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축(祝), 제(祭) - 벗어나 바라다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축(祝), 제(祭) - 벗어나 바라다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1.04.2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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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매년 12월, 헬싱키의 밤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찬란한 모습으로 변한다. 도시 전체가 예술 작품이 되어 빛에 의한 감동과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빛축제 LUX Festival이 열리는데 낮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추위를 잊고 축제를 즐긴다. 

헬싱키의 랜드마크 대성당은 미디어 아트의 거대한 무대가 되고 광장에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빛의 웨건들이 즐비하다. 거리 곳곳에 전시된 조명 예술 장식품은 사람들의 움직임에 반응하기도 하고 놀이기구의 기능을 갖어 재미를 더한다. 

한겨울의 빛축제를 즐기는 인파는 축제의 도시 헬싱키를 걸으며 어두운 북유럽 겨울의 우울함을 잊고 활기차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2019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1~3위로 각각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가 꼽혔다. 또한, 이 북유럽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우울증 치료제를 가장 많이 복용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 이유로서 정신과 치료가 보편화되어 있는 사회라는 사실과 높은 물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계절별 일조시간과의 연관성을 꼽기도 한다.

북유럽의 여름은 한밤중에도 태양이 지지 않는다. 이 시기에 북유럽 출장을 다녀온 사람은 일과 후 심야 골프를 즐겼다는 이야기로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태양이 뜨지 않는 겨울이 찾아오면 아침 9시가 넘어서야 어슴푸레 해가 뜨고 오후 3~4시만 되면 어둠이 깔린다. 낮 동안에도 따뜻한 햇볕을 기대하기란 어렵고 하늘에 잔뜩 낀 구름이 햇빛을 가로막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유럽 사람들에게 계절적 질병 Seasonal Affected Disorder(SAD)이 많은 이유가 부족한 햇빛에 의해 세로토닌의 분비가 적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지속적인 피로감과 불쾌감과 함께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집중력마저 떨어져 심각한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5~1996년 16~64세의 핀란드 북부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인 10월과 11월, 1월과 2월을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로 꼽았으며, 응답자의 10~20%가 심각한 피곤함을 느끼며 2~5%는 의기소침함을 느낀다고 한다. 

축제(祝祭, festival)는 개인 또는 집단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건을 기념하는 의식으로 고대로부터 종교적 의식이나 제사의 성격을 가졌었다고 한다. 이후 농경 시대에도 축제는 공동체의 번영과 안정을 기원하기 위한 것으로 이러한 기복적이고 제의적인 모습이 마리아에게 도시의 안녕을 구했던 리옹의 Fete des Lumiere 와 같이 아직까지도 일부 축제들에서 나타나기고 있다.

이러한 축제의 어원은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남(feriae)’과 ‘종교적 의식에 들어감(festus)’이 합쳐진 것으로 공동체의 근심사가 축제의 기원으로 공동체가 집단으로 참여하여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 행위였던 것이다.

헬싱키의 빛축제 LUX와 동일한 목적으로 암스텔담, 코펜하겐, 겐트, 아인트 호반 등 북유럽의 도시들은 어둡고 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도록 10월경부터 2월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빛축제를 열고 있다.

벌써 일년 넘게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은 코로나는 몸 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미 작년 통계에서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한 사람이 약 35%에 이르고 극단적인 선택 시도자의 수가 여성과 20대에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너진 일상으로 불안감증가, 만남과 소통 대신 고립, 단절로 고독감 증가 여기에 감염에 대한 불안, 방역에 대한 긴장 등을 한시도 늦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여전히 세자리 숫자에 머물러 있는 확진자 수를 보면서도 이젠 ‘벗어나’ ‘새롭게 시작할’ 에너지를 어디에서라도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코로나로 미루어 진 서울빛축제가 올해 말에는 열리기를 기대한다. 서울 전역에 희망의 빛이 비추어지고 아름다운 영상들이 건물에 입혀져 도시가 한 덩어리의 예술 작품이 되어 감동을 주었으면 좋겠다. 코로나 이전 활기찼던 서울 거리의 모습이 보여지면 왠지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될 것 같다.

빛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코로나 시기의 고단함으로부터 벗어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의 출발의 염원을 기원하는 축(祝), 제(祭)가 열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