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었던’展, 노동의 기록-현대 미술의 조우
‘있지만 없었던’展, 노동의 기록-현대 미술의 조우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4.2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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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협력
SeMA벙커, 오는 30일부터 6월 6일까지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기자] 거대한 시대 흐름 속에서 개인의 역사는 아주 쉽게 묻혀버리곤 한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사실은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시대의 노동자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다층적으로 생각해보기 어렵다. 이번에 노동자들 개개인의 서사와 기억, 일상이 가지고 있는 다층적 의미망을 펼쳐 ‘있지만 없었던’ 수많은 개인의 이름을 호명해 다시 이 자리에 ‘있게’ 하는 공명의 장 마련됐다.

서울시립미술관(관장 백지숙)과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소장 임지현, 이하 CGSI)는 오는 30일 (금)부터 6월 6일 (금)까지 여의도에 자리한 서울시립미술관 SeMA벙커에서《있지만 없었던》을 개최한다.

▲ 최원준, 얼굴의 역사, 20192021, 디지털 C-프린트, 라이트 박스, 아카이브 설치, 가변 설치, 김문환, 전선식, 조춘만, 최성열 자료제공 (사진=SeMA)
▲ 최원준, 얼굴의 역사, 20192021, 디지털 C-프린트, 라이트 박스, 아카이브 설치, 가변 설치, 김문환, 전선식, 조춘만, 최성열 자료제공 (사진=SeMA)

이번 전시는 두 기관 간 연구-큐레이토리얼 교류 협력으로 추진됐다. CGSI 아카이브 사료‧연구 자료와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동시대 미술 작품을 의미와 담론 차원에서 연결, 확장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있지만 없었던》은 강제징용노동자들의 기록과 자료에서 출발해 당시 노동자 개인의 일상, 향수, 기억들을 조망한다. 이어 과거의 자료에서 앞으로 나아가 지금까지 계속 존재하고 있는 노동의 기록을 선보이고,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을 드러낸다.

강제징용노동자들의 기록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제공됐다. 당시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과 일상 모습 담고 있는 ‘윤병렬 컬렉션’ 등, 우리가 미처 찾아보지 못했던 그 시대 개개인의 서사를 볼 수 있게 한다.

▲ 조덕현, 언더그라운드 엘레지, 2021, 혼합매체, 가변 설치  (사진=SeMA)
▲ 조덕현, 언더그라운드 엘레지, 2021, 혼합매체, 가변 설치 (사진=SeMA)

전시는 ‘강제징용 노동’을 단순히 일본 제국과 식민 조선이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당시 노동자들이 한 개인으로 존재하며 일궈온 일상의 시간들과 노동의 시간을 엮어,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전유해 온 사실을 드러낸다.

나아가 강제노동을 “의지에 반한 노동”으로 해석해, 해방 이후 국가와 자본주의 관계망 내에서 변모되어온 노동 개념과 노동자라는 개별 주체의 의미를 확장한다. 이를 기반으로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또한, 항상 ‘노동’에 있어선 밀려났던 여성과 가족들의 목소리도 이번 전시에 담겨 그 의미가 크다. 정혜경 연구자의 다년간 연구 결과물인 구술 녹취자료, 편지 자료 등이 노동이 머물렀던 아주 사소한 순간까지 이끌어낸다.

200여 점의 아카이브 사료로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장을 펼친 전시는 20여 점의 동시대 미술작품과 연동돼, 다양한 시대를 오가며 노동자의 주체성과 노동 행위 의미를 확장시킨다.

▲ 정재훈, 내가 사는 피부, 20142021, 유토, 석고, 나무막대, 혼합매체, 가변설치  (사진=SeMA)
▲ 정재훈, 내가 사는 피부, 20142021, 유토, 석고, 나무막대, 혼합매체, 가변설치 (사진=SeMA)

주요 작품으로는, 일제 강점기 징용됐던 한 가수의 트라우마적 삶과 중국 항일 영화인 <대로>의 대조적 서사와 선율을 작가의 사적 기억을 통해 교차 직조해 노동자의 초상을 그린 조덕현의 <언더그라운드 엘레지>가 있다.

현대적 노동을 다룬 작품도 만나 볼 수 있다. 오민수의 <제자리 찾기>, <폭파>는 물류 노동자들을 둘러싼 시스템의 비인간성과 폭력성을 가시화하고 차재민의 <미궁과 크로마키>는 ‘손노동’에 붙여지는 양면적 가치를 부각한다. 이를 통해 동시대적 노동 구조와 의미의 외연을 확장한다.

▲ 오민수, 제자리 구르기, 20192021, 컨베이어롤러, 모터, 작업용 사다리, 혼합매체, 150×150×50cm  (사진=SeMA)
▲ 오민수, 제자리 구르기, 20192021, 컨베이어롤러, 모터, 작업용 사다리, 혼합매체, 150×150×50cm (사진=SeMA)

임지현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장은 “일제하 강제노동에 대한 사회적 기억과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노동에 대한 현대미술작품들의 탈식민주의적 교차는 한국 사회에서 공공적 인문학의 외연을 넓히고 역사의 미학화와 미술의 역사화를 시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전시의 의의를 밝혔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있지만 없었던》은 미술관과 대학연구기관 간의 간학제적 교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번 전시를 기회로 학계와 미술계가 기억 연구와 미술 문화 경험의 저변을 확대하고 시민들과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전시 관람 일정 및 자세한 정보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sema.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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