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도 좀 치며 삽시다
장난도 좀 치며 삽시다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09.12.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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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과 여유 누릴 분위기를 달라...

서울 종로구 인왕산 기슭엔 역사에 이름 남긴 많은 인물들이 살았다. 1592년 미증유의 전란인 임진왜란을 맞아 장인과 사위로 구국명신(救國名臣)에 이름을 올린 만취당(晩翠堂) 권율(權慄  1537~1599) 장군과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 대감은 그 중 빼어난 분들이다.

두 사람 다 어린 시절엔 개구쟁이로 이름을 날렸지만 어른이 되어 벼슬로 출세한 뒤에는 청렴과 검소한 생활로도 유명했다. 특히 권율은 검소하고 질박했던 탓에 번거로운 것을 싫어해 의관을 갖추어 입어도 내의를 입을 줄 몰랐다고 한다. 권율의 이런 습성은 사위인 이항복의 장난끼를 자극했다.

어느 여름날 어전회의에서 이항복이 제의했다. 날이 너무 더우니 관복을 모두 벗고 윗 속옷만 입고 회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임금도 이를 허락하고, 군신간 격의 없이 관복을 모두 벗게 되었다.

속옷을 갖춰 입지 않고 잠뱅이만 걸친 권율은 난처했다. 하지만 임금부터 벗자고 나선 자리니 어쩔 수가 없었다. 잠뱅이만 걸친 권율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파안대소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항복의 장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느 해 겨울 그는 밤마다 광으로 갔다. 그리고는 바지를 벗고 그곳 절구통에 엉덩이를 담그고 앉았다. 냉기가 온 몸을 엄습했지만 조금 있다 놀려먹을 권씨 부인(권율의 따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기를 한참, 엉덩이가 차디차게 됐다.

그는 몸의 온기가 오르기 전 재빨리 부인 방으로 들었다. 차가운 엉덩이를 드러내고 부인의 몸으로 녹여주기를 청하는 것이었다.

이러기를 몇 번, 권씨 부인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 날 남편보다 먼저 광으로 가 손을 썼다. 절구통에다 활활 타는 숯을 집어 넣은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 오기 직전 절구통 안 열기가 뜨거워질 무렵 숯을 꺼내고 시치미를 뗐다.

잠시 후 사실을 알 리 없는 이항복이 광에 나타났다. 하던 대로 엉덩이를 꺼내 절구통에 앉았다. 순간 천하의 오성대감 이항복도 “앗! 뜨거!” 비명을 질러야 했다. 이후 이항복은 부인을 상대로 한 다른 장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했다.

연말연시다. 고용없는 성장이 사실로 드러난 통계가 나오는 등 반갑지 않은 소식들이 여전한 세월이다.
종로 네거리엔 추위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의 마이크 소리가 계속된다. 좌파의 책동이니 뭐니 하며 색깔론으로만 현상을 보려는 시각들이 있지만, 살아가기 점점 팍팍해서 나오는 소리들임이 분명하다.

이런 가운데도 연말연시 피할 수 없는 스케줄이 빡빡하다. 한 가지 일을 끝내기도 전에 또 다른 일거리도 밀려온다. 매사가 돈 되는 일만 따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돈도 안 되면서 바쁘기만 하다면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 어딘가 가서 모든 걸 잊고, 편한 사람들과 함께 며칠 동안이나 장난도 치고, 놀이도 즐기며, 잘 놀아보고 싶은 마음이 꿀뚝 같다.

서울 인왕산을 바라보며, 그 기슭 옛 사람들의 해학 넘친 장난과 끼를 생각하는 건 요즘 사람들에게 좀처럼 그 같은 해학과 여유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도 현대인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팍팍한 생활과 물질만능주의가 그런 마음의 여유조차 허용치 않을 터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삶은 고달퍼도 희망은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거나 꿈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현대인들이여, 직장인들이여...가파른 일상을 잠시 접고, 옛 사람들처럼 생활 속에 장난도 치고 해학도 누릴 수 있는 분위기와 여유를 달라고 이 사회를 향해 요구하자.

언제까지 다그침만 받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