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이불 밖은 위험해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이불 밖은 위험해
  • 윤영채
  • 승인 2021.05.11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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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집에 있는 것이 싫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집에 있는 시간을 견디질 못한다. 쉬는 날이 있다면 반드시 약속을 잡는다. 만나줄 친구가 없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할 일이 있는 경우(거의 매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돈만 있다면 카페로 나간다. 그곳에서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들 사이를 굳이 비집고 들어가 고개를 처박고 일을 한다. 사람이 좋고, 혼자가 아닌 환경이 좋다. 언제부터 나의 밖순이(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여자) 기질이 시작된 걸까.

아주 어렸던 때를 떠올려보면, 나는 꽤 활달한 편이었던 것 같다. 친구가 늘 많았고, 놀 거리는 만들면 될 뿐. 흙과 삽 그리고 우리를 숨겨줄 은신처만 있다면 온종일 그곳에서 놀 수 있었다. 흙과 풀은 우리의 식탁을 장식했고, 은신처는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우리만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나와 친구들은 각자가 맡은 역할에 몰입했다. 어른들의 사랑이나 우정, 직장생활 따위를 어린이의 시선으로 모방하곤 했다. 우리는 건강했고, 열정적이었으며 추운 밤이 돼서야, 그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그렇게 늦게 귀가해야만 부모님이 집에 계셨다. 혼자가 아닌 집에서 가족들에게 그날 내게 있었던 이야기를 신나게 말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조금 커서는 집이 좋아졌다. 우리 집이 아닌 친구의 집 말이다. 열세 살이 될 무렵, 나는 빈과 부의 차이를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제껏 내가 들고 다니는 실내화 주머니와 책가방에 불만이 없었지만, 점점 이 모든 게 부끄러워졌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집은 중산층이지만, 그 당시엔 가난한 줄만 알았다. 그래서 우리 집보다 더 넓고 화려한 곳에 사는 친구 집을 전전했다. 그곳에는 방마다 텔레비전이 있었고, 우리 형편엔 꿈도 꿀 수 없던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었다. 그 집에 있는 동안은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여름이면 습기가 가득하고 벽에선 지네가 출몰하는 낡고 허름한 집에서 벗어나 멋지고 근사한 곳에 사는 공주가 된 기분.

열일곱이 됐을 때는 가난따위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으므로, 집 자체를 특별히 싫어하진 않았다. 다만, 진로와 입시로 부모님과 충돌이 계속되는 바람에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나는 재능도 의지도 노력도 없는 말괄량이 죄인이었고,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할 부모님을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친구들 무리에 섞여, 밤마다 공원을 전전했다. 몰래 술을 마셨고, 그저 공허하다는 이유로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귀엔 피어싱이 가득했다. 다행인 건, 가출하거나 외박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 끊임없이 미래를 그리며 잠이 들었다.

성인이 돼서는 집이 무서웠다. 부산에 거주하시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섭식장애가 심각한 수준으로 안 좋아졌다. 집에만 오면 폭식을 했고, 그걸 전부 토해내느라 침샘이 비대해졌다. 한참 빛이 나야 할 스무 살의 얼굴은 호빵맨처럼 팅팅 붓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웠다. 살이 찌는 것은 더더욱 무서웠다. 당시의 나에게 집은 은신처이자 지옥과도 같은 장소였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요양하러 부산에 내려갔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좁은 원룸에서 지내게 되었다. 원룸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닐 텐데, 그 집은 유독 작았다. 정말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었다. 바퀴가 우글거리는 곳에서 우리는 껴안은 채 잠이 들었고, 차례로 화장실을 써야 했다. 누구 한 명이 라면이라도 끓이는 순간 온 방에 가스 냄새가 풍겼고, 부엌과 현관문이 딱 붙어 있어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그 시절 집은 좁지만 안락한 장소였다. 마음이 너무 공허했던 나를 꽉 조여주는 느낌이었다. 좁고 불편한 그곳에서 위로받을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나는 스물두 살이 되었고,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 그리고 섭식장애를 모두 극복했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거워서 집에 일찍 들어오기가 싫다. 내가 집에 있는 동안,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게 저물어가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몸이 근질거린다. 아침엔 공기를 마시러 마당에 나가고, 점심에는 일하러 집을 나선다. 오후에는 과제와 밀린 일 따위를 하러 카페에 나가고,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산책을 핑계 삼아 밖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밖에서 온 기력을 다 쏟고 나서야 침대에 누워 잠이 들 수 있다. 다음날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 가득할지, 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친구들과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부푼 마음으로 눈을 감는다.

가끔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문구를 보곤 한다. 이불 밖이 위험한 건 맞다. 도로 위엔 쌩쌩 달리는 차들이 즐비하고 밤길엔 모자를 푹 눌러 쓴 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세상은, 위험하다고 숨어버리면 더 위험해지는 곳이었다. 왜 이런 옛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밤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자면, 그 속에서 나온 괴물이 우리를 잡아먹는다는……. 그 괴물이 실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불을 눌러쓸수록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변해가는 또 다른 괴물인 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포근함과 안락함에 취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으면 어느새 가 나를 잡아먹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이불 밖은 위험하지만, 이불 속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만약 내가 방황하던 시절, 우울증과 대인기피에 시달리던 시기에 계속 이불 속에만 있었다면 오늘날의 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기운 없이 이불 속에 있다면, 잠시 그것을 걷어차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훗날 당신이라는 괴물에 잡아먹히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일어나 가슴이 뛰는 일을 하길 바란다.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좋고, 생각 없이 음악을 들으며 걸어도 좋다. 그저 무기력이 나를 지배하는 환경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이불 밖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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