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모범생, 거침없이 대학로로 달려가다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모범생, 거침없이 대학로로 달려가다
  • 이은영ㆍ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4.2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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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규 극작가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나의 연극”
공연 온라인 스트리밍, ‘영상’ 아닌 ‘공연’ 집중, 촬영팀도 연극 이해 높아야
권력의 흥망성쇠 역사 담긴 <혈우>, 4부작 시리즈 계획
무대 예술, 약속이 만들어 낸 제약에 얽매이지 말아야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ㆍ진보연 기자]“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이 풍진 세상에 온 봄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지금 우리는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전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전 세계가 멈춤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열심히 방어해 나가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 곁에 숨어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길게 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들의 마음이 기나긴 방역에 서로를 경계하며 삭막하게 변하는 감정을 느낀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로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희망’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코로나 종식’이라는 염원을 담아 밝은 미래를 향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희망이라는 마음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쉬지 않고 울려 퍼지고 있다.

누군가는 음악이나 미술, 또 누군가는 문학 혹은 공연. 사람들은 각자만의 예술을 통하여 감정을 승화시키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그 시대의 사회현상에 맞춰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예술을 표현하기도 한다.

대학로(혜화) 문화게시판 현판에는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라는 말이 걸려있다. 이처럼 연극은 사람들의 삶, 더 나아가 한 시대를 표현하며 비판하는 동시에 등불이 되어준다. 

코로나 확산이 잠시간 소강 국면을 보였던 지난해 여름, <2020 연극의 해>을 기념해 초청된 강원도립극단은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공동주최로 연극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이하 <월화>)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선보였다. <월화>는 남성 중심의 연극계에 당당히 이름을 알렸던 한국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의 실화를 각색한 한국 근현대 연극이다. 이 작품을 쓴 작가 한민규는 이월화를 ‘변혁과 혼돈의 시기에 피어난 혁명의 꽃’이라 정의했다. 

▲한민규 극작가
▲한민규 극작가

한민규는 등단한 지 10년 차가 된 극작가이며 극단 혈우(前.극단 M.Factory) 대표다. 지난 2012년 창단한 극단 혈우는 현재까지 15편 가량의 연극작품을 발표했으며, 다른 민간극단과 국공립극단 등에서 대외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며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주요 수상 및 선정 경력으로는 2020년 제주신화 콘텐츠 원천소스 스토리 공모전 대상 수상(<용의 아이>), 2019년 강원도립극단 창작희곡공모 당선(<월화>), 2019년 제4회 청소년을 위한 공연예술축제 대상 수상(<기적의 소년>), 2017년 대전창작희곡공모 우수상 수상(<최후의 전사>), 2017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 희곡부문 신인작품상 수상(<마지막 수업>),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연극 부문 올해의 신작 최종 당선(<혈우>),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YAF 문학-희곡 부문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 차세대예술가 선정(<누가 그들을 만들었는가>), 2015년 제15회 2인극 페스티벌 작품상 수상(<진홍빛 소녀>), 2014년 제14회 2인극 페스티벌 희곡상 수상 (<잠수괴물>) 등이 있다. 주요 공연 작품으로는 <월화, 신극 달빛에 물들다>, <혈우>, <진홍빛 소녀>, <최후의 전사>, <잠수괴물> 외 다수와(이상 작가 대표작), <보들레르>, <기적의 소년>, <마지막 수업>, <누가 그들을 만들었는가> 외 다수가 있다.

특히 한 작가의 대표작인 <월화, 신극 달빛에 물들다>는 2019년 강원도립극단 창작희곡공모에 선정돼, 그해 강원도립극단 정기공연으로 제작된 바 있다. 이어 춘천ㆍ원주ㆍ경주ㆍ속초 투어 공연 그리고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개최된 서울연극협회 초청공연까지 선보였다. 아울러 한국 연극계에서 희곡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9월 『한국 연극』에도 수록됐다. 

‘우리의 것’을 토대로 역사를 통해 과거를 읽고, 동시대에 일어나는 사회현상을 통해 오늘날은 어떤 시대인지 관찰하는데 무게를 두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1월에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제12회 문화대상 연극부문 젊은예술가상을 수상했다.

