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학의 바이 더 웨이, 디지털!] 디지털시대, 변화의 문화현장 ❹ 이제 당황스럽진 않지만
[김정학의 바이 더 웨이, 디지털!] 디지털시대, 변화의 문화현장 ❹ 이제 당황스럽진 않지만
  •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
  • 승인 2021.05.18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학 1959년생. 영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년 동안 한국과 미국 등에서 방송사 프로듀서를 지냈으며, 국악방송 제작부장 겸 한류정보센터장, 구미시문화예술회관장 등을 거쳤다. 현재 대구교육박물관장으로 재직 중. 지은 책으로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등이 있다.
▲김정학 1959년생. 영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년 동안 한국과 미국 등에서 방송사 프로듀서를 지냈으며, 국악방송 제작부장 겸 한류정보센터장, 구미시문화예술회관장 등을 거쳤다. 현재 대구교육박물관장으로 재직 중. 지은 책으로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등이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제1의 장소인 가정, 제2의 장소인 일터 혹은 학교에 이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곳을 ‘제3의 장소(The Great Good Place)’로 규정했다. 그의 말처럼 ‘비공식적 공공생활’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장소는 실재를 전달하는 기호(sign)같은 존재가 가득하고, 지적 호기심이 다양한 재미로 이어지는 곳일 테니까. 나는 그 ‘제3의 장소’가 오롯이 뮤지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디지털시대에 알게 모르게 현실이 된 듯한 느낌의 몇 곳을 소개한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뮤지엄은 대중의 참여를 위해 '갤러리 원(Gallery One)'을 만들었다. 이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꾸민 까닭은 미술관이 커지면서 새로운 역량을 키우고 새로운 관람객을 늘려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시관 안에 있는 작품들에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 전시관을 예전처럼 구경할 수도 있지만 관심이 있다면 예술 작품 하나하나에 실제로 참여하거나 작품 자체를 조작해볼 수도 있게 만들었다.

‘갤러리 원’이 보여주는 인터페이스는 실제로 창의력을 상승시킨다. 그중 하나는 얼굴 인식을 통해 실제 박물관의 소장품을 볼 수 있는 알고리즘이다. 한 사람이 일부러 다른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가 짓는 표정과 관련된 작품을 소장품에서 실제로 꺼내온 듯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뮤지엄 안에서 하는 행동에 따라 직접 감정적 교류를 느낄 수 있다. 우리 얼굴표정이 역사를 머금은 소장품들을 하나하나 소환하며 수천 수만 년을 이어주는 것이다. 또 다른 인터페이스에서는 관람객들이 모니터에 간단한 그림을 그리면 같은 꼴의 작품이 시공을 넘어 등장한다. 뮤지엄 안에 있는 작품을 스스로 만나는 방법을 더 많이 찾음으로써 관람객들은 이해하고 창의적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소장품들이 디지털의 옷을 입은 전자벽 앞에서 사람들은 3천여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고 또 별도의 패드를 이용해서 '둘러보기'를 만들면 자신의 일행과 공유할 수도 있게 된다.

우리가 통칭 ‘미디어 아트(Media Art)’라고 불리는 전시에서는 기존 원본을 감상하는 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상호작용'과 '몰입'을 체험할 수 있다. 미디어 아트를 다른 전통예술과 구분 짓는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관객에게 생생한 '몰입' 효과를 준다는 점이다. 전통 회화를 실제 사실처럼 극대화하여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관객이 그 이미지를 정말 현실에 있는 것처럼 체험하지는 못하지만 미디어 아트로 재탄생한 작품은 가상이긴 하지만, 생생한 실제 환경과 실시간 소통으로 마치 작품 속의 환경이 실제 존재하는 듯한 경험을 관람객에게 선사한다. 미디어아트 작품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관객에 의해 얼마든지 열린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아트에서는 종종 예술가들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두곤 하는데, 이 완성되지 못한 부분을 관객이 개입하여 채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재미있는 장치다. 이쯤에서 나는 디지털 장치에 명화를 실었지만, 그 자체가 장르를 뛰어넘은 또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는데 동의하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당황스럽지 않겠지만, 세계적으로 이름난 미디어아트 갤러리 두 곳을 이야기하고 싶다.

▲(왼편에서부터) 레이 올덴버그, 美클리블랜드 미술관 ‘갤러리 원’, 파리 ‘빛의 아틀리에’, 호주‘갤러리 루메’
▲(왼편에서부터) 레이 올덴버그, 美클리블랜드 미술관 ‘갤러리 원’, 파리 ‘빛의 아틀리에’, 호주‘갤러리 루메’

먼저, 프랑스 ‘빛의 아틀리에(Atelier des Lumières)’. 파리의 오래된 주물공장이 보수공사를 거쳐 ‘빛의 아틀리에’로 새롭게 태어났다. 면적 3,300㎡, 높이 10m의 전시 공간을 갖춘 이 디지털 아트센터는 이미 파리의 특별한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 완벽한 레스토랑 서비스, 최첨단 기술, 모든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는 백여 개의 프로젝터, 전시의 효과를 더하는 음향장치를 더하면 새로운 분위기로 무장한 파리의 새로운 문화의 중심이 완성된다. 이곳의 운영방식은 간단하다. 디지털화된 작품의 이미지를 광케이블을 이용해 고화질로 투영하고,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된 음악의 리듬에 따라 작품을 움직이는 것이다. 디지털 아트의 경험이 놀라움을 선사하는 이유는,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 작품 속에 빠져 들어가 모든 디테일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차세대 디지털 아트갤러리로 불리는 호주의 ‘갤러리 루메(Lume)’다. 이곳은 세계적 명성을 얻은 <반 고흐展> 전시회사가 멀티채널 모션 그래픽과 서라운드 사운드, 고화질 프로젝터를 결합해 세계에서 가장 신나는 멀티스크린 환경을 제공하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한 이미지가 숨 막히는 몰입감의 디스플레이로 공간을 메운다. 강력한 클래식 악보에 맞춰 3,000개 이상의 반 고흐 이미지가 거대한 벽, 기둥, 바닥까지 가득 채우는 짜릿한 디스플레이를 연출하며 생생한 색감과 테일에 온전히 몰입하게 한다.

엄선한 명작과 배경음악으로 작품을 안무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영혼을 휘젓는 명작의 춤을 볼 수 있는 갤러리가 우리나라에서도 관광지 몇 군데서 성업 중이다. 이런 식의 비즈니스를 경험경제(experience economy)라고 부르는데,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진실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다. 이제 당황스럽진 않으니, 요즘 전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미술관들이 소장작품이 지닌 속깊은 역사를 온전하게 드러내 보여줄 수 있도록, 반듯한 ‘제3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디지털의 마법이 깃들었으면 좋겠다.