 고마운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바이올리니스트인 딸 김윤희가 세계적인 음악가로 인정받기까지 먼 타국에서 뒷바라지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일단 가장 큰 행운은 딸이 오스트리아에 가게 됐다는 것이다.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선생님께 배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감사할 점이다. 

음악을 한다는 건 그 아이에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는 딸이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한 4살 때부터 16살 때까지 레슨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오스트리아에 계신 선생님이 ‘윤희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엄마인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고, 레슨마다 수업 내용을 악보에 전부 적었다. 독어를 모르겠으면 영어, 영어로도 모르는 건 한국어. 세 가지 언어를 섞어가며 빼곡히 필기해 어린 딸에게 레슨 내용을 다시 우리말로 설명해줬다.

그러다 윤희가 15살이 되는 해, 아이의 음악 세계에서 내가 빠져나가야 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연습실에 함께 들어가지 않았다. 엄마가 더 이상 잔소리를 하고, 음악적 영역을 침범하면 아이의 음악은 자신의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윤희를 키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기획자로서 나의 길을 만들어갈 채비를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세계무대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 우리나라의 클래식 수준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고 있는가.

전반적으로 한국 음악가들이 우수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참 아쉬운 점이, 전 세계 콩쿠르를 우리 음악 학도들이 다 휩쓰는 것에 반해 유럽 본토에서 연주 기회를 제안받는 경우는 정말 희박하다. 

콩쿠르에서 선보이는 음악과 유럽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음악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기획 일을 하면서도 많이 느낀다. 콩쿠르에 나가 성적을 잘 받으려면 완벽해야 한다. 그리고 완벽한 순간을 통해 이뤄지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안네 소피 폰 오터가 큰 콩쿠르에서 1등한 적이 없고, 사라 장도 마찬가지다. 

내가 공연 기획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연주자들과 단체들을 해외 그리고 메인 유럽 무대에 세우고 싶어서이다. 

▲2016 린츠 브루크너 페스티벌 기자회견, (왼쪽부터) 유소방 대표, Frey 총감독, 송영완 대사, Klaus Luger 린츠 시장, Manfred Grubauer 린츠 관광청장
▲2016 린츠 브루크너 페스티벌 기자회견, (왼쪽부터) 유소방 대표, Frey 총감독, 송영완 대사, Klaus Luger 린츠 시장, Manfred Grubauer 린츠 관광청장

유럽에 우리나라 연주자들을 소개했던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은 무엇인가?

지난 2016년, 오스트리아의 3대 페스티벌 중 하나인 ‘브루크너 페스티벌’에서 우리나라가 주빈국(主賓國)으로 초청됐다. 페스티벌 프로그램은 ‘코리아’를 주제로 진행됐으며, 프로그램 역시 한국 연주 단체 중심으로 짜였다. KBS교향악단이 개막식 공연을 맡았고,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협연자로 나섰다. 폐막 무대를 장식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작곡가 김택수의 비올라 협주곡 ‘코오(Ko-Oh)’를 연주했다. 국립합창단, 수원시립교향악단, 울산시립무용단  등 총 500명의 인원이 참가했던 대규모 행사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게 기적인지 꿈인지 생신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일이 착착 진행됐다. 유럽 메인 무대에서 우리나라 음악인들을 한꺼번에 선보일 수 있었던 기회는 처음이었기에 더욱 벅찼다. 

더욱 고무적인 성과라 자평하는 이유는, 응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점에 있다. 지금껏 우리나라 단체들이 해외 공연을 할 경우 대관비, 홍보비 등을 전부 직접 지불해야만 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음악, 전통예술을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2016 ‘브루크너 페스티벌’에서 우리나라 연주자들은 우리 음악을 하면서 제대로 된 개런티와 대접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자랑스럽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공연이다.