<월화>의 시작을 알리는 ‘희망가’의 가사처럼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Pandemic)으로 혼란한 ‘이 풍진 세상’에 연극을 통해 관객에,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한민규 극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연극)을 수상한 한민규 극작가

제12회 문화대상 젊은 예술가상 수상을 축하한다. 상을 받은 소회와 수상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수상하고 난 다음에 주변에서도 축하를 많이 해주셨다. 축하와 관심을 받고 나니, 무게가 있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 하나하나에 조금 더 책임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작업에 임하는 마음도 사뭇 달라졌다. 더욱 신중하려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상을 받는 자리에 꽤 여러 번 참석했었는데, 이렇게 떨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서울문화투데이 시상식이 주는 느낌은 남달랐다.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매진하신 선생님들이 들려주시는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음속에 묵직하게 새겨졌다. 

상을 받은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에 참가한 <최후의 전사> 공연을 준비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객석 띄어앉기를 하는 등 어려움도 많았지만, 무사히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공연을 마친 후에는 바로 개강을 했고, 현재 동아방송예술대학교에서 계속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월 수상 당시 “연극은 시대를 이끄는 예술”이라 말한 바 있다. 모두가 힘든 코로나 시대에, 현재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코로나 시대가 도래한 후, 모든 기회의 장들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진다. 코로나 확산이 특히 심각했던 작년 7, 8월에 <보들레르>라는 작품을 산울림고전극장에서 선보였는데, 당시 거리두기 단계가 갑자기 2.5단계로 올라갔다.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최대 관객 수가 30명 남짓이었다. 매일이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는 취소 여부를 두고 계속 마음 졸였던 것 같다. 

이전에는 없는 또 다른 종류의 간절함이 생겼다.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을 모두가 가지고 있다. 관객들과 최대한 진하게 소통하려 노력했다. 다행히 공연 자체가 캔슬되진 않았으나, 공연의 규모와 날짜가 축소되고 예상 관객의 10분의 1 정도밖에 수용할 수 없는 경우들이 생겼다.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 굉장히 값졌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어 행복했다. 

온라인 유료 스트리밍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무대를 선보일 계획은 없는지?

온라인을 통한 무대가 넓어지고 있는 현 시류에 공감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다. 공연을 영상화하려면, 공연처럼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단 공연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순간 그 비교군은 공연예술이 아닌 영상예술이 된다. 

공연의 영상화의 방점이 ‘영상’이 아닌 ‘공연’에 찍히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공연의 힘은 라이브인데, 무대와 객석 사이에 카메라가 투입됐을 때 과연 공연이 갖고 있는 진가를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까. 만일 공연 영상을 기록한다면, 촬영팀조차도 공연에 대한 이해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작가로 등단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처음 연극(극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기본적으로 글 쓰는 걸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고등학교 문예부 출신인데, 장르 구분 없이 다양한 글을 썼던 것 같다. 문예부에서는 시와 소설을 배웠고, 취미를 살려 만화 대본과 판타지 소설도 썼다. 그러다 교내 백일장에서 희곡을 쓰게 됐는데 그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 대본을 가지고 교내 문학의 밤에서 공연하게 됐다.  

처음엔 연극 대본의 기본적인 형식도 몰랐다. 일단 무대에 올려야 했기에 부원들을 모아 배우도 해보고, 연출도 해보고, 기본적인 조명도 만져보면서 ‘아, 이게 연극이구나!’라고 처음 느꼈다. 그저 종이 위에 얹어져 있던 글을 시각화시킬 때, 대본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고 생각했다. 직접 경험해본 후에야 연극의 매력을 알았고, 그때부터 과감하게 뛰어들었던 것 같다. 

▲한민규 극작가
▲한민규 극작가

주변의 만류는 없었나?

정말 많았다. 처음 연극 작업을 했던 게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교육자이셨던 부모님은 당연히 ‘네가 하고 싶은 건 대학에 가고 난 다음에’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대학에 갈 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당장 대학로에 뛰어들어 공연을 하고 싶고, 피부로 느끼고 싶었기에 ‘지금이 아니면 그 꿈은 없다’라고 계속 얘기했다.

학교에 있는 내가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결국엔 내 나름의 결단을 내렸다. 지각ㆍ결석이 한 번도 없던 모범생이었는데, 무단결석을 감행하고 대학로로 향했다. 이미 연극이라는 꿈이 정해졌기에 입시를 위한 교육보다는 당장 필요한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로에서도 나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혔고,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청소년 극단을 만들게 됐다. 29개 학교의 학생 43명이 참여했고 극단 이름은 ‘고딩만의 공연 모임’이었다. 

