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故이건희 기증 미술품, 기증자의 뜻 이어져야
[특별기고] 故이건희 기증 미술품, 기증자의 뜻 이어져야
  • 이동식 저술가
  • 승인 2021.05.1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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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4월 22일, 호암 이병철 회장 미술품‧문화재…7분간의 방송 보도 인연
당시 호암미술관 공개 미술품, 한국에서 처음 확보된 고려 불화 및 박수근‧이중섭 그림
▲이동식저술가
▲이동식저술가

1982년 봄, 용인 자연농원 입구에 지어지던 한식 건물이 준공되었는데 그것이 박물관이 되어 그동안 삼성 그룹 호암 이병철 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30여 년 간 모아온 미술품과 문화재들이 공개된다고 알려졌다. 다들 엄청난 보물들일 것이라고 궁금해 하던 차에 KBS보도본부는 이 최고의 문화재들을 텔레비전 뉴스 황금시간에 독점 소개하겠다는 제안서를 보내어 삼성그룹으로부터 동의를 받았다.

개관 날짜는 4월 22일, 보도본부 문화과학부에서 미술과 문화재를 담당하던 이동식 기자는 개막 전 3일간 호암 미술관 2층에 전시된 최고의 명품들을 시청자들을 대신해서 이종선 부관장의 해설과 함께 먼저 보고 촬영하였다. 그리고 미술관이 개관하던 당일 KBS-1TV 9시 뉴스에 무려 7분 반을 할애해서 최고의 명품들을 소개했다.

일본의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에서 입수한 고려불화 한 점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게는 절대로 안판다고 해서 구입자의 신원을 노출시키지 않고 어렵게 구하였고, 고려불화의 나라 한국에 처음 확보된 고려불화였다. 50호 크기의 박수근 화백의 유화 한 점도 있었다. 당시 호당 500만원을 홋가하던 때였으니, 82년 당시 2억5천만 원, 지금 얼마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중섭의 황소 그림, 고려 때 청동은입사향로, 조선시대의 왕실용 청화백자항아리에다 고구려 금동보살상 등등 고대에서 근대 현대에 이르는 명품들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그때서야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런 문화유산을 모으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다시 알게 되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 이후 가장 큰 문화재수집이었다.

▲국보 제217호 정선 필 금강전도(사진=이동식 제공)
▲국보 제217호 정선 필 금강전도(사진=이동식 제공)

2004년 서울 한남동에서는 리움미술관이 개관했다. 이건희 회장의 Lee와 박물관을 뜻하는 Musium의 um이 합쳐진 이름의 이 미술관은 이병철 회장에 이어 문화재와 미술품 수집에 공을 많이 들인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리움 관장의 수집품들을 공개하였다. 수집품들은 과거의 문화재뿐 아니라 현대의 대표적인 작품들도 망라되어 있었고 매슈 바니,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에 이르는 현대 미술 거장들의 개인전을 이곳에서 잇달아 열어 대중과 현대미술의 가교 역할을 했다. 아울러 젊은 유망 작가를 발굴하는 ‘아트스펙트럼’과 파리 레지던스 프로그램,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등을 지원하며 미술계 발전에 기여했다.

▲용인호암미술관(사진=이동식 제공)
▲용인호암미술관(사진=이동식 제공)

최근 삼성 일가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산 가운데.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국보 14건과 박수근ㆍ김환기와 모네ㆍ호안미로 등 국내외 작가 미술품을 포함해 총 2만3000여점을 우리 사회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으로 알려진 것들인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사상 최대 규모로 기증될 전망이고 일부 박수근 미술관 등에는 이미 기증이 되었다.

재계와 미술계에 따르면 감정평가 평균액수는 2조 원 가량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값을 매길 수 없는 컬렉션으로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고, 경매에 나올 경우 5~10조 원 까지 평가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엄청난 보물들이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당시 호암미술관이 공개한 보물들
▲국보 133호 청자동채연화문 표형주전자(사진=이동식 제공)

미술계에서는 이 기증 미술품들이 곳곳으로 흩어지지 말고 한 곳에 모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대통령도 전용 미술관 건립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제 미술관이 지어진다면 또 지자체끼리 유치경쟁이 치열해지겠지만 미술관이 지어진다면 운영의 책임을 지자체보다는 차라리 삼성에게 맡기는 것이 검토되어야 한다. 삼성의 공을 인정해주는 마음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에 남기는 유산이 처리되면 앞으로 많은 대한민국의 자산가들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1995년 4월 13일 중국을 방문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장쩌민 주석과의 단독 회담을 마치고 필자를 포함한 주 베이징 특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발언을 했다. “잘못된 행정 규제와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21세기에 한국이 앞서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그러나 비공개를 전제로 한 이 발언내용은 곧 공개되어 당시 김영삼 정부는 발끈했고 삼성은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이 발언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호암미술관이 당시 공개한 아미타삼존불 고려불화 (사진=이동식제공)
▲호암미술관이 당시 공개한 아미타삼존불 고려불화 (사진=이동식제공)

그로부터 사 반 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의 한국은 어떤가? 아직도 정치는 4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경제도 문화도 국민의식도, 젊은이들의 창의력도 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는데, 정치는 여전히 각종 규제를 풀지 않고 있고, 긴박한 경제전쟁에서 적극적인 투자를 위한 여건 마련에 주저하고 있다. 자동차에 이어 마지막 남은 반도체전쟁까지 걱정이 태산이다. 정치가 경제전쟁을 하는 주체들의 공과 역할을 인정해서 그들을 덜 규제하고 덜 견제해서 전쟁에 마음 놓고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 문화를 더 가꿀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