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당신의 미술사는 무엇인가요?
[특별기획]당신의 미술사는 무엇인가요?
  • 안소현 비평가
  • 승인 2021.05.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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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미술관, 6월 20일까지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전 개최
서양미술사 영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다원주의 역사를 추구하는 전시
주재환, 박이소 등 한국 현대 미술 주요 작가 15명 참여
위영일 '냉무 6 (into layer)'가 놓인 전시장 전경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위영일 '냉무 6 (into layer)'가 놓인 전시장 전경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역사는 서사가 된 과거다. 서사란 인과 관계로 얽힌 일련의 사건을 일관성 있게 서술한 이야기를 가리킨다. 서사는 이런 이유로 자신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무언가를 항상 누락하게 된다. 미술사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 서양미술사는 다양한 미술 담론에서 일종의 토대처럼 작동하나 많은 진실을 배제하고 있다. 이에 맞서 작은 서사들을 발굴하려는 시도는 계속돼 왔다. 그렇다면 한국 현대 미술의 자장에서 서양미술사는 어떻게 해석되고 또 변형됐을까?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2021.4.15 – 6.20)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참여작가는 총 15명이며 전시 작품은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70여 점이다. 

전시는 한국 현대 미술을 되짚어보지만 회고적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기획자 이주연 학예연구사는 “한국현대미술과 서양미술사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해보고자”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며 “과거의 특정한 시기나 경향에 주목하기보다는 미술사라는 담론을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미술사는 미술의 창작, 비평, 교육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어 그런지 전시는 왠지 모르게 불친절하다. 파트 별로 나뉘어 구성되지도 않았고 감상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소제목도 없다. 전시는 각 층이 순환하듯 유기적으로 연결된 미술관 내부 공간과 호응하며 관람객이 작품들을 연속 선상에서 물 흐르듯 감상하게 한다. 작품 설명 역시 최소화해 관객이 자기 시각으로 작품과 전시를 바라보도록 유도했다. 

회화의 경계를 확장하다

전시는 미술관 2층에서 시작한다. 문을 여는 작품은 위영일의 ‘냉무 6 (into layer)’다. 각양각색의 사물이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배치된 이 설치 작업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파란 아크릴판을 정면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겹겹의 레이어가 펼쳐진다. 화분에 식물처럼 심은 문어 다리와 공중에 떠 있는 금속 공은 이때 입체로 보이나 아크릴판은 뒤쪽 벽 스티커-회화와 위아래로 나란히 붙어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아크릴판 뒤에 있는 사물들은 2차원 평면처럼 보이기도 하고 3차원 물체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크릴판 옆으로 가서 바라보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제 아크릴판 뒤 물체들은 완전한 입체로 보이고 문어 다리는 거울에 비친 상이 된다. 작가는 이렇게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다. 

이동기, 'A의 머리를 들고 있는 A' (사진= 서울대학교) <br>​​​​​​​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사진=wikimedia)
이동기, 'A의 머리를 들고 있는 A' (사진= 서울대학교)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사진=wikimedia)

복도와 계단 벽면에 배치된 이동기의 ‘아토마우스’ 시리즈는 관람객을 3층으로 서서히 이끈다. 아토마우스는 미키마우스와 아톰을 섞어 만든 캐릭터로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다. 이동기는 순수 미술의 언어로 대중문화를 다뤄 둘을 나누는 이분법을 넘어서려 한다. 아토마우스가 참수된 머리를 들고 있는 그림 ‘A의 머리를 들고 있는 A’는 카라바조의 그림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차용함으로써 순수 미술 전통과 연결된다. 하지만 일본 교복을 입고 있는 아토마우스는 일본 소년 만화를 상기시키며 어딘가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 작품에 묘사된 죽음은 고전 미술의 무거움과 대중문화의 가벼움이 한데 섞여 기묘한 느낌을 준다.   

위계질서를 넘어 우상을 해체하기

3층 초입에서는 홍경택의 ‘훵케스트라’ 시리즈를 볼 수 있다. ‘훵케스트라’는 ‘훵키(funky)’와 ‘오케스트라’의 합성어로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혼합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제목이다. 각각의 캔버스가 모여 이룬 색채 조화를 통해 시각적 오케스트라가 연주된다. 이 시리즈는 대중문화와 기독교 전통을 교묘히 뒤섞기도 했다. 작은 원들이 빽빽이 들어찬 그림은 한편으로는 광배와 비잔틴 모자이크를, 다른 한편으로는 화려한 무대 조명을 상기시킨다. 성과 속, 대중 예술과 고급 예술이 어울리며 둘 간의 위계가 무너진다.

