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9월이 지나면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9월이 지나면
  • 윤영채
  • 승인 2021.04.23 0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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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왜 저걸로 고민하지. 고민할 시간이 있으면 바로 하겠다.’ 나는 위로하는 법을 잘 모른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상대의 눈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죄책감이 떠밀려 온다. 나름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상담자의 감정과 상황을 정리해 설명해주기도 한다. 몇몇 친구는 내게 명쾌한 답을 얻어가기도 하고, 또 몇몇은 상처를 받고 그 자리를 떠난다.

상처라니? 의문이다.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결국 선택을 해야 하지 않는가. 고민을 붙들고 이리저리 떠도는 것은 내게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아가는 것이 내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공감과 위로보단 선택에 집중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겨온 지난날. 내게 머리를 때려준 작품이 있었다. ‘9월이 지나면을 소개하려 한다.

건축과 선후배인 승조와 지영. 지영은 또 다른 선배인 선영의 설계 도면을 몰래 훔친다. 승조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늘 혼자 있는 지영을 챙겨주게 된다. 집으로 데려와 함께 작업하던 도중, 좋아하는 배우 나카야마 미오의 포스터를 흉내 내는 지영을 본 승조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후 둘을 더 가까워지고 승조는 가장 좋아하는 ‘9월이 지나면을 지영에게 불러준다. 지영 역시 묘한 감정을 느낀다. 밤을 새우며 작업하던 도중 지영은 그만 잠이 들어버린다. 이때 가방에 넣어둔 선영의 설계 도면을 발견하는 승조. 승조는 지영에게 실망하고, 지영은 치부를 들킨 듯한 부끄러움에 괜히 승조에게 화난 표정이다.

지영은 멀어진 승조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선영의 작업실에 설계 도면을 가져다 두는데, 결국 꼬리가 밟힌다. 동기들이 자신을 쫓는 일생일대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지영을 끌어당겨 숨겨준다. 바로 승조다. 이마저도 들킬 위험에 처하자, 승조는 지영의 모자를 대신 쓰고 범인인 척 사람들을 유인한다. 승조를 추격하는 동기들. 이 안에 지영도 섞여 달리게 된다. 그녀의 표정이 너무도 슬퍼 보인다. 이후 승조는 범인으로 몰려 왕따를 당하고, 지영 역시 교내 분위기 때문에 그와 다시 가까워지지 못한다. 지영은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승조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에게 자백했다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는 한 마디를 내뱉는다. ‘9월이 되면, 저 좀 깨워주세요. 선배.’

 

영화 '9월이 지나면' 속 한 장면 (출처:https://blog.naver.com/)
영화 '9월이 지나면' 속 한 장면 (출처:https://blog.naver.com/)

9월이라. 내가 태어난 달이다. 이미 딸만 둘이었고, 주변에선 아들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또 딸인데 낳으실 건가요?’라고 묻는 무례한 의사의 말에 분노한 엄마는 나를 더 지극 정성으로 품었다고 했다. 지독한 독감과 입덧에 시달려 한 달가량을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내가 세상에 나왔다. 이후 왜 고추를 달고 나오지 않았냐는 등의 우스갯소리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그놈의 고추가 뭐라고. 가끔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10대의 생일날엔 절친한 친구와 싸웠고, 2년간의 짝사랑은 실패로 돌아갔다. 열아홉 스물의 9월엔 미역국도 먹지 못한 채 일을 하러 나갔다. 생일의 밤은 길었고 슬펐으며 외로웠다.

나는 존재함과 동시에 위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몇 번의 부정과 위기 속에 태어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 위로가 절실했다. 그러나 모두가 바쁘게 각자의 의지로 나아갔다. 그걸 보면서 나의 나약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강해져야 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부끄럽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했다. 그놈의 척이 뭐라고. 그 짓을 매일 하면서 부지런히 강한 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사이, 위로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등을 내어주는 일, 대신 화살을 맞아주는 일, 그러면서도 상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일. 그 자체가 숭고한 위로였다. 승조의 사랑이 독한 마음으로 무장한 지연의 벽을 허물었을 것이다. 그렇게 9월 늦여름의 햇볕을 마음에 서서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처음 사랑을 알려준 그 사람도 그랬다. 우울한 겨울, 무기력에 빠진 나의 넋두리를 들어줬다. 그리고 딱 한 마디를 남겼다. ‘같이 도망쳐줄까?’ 세상 그 어떤 말보다도 가장 따뜻했다. 모질고 어긋난 마음도 녹일 것 같았던 말이었다. 이 추운 우주에서 그와 안고 있으면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위로는 사랑이었다. 나조차도 사랑으로 위로를 받아놓고 그 마음을 남에게는 선사하지 못했다.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위로가 필요한 불완전한 존재다. 결코, 그 누구도 완전해서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족하기에 상대의 부족함을 알아보고 손을 건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만의 방식이랍시고 뱉어내기 바빴던 조언들은 허공에 흩뿌려진다. 심장에 끝까지 남아 내일을 살게 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표현하는 것. 그뿐인 것 같다.

올해 9월에는 날이 맑았으면 좋겠다. 소고기미역국과 계란말이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파란 하늘 아래서 맛있는 케이크를 나눠 먹고 싶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저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런 9월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늦여름이 지나 선선한 가을이 올 무렵이면, 서글퍼지는 마음을 내면의 따스함으로 물들일 수 있을 것이다. 9월이 지나면 성숙한 위로를 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게,

‘9월이 지나면 나를 꼭 깨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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