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옆에서’는 국정교과서에서도 삭제된 시
‘국화 옆에서’는 국정교과서에서도 삭제된 시
  • 김우종 (전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09.12.2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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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기만하는 서정주와 여전히 그에 기대사는 문인들의 詩覺障碍

(지난호에 이어)

서정주의 고향에서는 <국화 옆에서>를 기념하기 위해서 해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국화꽃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그 동네는 담벼락과 지붕 꼭대기까지 국화 그림이다. 어느 신문은 서정주가 죽은 지 몇 년 만에 다시 부활했다고 대서특필했다. 그의 <국화 옆에서>는 감미로운 가곡이 되어서 가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ㄷ. 무모한 시각장애인 詩覺障碍人들

시각視覺 장애인도 잘 하는 것이 많지만 큰 거리에 나가서 교통정리만은 해서는 안 된다. 그처럼 시적 감각이 무딘 시각詩覺 장애인은 시를 함부로 논하고 교과서를 만들어 국민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 더구나 침략 전쟁 찬양과 반민족적 친일 행위가 서정주 정도에 이르는 경우에 그 무딘 상상력이 저지르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시간에도 TV에서는 현대시 100주년 기념행사가 중계되며 많은 시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의 시가 낭송되고 있다.

서정주의 음모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그 후 여러 문인과 교수들의 문학 안내가 결국은 진실을 모르고 따르는 순진한 국민들로 하여금 일본 ‘천황폐하’와 침략전쟁 찬미가를 자신도 모르고 합창해 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도 함께 부르고 있으니 이것은 너무도 부끄러운 민족의 스캔들이 아닌가? 독도 수호와 독도 침략자 찬가를 함께 부르면 어느 쪽이 대한민국 국민의 진심이라 말할 수 있을까?

ㄹ. 민족 우롱 60년

서정주는 2000년 12월에 죽었지만 그의 국화 이야기는 지나간 역사의 옛 이야기가 아니다. 왜냐면 그가 부르게 한 침략전쟁 선동과 일본 왕 찬미가는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국화 옆에서>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그가 친일 반민족행위자임을 알면서 여전히 그를 국민적 시인 급으로 대접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 민족적 과오다.

이것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민족과 인류에 대한 학살 행위로서의 침략 전쟁과 그 최고 통수권자를 찬양하는 문학이 곳곳에서 거룩한 표정으로 낭송되고 암송 대회가 벌어지며 국민을 열광시키는 한 그것은 언제라도 다시 우리 민족과 인류의 평화에 대한 도전이 된다.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는 서 너 편 시를 고르면 거기서는 늘 윤동주의 <서시>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상반된 양심과 비양심의 극치를 보여 주는 현상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상반된 두 시인이 동시대에 등장하고 또 그들의 대표작이 그렇게 다 같이 사랑받아 온 예는 없다.

가장 순결한 양심과 더러운 비 양심은 김광균 <설야>의 흰 눈과 김기림이 <시론>에서 사용한 말을 빌리자면 '똥통에서 건져낸 낙태한 XX'같은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아니 그 이상으로 이것은 천사와 악마의 차이를 의미한다. 그런데도 이 두 가지를 우리가 다 같이 사랑해 오고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낯 뜨거운 스캔들이다. 천사와 악마를 다 같이 우리들 가슴속에 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이유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가 일본으로 가기 직전에 원고지에 써 놓고 간 <서시>는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시다.

 이와 반대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는 그 생명을 말살해 버린 죽음의 묘지 위에 그것을 거름으로 해서 '국화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얼마나 희한한 국화이기에 그것은 그렇게 피를 먹고 피어나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그보다 두 살 아래였던 윤동주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에게 이를 위한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그 길을 선택하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렇게 말하고 결국은 현해탄 너머 후쿠오카의 차가운 감방에서 옥사했다. 1945년 2월 16일 새벽이다.
그런데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그와는 정 반대의 길에 서 있었다. 윤동주가 그렇게 자기에게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십자가>에서)라고 말하며 인류 생명의 구원을 희구한 그 소중한 생명들을 수없이 학살한 행위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며 그 학살의 총사령관을 찬미한 것이다. 그런데 서정주의 시가 윤동주와 나란히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의 사랑을 받으며 거의 국민시의 수준에 있으니 이렇게 황당하고 부끄러운 일이 어디 또 있을 수 있을까?

것은 민족적 스캔들이며 그 책임은 서정주만이 아니라 결국은 그를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격찬해온 일부 문인들과 교수들에게 있다. 그리고 일부 국민도 책임이 있다.

우리 국민 다수가 <국화 옆에서>에 살짝 감춰진 서정주의 기만과 음모를 잘 알면서도 그것을 좋아하고 사랑해 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반 국민은 전문가인 교수나 문인들의 해설과 국어 교사들의 가르침대로 따라가다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서정주의 친일행위는 소문이라도 몇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전연 몰랐다면 그 무관심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유럽이나 일본이나 미국 등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거기서는 민족적 양심을 그렇게 배반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살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너그러운 것인가?

그것은 관용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과오를 다시 반복하는 결과가 된다. 그리고 그 같은 과오는 시에 대한 잘못된 해석 태도도 원인이 되었지만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민족적 양심을 배반한 무리들이 해방 후에 오히려 더 힘이 뻗치는 지배적 권력을 걸머쥐게 되었고 많은 문인들도 그 분위기에 대한 저항력을 잃고 살아갔기 때문이다.

민족의 역사에는 비극도 있고 영광도 있고 수 만 가지 사건이 다 있으며 그렇게 이리 저리 흔들리며 미래의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것이 역사지만 그런 역사적 사건 종목 속에는 <국화 옆에서>와 같은 것은 다른 나라에는 없다.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창피한 사건이다.

왜냐면 이것은 오랜 세월 동안 식민지 백성으로서 비참한 종살이를 해온 백성이 그 가해자가 물러 간 뒤에도 여전히 그들의 왕을 경배하고 찬미한 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 아무도 말리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 시는 국정 국어 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 그런데도 서정주는 여전히 신성불가침의 성역이고 그가 죽자 국가는 최고의 문화훈장을 그의 영전에 바쳤다.

교과서에서 삭제시켜 달라는 요청에 따라준 국가와 훈장 달아준 국가가 따로 있는 셈이다. 그런데 친일문학이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삭제시켜 준 것은 군사 독재 정권이고 최고훈장을 달아 준 것은 민주정권인 국민의 정부 때였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 나라 같다.

<국화 옆에서>는 다른 많은 문인들이 저질렀던 친일문학과는 다르다. 그냥 일왕을 찬미하고 전쟁을 미화한 정도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잔혹한 학살을 찬미하고 일왕을 그런 의미에서 찬미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가장 반민족 반인류적인 범의犯意가 농후하다.

일왕 찬미는 물론 친일문학이다. 그리고 친일문학은 이미 지나가버린 역사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흥미를 가질 필요도 없다는 다수 의견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어느새 친일의 역사적 과오를 캐지 못하도록 누군가에 의해서 끊임없이 세뇌되어 온 것이다. 일반인만이 아니라 문인들도 그런 경향이 많다.

ㅁ. <국화 옆에서>는 해방 후 친일문학

그런데 <국화 옆에서>는 해방 전의 친일문학이 아니다. 이것이 발표된 것은 이미 일본인들이 항복하고 공포에 떨며 보퉁이 한 두 개씩만 겨우 챙기고 허겁지겁 물 건너 가버린 지 2년 3개월이 되는 1947년 1월 9일에 '경향신문'에 발표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