신미경의 작품이 놓인 전시장 일부
신미경의 작품이 놓인 전시장 일부

바로 옆에는 신미경의 작업이 있다. 그는 비누로 재현된 불상을 통해 원본과 사본의 관계를 살펴본다. 이번 전시에는 ‘화장실 프로젝트’와 ‘화석화된 시간 시리즈’가 함께 놓였다. ‘화장실 프로젝트’는 비누로 고전 조각상을 복제하고 관람객이 이를 화장실에서 직접 사용하게 했던 작업으로 녹아내린 결과물이 그대로 전시됐다. 반면 ‘화석화된 시간 시리즈’에서는 버려진 비누를 모아 조각상을 만들고 그 위에 은박이나 동박을 입혀 시간의 풍화에 저항하려 했다. 전시는 두 시리즈를 번갈아 배치해 리듬을 형성했다. 신미경은 고전 조각의 완결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원본과 사본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복제하는 과정에서 이미 작가의 번역이 개입되고, 또 놓인 장소나 관객의 시선에 따라 결과물은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뒤틀게 되기 때문이다. 원본은 복제됨으로써 확장되며 사본은 원본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서양 미술사에 저항하기

관람객은 3층 방 입구에서 미국 미술사가 제임스 엘킨스의 『과연 그것이 미술사일까?』에서 발췌한 문구를 맞닥뜨리게 된다. “나는 여러분이 최소한 머릿속에서만이라도 자신만의 미술사 그림을 그려보길 바란다. [...] 그렇지 않으면, 미술사란 결국 끊임없이 여러분 곁을 스쳐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꾸며놓은 가장행렬에 그치고 말 것이다.” 

전의를 다지며 방 안에 들어가면 서양미술사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려 했던 배찬효, 데비 한, 김기라, 이완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배찬효와 데비 한은 정체성 문제를 다뤘다. 배찬효의 ‘서양화에 뛰어들기’ 시리즈는 전통적인 유럽 회화를 전유한 작업이다. 그는 고전 회화를 복사하고 거기에 서양 여성 의복을 입은 자신을 어색하게 끼워 넣었다. 서구 사회에서 동양인으로서 느끼는 소외감을 그려내는 한편 그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전시장 전경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배찬효의 '서양화에 뛰어들기'와 데비 한의 ‘미의 조건 VI’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데비 한은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의 미의 기준이 어떻게 구축됐는지 돌아본다. 비너스 상을 도자기로 복제한 ‘미의 조건 VI’은 다양한 외모를 반영한 사본을 통해 원본이 틀 지은 아름다움에 대항한다. ‘존재의 계절’에서는 일반인 여성 누드에 비너스 머리를 합성하여 여성의 실제 삶과 사회적 여성상 사이의 괴리를 표현했다. 

김기라는 정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는 물질 과시욕과 삶의 무상함이 함께 담기곤 했다. 김기라는 패스트푸드와 코카콜라 같은 현대 사회의 상품을 정물화로 그리고 이를 고전 회화에나 어울릴 법한 화려한 액자에 넣어 전시했다. 현대 사회의 소비 욕구와 그 이면의 허망함이 함께 드러나는 작업이다. 

이완은 박물관에 반영된 식민주의를 비판한다. ‘보물’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무단으로 3D 복제한 작업물을 해당 박물관 큐레이터의 인터뷰 영상과 함께 ‘박물관스럽게’ 전시한 작업이다. 작가는 과거에 약탈당한 유물을 복제를 통해 불완전하게나마 되찾아오며 박물관 시스템 속에 녹아 있는 식민주의를 고발한다.  

전시장 전경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김홍석의 '토끼 같은 형태'와 'Read-Francis Alys p38,39 (Re-enactment)'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복제와 차용의 전략

이용백의 비디오 ‘천사-전사’는 디지털 시대의 미술을 다룬다. 작품은 인조 꽃으로 가득 찬 공간을 꽃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이 천천히 가로지르는 장면을 보여준다. 군복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의 디지털 기술과 관련된 각종 로고와 함께 현대 미술 대가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찰이 달려있다. 가짜 꽃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움직이는 군인은 화면 속 세계가 연출된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기억하게 한다. 가짜로 가득 찬 공간을 통해 디지털 사회에서 진짜 창조는 엄밀하게 불가능하며 어쩌면 미술계 자체가 허상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암시하는 듯하다. 

이병호, 'Statue X', 2019
이병호, 'Statue X', 2019

이용백의 작품을 지나 3층 두 번째 방에 도착하면 복제와 차용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두 작가를 만날 수 있다. 김홍석의 작품으로는 진짜와 가짜의 관계를 다룬 ‘토끼 같은 형태’와 ‘READ’ 시리즈 등이 전시됐다. ‘READ’ 시리즈는 유명작가의 전시 카탈로그에 수록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유화로 번역한 결과물 그리고 흰 캔버스를 조셉 코수스처럼 연달아 배치한 작품이다. 제프 쿤스를 차용한 조각 ‘토끼 같은 형태’는 일견 쓰레기봉투와 쇼핑백으로 구성된듯하나 실제로는 레진으로 만들어졌다. 