아리랑아트홀, 지금의 미아리예술극장에서 ‘한여름 밤의 꿈’을 3일간 공연했다. 하지만 그 후 극단을 계속 지속하지는 못했다. 반년을 못 버텼다. 가장 큰 문제는 입시와 부모님들의 반대였다. 학교에서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엄청난 무언갈 이뤄낸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 생각해봐도 후회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저의 활동에 대해 좋게 평가해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그런 이야길 들으면서 ‘그때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응원해주셨던 선생님들과는 아직도 만난다. 얼마 전 공연도 보러오셨다. 

많이 반대했던 부모님께서도 지금은 저의 길을 응원해주신다. 어느 순간부터 어설프게 하는 애는 아니라는 확신이 드신 것 같다. 이제는 ‘네가 연극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라는 말씀을 하실 정도다.(웃음)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방향성이 가장 잘 담긴 작품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연극은 이래야만 한다’라는 편견들이 싫었고, 깨고 싶었다. 연극은 무대예술이기 때문에 시ㆍ공간적 제한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제한이 만들어낸 약속들이 존재한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약속들이라 생각하지만, 어떤 면에선 그 약속들이 연극의 한계를 규정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의 경우 시각적으로 납득을 시키면 관객이 충분히 따라가는데, 연극은 시각적으로 모든 것을 구현해낼 수 없으니 관객의 상상력을 납득시켜야 한다. 빈 공간을 놓고도 수많은 공간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연극이라 생각한다. 

2016년 창작산실 연극부문에 선정된 혈우(血雨)라는 작품이 있다. 권력을 향한 무인들의 경쟁이 치열했던 고려 말 격변기를 배경으로 생사가 갈리는 처절한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힘의 정치’를 강렬한 액션으로 표현하기 위해 무협활극 장르를 구축했다. 대극장 무대에서 20여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검투 장면이나 치열한 전투 속 조명을 받은 일부 배우만 슬로우 모션으로 대결하는 장면 등을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연출과 극작을 병행하는 입장에서, 매번 다짐하는 게 있다. 글을 쓸 땐 ‘내가 연출하기 위한 대본을 쓰지 말자’, 그리고 연출을 할 땐 ‘내가 쓴 작품이라 할지라도, 내가 작가라고 생각하고 연출하지 말자’는 것이다. 각자의 영역을 구분해놓지 않으면,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연을 선보이는 무대에는 많은 제약이 있지만 그걸 잘 활용한다면 더욱 스펙터클한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더 큰 장경을 상상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시대를 넘나들며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규정한 한계에 갇히기보다 열어두고 사고하며 작업하려고 노력한다.

▲연극 ‘혈우’ 공연 장면 ⓒ김명집
▲연극 ‘혈우’ 공연 장면 ⓒ김명집

2012년부터 극단 혈우(前,M.Factory)를 창단해 단원들과 함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혈우’는 2016 공연예술창작산실 연극 올해의 신작인 <혈우(血雨)>의 이름을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혈우(血雨)>는 20대 중반에 시작해 30대에 완성한 작품이다. 오래 들여다봤고, 그만큼 애정이 깊다. 작년에 제주신화 콘텐츠 원천소스 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용의 아이’, 올해 공연된 <최후의 전사>는 <혈우>의 연장선에 놓인 작품들이다. <혈우> 시리즈는 총 4편으로 구상하고 있는데, 남은 하나의 작품 역시 창작 단계는 끝났고 제작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혈우> 안에는 무신 정권의 흥망성쇠가 모두 담겨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다. 처음엔 소재에 끌렸으나 그 안에 담긴 희생의 역사, 약자들의 아픔들과 직면하는 순간 그것이 더 이상 소재도 보이지 않고 삶으로 다가왔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작품으로 이어가고자 극단 이름도 혈우로 바꾸게 됐다. 다만, 쓰이는 한자는 다르다. 극단 이름은 연극의 피를 맺은 가족이란 의미로 벗 우(友)를 사용한다.(웃음)

모든 작품이 소중하겠지만 그 중 <월화, 신극 달빛에 물들다>는 많은 호평과 기록을 남긴 만큼 애정이 남다를 것 같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의 예술과 삶은 어떻게 작품으로 탄생하게 됐나?

2015년도에 박사 과정으로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그간 실무 위주의 작업을 하면서 연극과 영화의 범주 안에서 계속 머물렀다. 그러는 동안 여러 평론가 선생님들과 만나게 되면서 더욱 다양한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를 하면서 제가 갖고 있는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었고,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이 문학이었다. 