앞서 ‘우리나라의 우수한 연주자들과 단체들을 해외 그리고 메인 유럽 무대에 세우고 싶다’라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를 위해 어떤 시도와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늘 그래왔듯 뛰어난 연주단체나 연주자를 유럽 무대에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일할 때 조건을 내건다. 우리가 너희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한국에 알리는 데 일조한 것처럼, 너희도 정기 연주회와 같은 기회가 있을 때 한국 아티스트에게 꼭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연주자들의 실력은 굉장히 뛰어나다. 그런데 그걸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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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오스트리아 린츠 브루크너, 국립합창단 공연 모습

많은 사업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이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한국 공식 파트너십 체결이다.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국제콩쿠르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이유(의도)는 무엇인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파트너십을 용기 내어 제안할 수 있었던 건 딸 덕분이다. 어느 날 딸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콩쿠르에 나가면 항상 좋은 성적을 내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도록 엄마가 그들을 성장시킬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넌지시 말했다. 그러면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공식 파트너’를 제안해보라고 부추겼다. 사실 나는 자신이 없었는데, 딸이 “엄마가 못 하는 게 뭐 있어!”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바로 사무총장에게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회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메일을 쓸 땐,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방향과 퀸엘리자베스에 공유ㆍ공조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정리해 보냈다. 그랬더니 아이디어가 참 좋다면서 만남을 요청해서 벨기에 브뤼셀로 날아갔다. 회의 후에 내부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깜깜무소식이었다. 기다려라, 다시 와서 얘기하자. 이걸 반복하느라 브뤼셀을 총 4번 다녀왔다. 

일단 파트너십을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위너스 콘서트’였다. 대회에서 상을 받은 사람들도 궁극적으로는 많은 무대에서 공연하길 바랄 것이다. 나는 이 꿈을 돕고 싶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의 공연장들과 함께 협력해 공연을 진행하고자 했다. 

처음엔 5개 공연으로 시작해, 두 번째는 7개 공연을 선보였다. 좋은 관계가 유지되면서 올해 9월에도 10개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작년엔 콩쿠르 자체가 취소되어 콘서트도 불발됐지만, 올해는 다행히 정상 진행되어, 콘서트 역시 예정대로 진행될 것 같다. 

▲2019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한 바이올리니스트 ‘스텔라 첸’의 우승자 콘서트 공연 모습 ⓒ아시아문화원
▲2019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한 바이올리니스트 ‘스텔라 첸’의 우승자 콘서트 공연 모습 ⓒ아시아문화원

오스트리아 대통령에게 금장 훈장을 수여받았다. 어떤 공로를 세웠기에 그리 큰 상을 받게 됐나.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한오친선협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기업, 경제, 문화, 예술 등 전반에 걸친 가교역할을 맡았다. 예술 분야의 경우 공연과 더불어 전시 관련 일도 함께했다. 

이 가운데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집트 문명전인 ‘파라오와 미라전’을 유치할 수 있도록 오스트리아 미술사박물관을 연결해주었고, 오스트리아 알베르티나 미술관의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피카소와 모던아트 전시회를 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었다. 

이밖에 여타 다양한 활동들을 높이 사주신 박물관장, 공연장 관장 등의 추천을 받아, 금장훈장을 받게 됐다. 저 혼자 잘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서로 믿는 신뢰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더욱 의미 있는 상이다.

자녀를 뛰어난 예술가로 키우기 위해 애쓰는 학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의 말이 있는지.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독립적인 존재다. 뭐든 도와주려 하지 말고, 좋은 방향으로 독립성을 키워갈 수 있도록 돕는 게 훨씬 중요하다. 결국엔 교육된 음악이 아닌 스스로 느껴서 연주하는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음악학도들이 세계 콩쿠르에서 상위권 수상을 휩쓸지만, 해외 오케스트라 협연자의 수는 그에 비해 왜 적은지 생각해 볼 문제다.

▲유소방 SBU&Partners 대표 ⓒ김재성 작가

앞으로 기획해 보고 싶은 공연이나 사업이 있다면?

재작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 국제 페스티벌’에 광주시립창극단 무대를 선보인 적이 있다. 당시 창극 <흥보가>를 전통춤 ‘교방무’를 시작으로 ‘판굿’, 쇠ㆍ징ㆍ장구ㆍ북을 바탕으로 한 사물놀이, 사자탈춤, 버꾸춤 등으로 공연을 장식했고, 엄청난 기립박수를 받았다. 특히 판소리는 외국 사람들이 들었을 때, 가사를 정확히 알지 못해도 그것이 전하는 감정은 그대로 전해진다는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도 많은 우리 전통예술을 세계무대에 소개하고 싶다.

요즘 가장 욕심나는 아티스트는 ‘이날치’이다. 유럽 진출 무대는 꼭 내가 기획해보고 싶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