이병호 역시 차용 기법을 통해 조각 장르를 탐색한다. 그도 신미경과 마찬가지로 조각이 담지하는 영원성과 완결된 외형을 극복하려 한다. 작가는 고전 조각을 복제하고 분절하여 재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인체 조각의 확장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인물들은 언제든지 다시 해체돼 다른 식으로 조립될 수 있을 것 같다. 신미경의 사본이 점점 작아지면서 원본의 권위를 무너뜨린다면 이병호의 사본은 점점 커지면서 원본의 경계를 초과하는 듯하다. 

주재환과 박이소, 초기 포스트모던 미술의 선구자들

같은 방 벽면에는 주재환과 박이소의 작업이 걸려 있다. 두 작가를 통해 초기 포스트모던 미술의 수용 양상을 일부 살펴볼 수 있다. 한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수용 과정에서 모더니즘 계열 논자들과 민중미술 계열 논자들은 포스트모던 이론을 각자의 방식으로 달리 해석해 받아들였다. 거칠게 정리하면 모더니즘 계열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다원주의와 연결해 형식적 다양성을 추구했지만, 민중미술 계열에서는 진리 개념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저항 가능성으로써 이를 이용해보려 했다. 주재환과 박이소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진영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은 채 자기만의 작업을 해나간 작가들이다. 

1940년 생인 주재환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흔히 민중미술 작가로 분류된다. 포스트모더니즘에도 관심을 갖고 여러차례 글을 발표했다. 주재환은 다양한 매체를 전방위적으로 사용하며 사회 모순을 드러내는 작업을 다수 제작했다. ‘몬드리안 호텔’과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모더니즘 작품을 차용했지만 이를 비틀어 그 안에 풍자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또 ‘미제 껌송가’나 ‘똥 값’ 같은 작품에서는 일상적 사물을 캔버스에 붙여 회화도 조각도 아닌 작품을 만들었다. 캔버스 안에서 다양한 기호들이 얽히며 비판적인 메시지가 형성된다. 

주재환, '미제 껌 송가', 2020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주재환, '똥 값', 2008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주재환, '미제 껌 송가', 2020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주재환, '똥 값', 2008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1957년에 태어난 박이소는 한국에 포스트모던 예술론을 수입한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 정체성 간의 번역 불가능성을 중심 주제로 다뤘다. 예를 들어 ‘자본=창의력’ 은 원래 ‘창의력=자본’이라고 적혀 있었던 요셉 보이스의 작품을 번역하여 작품의 의미를 교묘히 변화시킨 작품이다.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에서는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간극과 한국어와 영어 사이의 간극을 동시에 드러내 문화 간의 거리를 드러냈다.  

박이소,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 1990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박이소,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 1990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닿을 수 없는 대상을 향하여

지하에 위치한 마지막 방에서는 고낙범과 권오상의 작업을 볼 수 있다. 고낙범의 ‘초상화 미술관 – 신체에서 얼굴로’는 인물을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였던 초상화 장르를 재해석해 되려 인물의 불투명함을 그려냈다. 전시는 제작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우선 카라바조의 그림 ‘병든 바쿠스’를 분해해 색띠 형태로 추상화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지인들을 초상화로 그리되 앞에서 추출한 색채들로 각각의 인물을 뒤덮는다. 모델들은 색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색의 뒷면으로 물러난다. 다시 말해, 색채와 하나가 된 인물들은 구체적 형상이 아니라 일종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관객은 여기서 마주한 대상을 파악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느낌은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느끼는 사람의 내면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권오상 역시 닿을 수 없는 대상의 실재를 표현했다. 그의 사진 조각은 대상의 신체를 구석구석 사진으로 찍고 이를 삼차원 조각 형태로 재구축해 만들어진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고 믿어졌던 사진을 재료로 만든 조각상임에도 재현된 대상은 실제 인물과는 괴리가 있다. 전시된 ‘피에타’는 동명의 미켈란젤로 작품을 재해석해 만든 사진 조각이다. 마리아와 예수는 동일 인물인 듯한 두 여성으로 치환됐다. 이미지에 압도된 실재의 죽음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고낙범의 '초상화 미술관 - 신체에서 얼굴로'와 권오상의 사진 조각 '무제의 G-Dragon, 이름이 비워진 자리'가 함께 전시돼 있다.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고낙범의 '초상화 미술관 - 신체에서 얼굴로'와 권오상의 사진 조각 '무제의 G-Dragon, 이름이 비워진 자리'가 함께 전시돼 있다. (사진=서울대학교미술관)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전은 참여 작가들의 작업 여정을 통해 한국 현대 미술과 서양 미술사의 영향 관계를 보여줬다. 작가들은 서양 미술사에 맞서기도 하고 이를 번역하기도 하며 서구 미술과 평등한 만남을 이루려 노력했다. 전시는 이러한 작가들의 행보를 과거 유물로 남겨두기보다 현재의 시점에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전시가 의도대로 새로운 해석자들을 끌어내는 장으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