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학의 바이 더 웨이, 디지털!] 디지털시대, 변화의 문화현장 ❸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는 기술
[김정학의 바이 더 웨이, 디지털!] 디지털시대, 변화의 문화현장 ❸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는 기술
  •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
  • 승인 2021.04.20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

죽은 자의 흔적이 산 자의 기억과 어울려 철저한 계산 아래 그 기억을 이어가는 박물관이 있다. 미국 뉴욕 9/11 메모리얼 & 박물관. 나는 들어서면서부터 알 수 없는 울컥거림 때문에 관람 내내 힘이 들었던 기억이 여태 남아 있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s)》의 한 구절(‘시간이 지날지라도 그대들이 기억에서 지워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로 떠난 자들을 위로하는 그곳에 2011년 9월 11일 개장된 9/11 메모리얼 파크가 있다. 5000:1의 경쟁을 뚫고 당선작으로 선정된 작품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는 무척 인상적이다.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자리에 설치된 2개의 폭포 조형물에선 엄청난 양의 물이 쉼 없이 쏟아져 내린다. 테러로 인해 희생된 이들의 유가족과 미국인의 눈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폭포의 외곽을 희생자들과 순직한 이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청동판이 감싸고 있다. \

이스라엘 출신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는 2,977명의 망자의 이름을 차별 없이, 구분 없이 표시하면서, ‘이유 있는 침묵’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알파벳 순서가 아닌 사회적 관계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남은 자의 기억으로 떠난 자의 사회적 관계를 표현한다니. 얼핏 보기에 무작위로 배열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인연이 있던 희생자들끼리 가까운 곳에 모아져 있다. 가족끼리 혹은 같은 직장에 출근해 얼굴을 마주하던 사람들이 주위에 배치되어 있어 그 이름을 보는 유가족들의 기억을 되살리도록 했다. 얼른 알아듣는 시늉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테드(TED)를 통해, 제이크 바튼(전시기획자. ‘로컬 프로젝트’社 대표)의 짧은 강의를 보았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세상의 박물관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다.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역사를 만들다'라는 프로젝트 뒷담화는 9/11 메모리얼 박물관의 전시기법에 대해 큰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는 알고리즘을 만들고 엄청난 양의 자료를 입력해서 서로 다른 이름들을 모두 연결지었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것 같은, 익명이었던 이름들이 하나하나의 삶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너를 버리고 떠나지 않겠다"고 한 사장과 직원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정도의 알고리즘이면 ‘사회공헌’의 반열에 올려두고 싶다. 이제 그 곳에는 2,977명의 이름들이 ‘사회적 관계’로 배열되어 있다. 많은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바람으로 마이클 아라드는 이러한 연관성을 반영하기 위해 폭포 가장자리에 의미 있는 이름들을 이어 새겼다.

▲(왼편에서부터) ‘부재의 반추’,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 이름 틈새에 헌화, 전시기획자 제이크 바튼

알고리즘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그저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한 ‘정해진 행동지침’이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약간 실망한다. 문제가 인풋(입력된 정보)와 아웃풋(원하는 해답)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더욱 모호하다. 창조성과 혁신을 이끌어내는 것은 상상력인데 상상력은 표준화되는 순간 시들어버리지 않는가. 표준화는 디지털 기술이 요구하는 바로 그것인데, 사람냄새 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편리함의 극치와 경험의 극치가 만나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순서대로나 알파벳 순서가 아니라 의미 있는 인접성으로 나타낸다는 것은 별 차이 없이 이름을 한데 묶은 조합이지만, 실제로는 순서가 있다. 그들은 알고리즘을 만들고 엄청난 양의 자료를 입력해서 서로 다른 이름들을 모두 연결 짓게 했다. 실제 알고리즘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색깔이 다른 조각들이 실제로 4개의 다른 비행기이고 쌍동이 빌딩이며, 최초의 구조대원들로 다른 층 안에서도 볼 수 있게 설계되었다. 그들을 잇는 녹색 선들은 가족들이 얘기해 준 사람 사이의 관련성이다. 서로 큰 차별 없이 익명이었던 이름들이 하나하나의 삶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해리 라모스는 투자은행의 중개인이었는데 55층에서 빅터 왈드를 도우려고 멈췄다. 생존한 목격자의 말로는 라모스는 왈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을 버리고 떠나지 않겠다" 그래서 왈드의 미망인은 그들의 이름이 나란히 있도록 요청한 것이다. 

제이크 바튼은 역사적인 비극을 역사연구자나 큐레이터가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만 이야기하게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디지털이 만들어 준 진실 안에서 역사의 증인들이 박물관 그 자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럼으로써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는 장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 그 아픔으로 만들어진 공간, 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여백을 경험한다는 것은 역사 속의 인간이 겪었던 아픔과 기쁨까지 모두 공감하는 행위에 다름 아닐 것이다. 또한 그 공간은 역사의 교훈뿐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해 성찰하도록 만든다. 이곳을 소위 ‘월드 트라우마 센터(World Trauma Center)’로 생각하는 못난 사람을 향해 <월 스트리트 저널>이 ‘사람 사이의 관계로 가득 차 있는 박물관’이라고 말한 까닭을 이제사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