지도교수님이셨던 이상우 교수님은 고려대학교에서 거의 유일하게 희곡을 전공하신 분이다. 수업 가운데, 근대 인물들을 훑는 시간이 있었고 교수님께서 여성 배우들을 시대별로 이야기해 주셨다. 그때 이월화라는 인물을 처음 접하게 됐다. 

나름 오랜 시간 연극에 매진해왔다고 자부했는데, 연극사에 기록될 인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자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셰익스피어, 체홉 등 외국 문학에만 집중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 수업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왜 이런 이야기들이 아직 작품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이 휘몰아치는 순간 ‘아 이건 내가 써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결심한 직후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당선되기까지 정확히 17번 고쳤다. 

연출을 직접 하지 않았는데, 극본을 쓸 때 의도한 바가 잘 표현된 것 같은지?

집필 당시에는 쓰면서도 ‘이 작품을 무대로 만나게 되는 날이 과연 올까?’라는 의구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걱정이 무색할 만큼 감각적인 연출로 완성도를 높여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 당황스러울 때도 있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초반 과정에서 양정웅ㆍ이치민 연출님과 계속 소통하며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작가가 담았던 월화의 이야기와 극으로 만들어져 시각화되었을 때의 결과물이 많이 닮아있다. 그 점이 가장 좋았다.

▲강원도립극단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 공연 장면
▲강원도립극단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 공연 장면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출 중 하나가 바로 이정표 음악가의 가야금 연주다. 이 장면은 대본에 있었나?

디테일한 부분은 정해두지 않았고, 지문으로 ‘음악이 흘러나온다’라고 표시한 정도였다. 그 연출은 양정웅 연출님이 처음 제안을 해주셨다. 음악이 극에 녹아드는 것을 보고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음악 선곡과 더불어 이정표 음악가가 무대에서 실연함으로써, 관객들이 그 시대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강원도립극단에서 왜 <월화>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나?

선정 당시, ‘강원도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라는 인물이 이에 부합했고, 나아가 오랜 과거 예술계의 부조리함을 화두로 던지며 진취적인 시각을 제안하는 작품의 관점이 강원도립극단의 연극적 정서와 부합했던 것 같다. 

더불어 기쁜 소식을 하나 전하자면, 이번에 <월화>가 강원문화재단에서 전문예술지원 문학 사업에 선정돼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와우~ 축하한다.(웃음) 이외에도 연극으로 새롭게 구체화하고 싶은 역사가 있는지?

요새는 근대의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춰 공부하고 발굴하는 단계에 있다. 각 분야의 예술가들을 한 명씩 조명해보고 싶다. 

작가와 연출,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질문과 맞먹는 어려움이다.(웃음) 그래도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작가이다. 글을 시각화시키는 것도 위대한 창작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씨앗을 뿌려 생명을 최초로 탄생시키는 것은 작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잘 쓰인 글이 여러 연출을 만나 다양한 작품들로 재탄생하듯, 작품의 토대가 되는 그 과정에 조금 더 중요도를 두고 싶다.

무대 위에서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줄 배우를 선택하는 일 역시 중요할 것 같은데, 캐스팅을 할 때 고려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미지와 경험이다. 작품을 구상했을 때 떠올린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 그와 더불어 숙련된 경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그 배우의 연기를 이전에 본 적이 있지 여부도 판단에 영향을 준다. 이야기를 전해 듣거나 사진만으로는 배우의 역량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깨끗한 배우를 선호한다. 개인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말 이 ‘많이 놀아본 사람, 적당히 못된 사람이 연기를 잘한다’ 이다. 비뚤게 살지 않아도 얼마든지 연기를 잘 할 수 있다. 오히려 가장 깨끗한 상태에서 가장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민규 극작가가 작업한 작품의 포스터 모음
▲한민규 극작가가 작업한 작품의 포스터 모음

한참 지나버린 과거를 현재의 언어로 전하는 것과 더불어, 현재의 일을 미래의 세대에 전하는 일 역시 중요할 것이다. 지금 시대의 이야기 중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있는지?

지향하는 바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요즘은 사람들의 삶이 예술로써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선보이는 작품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작품을 통해 관객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풍요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상상력을 채워주면서 눈과 귀도 즐겁지만, 마음도 즐거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