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 윤영채
  • 승인 2021.05.14 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내 나이 스물둘. 주변엔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 친구도 있고, 3학년이 되어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은 나뿐이라, 솔직히 걱정이 적지 않다. 모두가 코딩 자격증 시험에 한창인데, 나만 멈춰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글을 쓰는 게 즐겁지 않고, 뭘 좋아하는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확신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해온 입시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말 그대로 의지하나로 버티는 중이다. 이 정도 해봤는데 안 되는 거라면 내게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문득 포기하고 새로운 길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으니 자는 시간조차 편하지 않다. 꿈속에서조차 나는 방황하고 있다.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을 하는 시간만이 숨통을 트이게 하고 하루를 견디게 한다. 수량을 파악하고 그걸 기록하는 일, 들어온 주문에 맞춰 내 몸을 움직이는 일이 사고의 피로로부터 나를 구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어젯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봤다. 전 과외선생님이 추천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저예산 좀비 영화를 찍던 타카유키 감독과 그 일행들은 주인공의 어설픈 연기에 점점 지쳐간다. 그때 정체 모를 좀비들의 습격을 받는다. 스텝들은 하나둘씩 좀비로 변해가고, 간신히 살아남은 배우들과 분장사는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겁에 질린 주인공을 본 감독은 카메라를 들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계속 찍어나간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고 소리치며. 궁지에 몰린 주인공 아이카는 결국 모두를 죽이고 피의 주문이 시작된 곳에서 카메라를 응시한다. “!” 사실 영화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비용은 싸게 품질은 그럭저럭을 캐치프레이즈로 삼던 B급 재연작 전문 감독 타카유키는 한 달 전, 방송사로부터 제안을 받는다. 그것은 생방송 원 컷 좀비 프로그램을 제작해달라는 것이었다. 멀어진 딸 마오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이 작품을 맡기로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롭지 않다. 배우들은 제각기 개성이 강했고, 감독의 의견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연습마다 술을 마시고 나타나지를 않나, 대본 수정을 요구하지를 않나. 설상가상으로 촬영 당일 분장사와 감독역을 맡은 배우들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결국, 타카유키는 직접 감독 역할로 출연하게 되고, 전직 배우였던 그의 아내 하루미가 분장사 역으로 투입된다. 대본대로 촬영이 이어지진 않지만, 카메라를 멈출 수는 없다. 스텝들은 최선을 다한다. 마오까지 합류하여 몇 차례의 위기를 막아낸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굴러가나 기어가나 멈춰있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굴러가거나 기어서라도 목표에 도달해본 적이 없어서, 이 말이 와 닫진 않는다. 여전히 예술에 대한 재능도 열정도 확신할 수 없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사유하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은 말 그대로 골치 아픈 일이다. 이런 짓을 해보겠다고 스스로 발을 들이다니. 어쩌면 씁쓸한 결과로 이어질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난 4년간 나는 아주 조금씩 꿈틀댔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온전한 내 힘으로 움직였다. 빠른 도착보다 중요한 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온전히 나의 노력과 힘으로 버티고 걸어왔다는 사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속 한 장면 (출처: https://blog.naver.com/)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속 한 장면

나도, 친구들도 그 누구도 멈춰있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 왔다. 서로를 보며 불안에 떨 필요는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위기의식을 느끼거나, 삶에 대한 의문을 품을 게 아니라 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무척이나 어렵겠지만, 그걸 해내는 자가 일류라고 믿는다. 인생에 왕도란 없고, 오직 자기가 개척해낸 길만이 내 인생의 답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입시가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면 이제는 정말 다른 길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할까? 여전히 머릿속에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내게도 타카유키처럼 카메라를 멈추지 않을 용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옆엔 늘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괜찮다. 열심히 해본 과거가 있으니 다른 일도 분명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애증의 관계를 끝내고 다시 열정을 줄 무언가를 만났을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괜찮다.

두 시간 후면 출근해야 한다. 잠시 미래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기로 한다. 노동의 현장에서 바쁘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집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려 한다. 저녁에는 친구와 회를 먹기로 했다. 기대된다. 집에 돌아와 씻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볼 것이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작품 중 하나를 보지 않을까 싶다. 자기 전엔 열심히 꿈틀댄 나를 위해 세상과 건배를 할 참이다. 이렇게나마 작은 위안으로 삼으며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산다. 그러다 보면 멀게만 느껴졌던 인생의 종착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