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우리는 선처럼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우리는 선처럼
  • 윤영채
  • 승인 2021.05.0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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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우리는 선(, Line)처럼 가만히 누워 볼 수 없는 것을 보려 눈을 감아보았지. 어딘가 정말로 영원이라는 정류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토요일 저녁 7시가 되면 퇴근을 한다. 낮과 밤이 바뀌는 순간을 목격하며 퇴근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그 환상적인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따듯했던 공기가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물티슈처럼 선선한 바람으로 바뀌는 순간, 진 파란 빛의 하늘 아래를 걷고 있는 나와 당신을 바라본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각자가 별처럼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밤의 꽃밭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향기롭고 달콤한 세상 속에서 숨을 쉬는 느낌. 그 순간 불안한 미래를 뒤로하게 된다. 그저 묵묵히 하루의 일과를 성실히 끝냈다는 것에 안도하고 그것을 요깃거리 삼아 기분에 취한다.

동시에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성숙하지 못했던 시절엔 돈과 명예 그리고 사랑이 행복이라고 말했다. 조금 성장한 뒤엔 성공과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사랑이라 답했다. 지금은 나다움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정한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말 그대로 나답게 사는 것.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 남성이라는 이유로 생김새나 꾸밈에 제약을 받지 아니하는 것.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가꾸고 다듬어나가는 일,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자유롭게 사랑하는 일이다. 차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 그러면서도 결코 그 길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문뜩 나다움으로 무장한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녀의 이름은 로렌스.

문학 선생이자 소설을 쓰는 로렌스는 약혼녀인 프레드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자유롭고 정열적으로 사랑하던 두 사람에게 시련이 닥친다. 그것은 바로 로렌스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여성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 것이다. 충격받은 프레드는 잠시 시간을 갖자고 말하지만, 이내 그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다시 돌아온다. 로렌스가 여성이 되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묵묵하게 응원한다. 치마와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간 로렌스는 점차 학교에서 왕따가 되어가고, 길에서 숱한 시비에 시달린다. 학교에서 해고된 로렌스, 동시에 집안의 반대와 주변의 차별에 시달리던 프레드는 서로 지쳐간다. 결국, 프레드는 그녀와 헤어진 뒤 다른 남성과 결혼한다. 몇 년 뒤, 엄마가 된 프레드를 멀리서 지켜보는 로렌스. 둘은 재회한다. 그 사이 그녀는 여성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프레드는 상관없다는 듯 뜨겁게 그녀에게 키스를 퍼붓는다. 둘은 검은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자신들과는 다르게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을 키워온 다른 커플을 보게 된다.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버린 프레드는 이 모든 게 여전히 혼란스럽다. 로렌스를 너무 사랑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분통이 치밀어 오른다. 두 사람은 결국 다시 이별하게 된다. 이후 프레드는 이혼하게 되고, 둘은 다시 식당에서 만나지만 예전과 같이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영영 이별을 결심한다.

나는 퀴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로렌스나 그 외에 등장하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들은 유리처럼 투명해서, 내면에 깃든 영혼을 알아볼 수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특이하다거나 이상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섬세하며 용감하다. 로렌스의 곁을 한동안 지켰던 프레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영혼을 알아볼 줄 아는 또 다른 투명한 영혼의 소유자.’ 그 용기와 열정을 존중한다.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볼 수 없는 것을 보려 눈을 감아보았지. 어딘가 정말로 영원이라는 정류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언젠가 귀에 익어버린 노랫말이다. 요조의 노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의 일부분이다. 끝없이 펼쳐진 선처럼 가만히 누워 하늘을 보면 영원이라는 것이 존재할 것만 같다. 지금 내가 맞잡은 이 사람의 손은 영원히 따듯하려나? 내게 영원히 싱그럽게 웃어줄까? 앞으로도 계속 나를 꽉 안아주지 않을까? 함께 살을 대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으려나? 그러나 평생 함께할 것만 같던 사랑은 결국 떠났다. 눈치채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당신은 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당장 점심 메뉴를 고민할 수도 있고, 어떤 옷을 살지에 대해 망설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잃을 각오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로렌스는 사랑, 안정적인 직장, 평범한 일상을 모두 포기하고 여성이 되는 것을 택했다. 변화의 끝엔 언제나 선택의 순간이 온다. 어떤 것을 얻고 잃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그 책임도 모두 개인의 몫이다. 그렇기에 영원이라는 정류장은 없다. 지금 내 옆에 존재하는 것들 모두 변화하고 있기에 훗날 우리는 다른 길로 접어들 것이 분명하다.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속 한 장면 (출처:https://blog.naver.com/)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속 한 장면

가끔은 영원이라는 게 있다고 믿고 싶다. 노랫말처럼,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 그리고 퇴근길에 마주치는 수많은 빛나는 사람들을 모두 선처럼 눕혀놓고 싶다. 지금 우리가 만든 이 선처럼 끝없이 서로를 사랑하자고 말하고 싶다. 하늘의 별보다 우리 각자가 더 밝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선 속에 로렌스와 프레드도 함께 있어 주면 좋을 텐데. 아직은 영원한 건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떠올리며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싶지도 않으니, 잠시 덮어두기로 한다. 이 순간만큼은 영원을 믿으며 선처럼 누워 노래를 흥얼거려보자.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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